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집권을 앞두고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캐즘이 장기화 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하이브리드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마련해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8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는 서울 서초구 자동차 회관에서 ‘미국 신정부 출범에 따른 자동차 통상 정책 대응’ 설명회를 개최했다. ‘고율 관세’를 예고한 트럼프 당선 이후 높아지고 있는 국내 자동차 산업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인사말 하는 강남훈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회장. 사진=KAMA
강남훈 KAMA 회장은 “(트럼프 정부는) 보편 관세, IRA 폐지, 무역규범 개정조치 등 업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정책 시행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대외적으로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동차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고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전기차 보급 확대, 노후 차량 교체 지원 등 내수 진작책 또한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치명적 고율 관세, ‘합종연횡’으로 대비
자국 이익 우선주의에 입각하는 트럼프 당선인은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정책인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7월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연설에서 “취임 첫날 전기차 의무를 폐기하겠다”며 “이를 통해 미국 자동차 산업의 몰락을 막고 미국 고객들에게 자동차 한 대당 수천달러를 절약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2030년 신차 판매 50% 이상을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IRA 폐지와 함께 거론되는 트럼프의 대표 정책은 관세 확대다. 트럼프는 자국에서 생산하지 않은 모든 수입품에 전면적으로 10%의 관세를 부과, 중국산 수입품에는 60%~2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첫 집권기에 ‘무역확장법 232조’를 활용해 25% 이상의 추가 관세를 시도한 바 있다.
미국 시장에서 역대급 기록을 달성하고 있는 현대차·기아가 직접적인 영향권이 들었다. 현대차·기아는 지난달 역대 10월 기준 최다 판매를 기록했다. 올해 1~3분기 누적 전기차 판매량도 테슬라에 이어 현지 2위를 차지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과거 무역확장법을 근거로 트럼프가 다시 25% 이상의 관세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그럼에도 자동차 내수의 5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그 규모가 연간 800만대를 넘어서고 있는 미국이 과도한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한다.
발표하는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사진=KAMA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전기차 수요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축소 및 환경 규제 완화 정책은 전 세계 전기차 전환을 지연시킬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전기차는 가격 경쟁력 향상 여부가 관건으로, 당분간은 하이브리드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동차 고율 관세 도입과 관련해서는 국내 완성차 업계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조 선임연구원은 “고율 관세 부과는 국내 생산은 물론 수출에도 위험을 끼친다”며 “(고율 관세를 피하기 위해선) 현지 생산 확대, 수출 시장 다변화 등의 협상 능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의 경우 현지 생산량을 적극적으로 늘리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앨라배마 공장 생산량(35만대)에 메타플랜트(HMGMA) 생산량(30만대)을 더하면 연간 65만대 이상을 현지에서 제조 가능하다. 기아의 조지아 공장 생산량(34만대)까지 더하면 연간 100만대에 이른다. 현대차그룹은 캐즘에 대응해 내년 하반기부터 HMGMA 하이브리드 생산 비중을 점차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자동차 부품 산업에서는 트럼프의 강경책이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조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중국 배제와 맥시코를 통한 우회 수출 방지 정책이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원산지 규정 강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국내외 자동차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의달 서울시립대 초빙교수는 해외 완성차 기업들과 협력할 것을 강조했다. 송 교수는 “제너럴 모터스, 토요타와 합종연횡을 추진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며 (국내 완성차 업체는) 하이브리드 확대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송 교수는 이어 “국내 완성차 업체는 미국 외에도 대체 무역로 및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며 “미국과는 줄 것은 주되, 최대한 얻어낸다는 마음으로 트럼프 충격을 기회로 삼으려는 의지를 다져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