구글이 최근 새로운 양자 컴퓨팅 칩셋인 '윌로우(Willow)'를 발표하며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신의 계산'을 통해 기존 슈퍼 컴퓨팅의 한계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시기상조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 상황에서는 '시기상조'라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AI 시장도 챗GPT로 명명되는 생성형 AI 돌풍이 느닷없이 닥쳐온 후 판 자체를 바꿔버린 사례가 있다.
불과 몇 년전 온 세계가 목도한 일이다. 구글 윌로우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배경이다.
구글 시커모어. 사진=구글
D-웨이브부터 시커모어까지
양자 컴퓨팅은 양자암호통신, 양자센서 등과 함께 대표적인 양자 활용 산업으로 꼽힌다.
양자적 조합의 형태인 큐비트를 이용해 연산을 하며 양자중첩, 양자얽힘, 불확실성을 통한 병렬처리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큐비트는 전통적인 컴퓨터의 비트(Bit)에 대응하는 개념이며 AI로 보면 파라미터로 비유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숫자가 많으면 고성능을 의미하지만, 이를 얼마나 유기적으로 잘 연결하느냐에 따라 시너지의 파급력이 달라진다.
큐비트를 활용한 양자 컴퓨팅은 알고리즘 자체가 유동적이며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의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기존 컴퓨터에 비해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효과적이고 빠르게 풀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양자역학의 원리를 활용해 슈퍼 컴퓨터 대비 1억배의 능력을 자랑한다는 설명이다. 인류를 신의 계산에 도달할 수 있게 만든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 만큼 활용성도 무궁무진하다. 미국 컨설팅업체 맥킨지앤드컴퍼니는 2030년 전 세계에 최대 5000대의 양자컴퓨터가 보급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최초의 상업용 양자 컴퓨팅의 가능성은 전통적인 컴퓨터로 풀기 어려운 최적화 문제를 에너지 상태를 낮춰가며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무장한 양자 어닐링(Quantum Annealing) 기술을 활용한 D-웨이브다.
범용 양자 컴퓨터와 달리 특정 유형의 최적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으며 2011년 첫 출시 당시 큐비트의 숫자는 128개에 불과했으나 이후 모델(D-Wave Two, 2000Q, Advantage)에서는 5000개 이상의 큐비트를 자랑했다.
이후 IBM을 중심으로 다양한 가능성이 타진되던 중 2019년 9월 기념비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 게시판에 특정 양자 컵퓨터칩이 연산능력 기준 기존의 수퍼 컴퓨터를 압도, 기존 디지털 컴퓨터의 성능을 일부 넘어서는 ‘양자우월성(양자우위)’을 최초로 이뤘다는 내용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슈퍼 컴퓨터로 1만년이 걸려야 풀 수 있는 문제를 양자 컴퓨터로 단 3분20초만에 풀어낸다는 놀라운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NASA의 문건 게시를 보도했던 미국의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해당 연구는 2018년부터 NASA와 양자 컴퓨터 협력을 이어오던 구글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바로 그 유명한 구글 시커모어(Sycamore)의 충격적인 데뷔전이다.
구글 시커모어의 데뷔는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으나, 또 모두가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의욕적으로 양자 컴퓨팅을 키워오던 IBM은 당혹스러워 했다.
IBM은 당장 구글 시커모어를 두고 연구소장 명의로 입장문을 내어 “연구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지적했으며 자사 블로그에도 논문을 공유해 “구글은 양자우월성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날을 세웠다. 이에 대해 구글도 자사 블로그와 과학전문지 ‘네이처’(Nature) 관련 기사를 통해 ‘양자 지상주의’(quantum supremacy) 발견을 공표하며 반격에 나섰다.
다만 구글 시커모어는 양자 컴퓨팅의 대표적 '상징'으로 시대에 아로새겨졌다. 이어 IBM의 퀴스킷 에어(Qiskit Air), 클래식(Classiq)의 퀀텀 알고리즘 디자인(Quantum Algorithm Design), 구글의 큐심(qsim) 등 소프트웨어 프레임워크도 속속 개발되며 관련 연구의 저변은 크게 넓어졌다.
아마존 (NASDAQ:AMZN) AWS도 2021년 AWS 양자 컴퓨팅 센터(CQN)를 설립한 후 아마존 양자 컴퓨팅 전문가, 관련 기술·컨설팅 파트너, 기업들과 연계한 아마존 양자 솔루션 랩(Amazon Quantum Solutions Lab)을 개설하기도 했다. 이미 2020년 일반에 풀린 완전 관리형 서비스인 아마존 브라켓(Amazon Braket)도 동시에 가동됐다.
시몬 세베리니 AWS 양자컴퓨팅 당시 디렉터는 2022년 AWS 리인벤트 현장에서 기자와 만나 "연구자들로 구성된 개척자들, 양자 컴퓨팅 활용을 타진하는 스타트업과 같은 도전자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선택지에 양자 컴퓨팅을 고려하는 실용자들이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진=갈무리
윌로우의 등장
팬데믹 종료 및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 후 2022년으로 접어들며 짧은 FAANG 2.0(안보와 생존을 위한 아이템)의 시대가 지나더니 갑자기 생성형 AI 시대가 용트림하기 시작했다.
양자 컴퓨팅도 조용하지만 착실하게 저변을 넓혔다. 올해 7월 오우양 완리(Wanli Ouyang) 중국 상하이인공지능(AI)연구소 교수 연구진이 논문 사전 공개사이트 ‘아카이브(arXiv)’를 통해 강력한 GPU 성능에 기반한 구글 시커모어를 뛰어넘는 일반 슈퍼 컴퓨터를 개발했다고 밝히는 등 부침도 많았으나 조금씩 양자우위에 대한 관심도 키워갔다.
판이 흔들린 것은 역시 최근 발표된 구글 윌로우다. 강력한 기술 우위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양자 컴퓨팅에 대한 모두의 시선을 빨아들였다. 현 상황에서 기존 슈퍼 컴퓨터로 약 10의 25제곱 년이 걸릴 연산을 1분 이내에 처리할 수 있는 윌로우는 시커모어를 뛰어넘는 '괴물'로 평가받고 있다.
몇 가지 기술적 특이점이 보인다.
먼저 양자 상태 유지 시간이 개선되어 복잡한 연산 수행이 가능해진 결맞음 시간(Coherence Time)을 연장한 대목이다. 양자 컴퓨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극저온 등이 지원되어야 하는 등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윌로우가 초전도 방식을 쓰면서도 연산 수행 시간을 '추가 연장'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양자 오류를 효과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오류 수정(Error Correction) 알고리즘이 적용된 것도 눈길을 끈다. 최근 생성형 AI의 환각효과를 잡아내기 위한 다양한 기술적 보완책이 나오는 가운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양자 컴퓨팅'의 오류를 잡아낼 수 있는 기술적 진화로 볼 수 있다. AWS 베드록이 환각효과를 제어하기 위해 자동화된 추론 검증 기능을 최근 업데이트한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심지어 윌로우는 기존 컴퓨터와의 연결성도 유연하다. 양자 컴퓨팅을 클라우드 등 기존 ICT 인프라와 연결해 디지털 전환의 입체적 로드맵을 구성하려는 일반 빅테크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는 뜻이다.
사진=갈무리
양자종말(quantum apocalypse)의 공포는?
구글 윌로우의 등장으로 양자종말(quantum apocalypse)에 대한 공포도 커졌다. 현존하는 모든 암호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신의 계산'이 블록체인의 탈 중앙화 시스템도 파괴할 것이라는 우려로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이 급락하기도 했다.
다만 아직은 양자 컴퓨팅 개발이 초입에 머물러 있어 극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쪽에 더 무게가 실린다. 기술의 진보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양자 컴퓨팅 자체에 대한 기술적 회의감도 아직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스로 가득찬 방에 작은 불꽃이 하나 떨어지면 파괴적인 폭발도 가능하다. 생성형 AI 시대의 급격한 확장을 돌아보면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이다. 팬데믹 이후 디지털 전환 전반의 속도전이 치열해진 상태인데다 챗 GPT와 같은 특정 서비스의 등장이 순식간에 판을 흔드는 것은 자주 벌어지기 때문이다.
양자종말의 파국은 분명 먼 일이지만, 상용 서비스를 중심으로 기존 ICT 인프라에 균열을 내는 작업은 가능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