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사외이사 교체를 불과 열흘 앞에 두고도 아직까지 임원후보추천위원회조차 구성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자산 260여조원의 한국 최대 정책금융기관 사외이사를 정하는데 제대로 된 인사검증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산업은행은 지난 3월 손교덕 사외이사를 선임할 때도 엿새 만에 처리했다. 산업은행은 올해 5명의 사외이사 전원을 새로 선임해야 할 수도 있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오는 25일 임기가 만료되는 양채열 사외이사의 후임을 정하는데 필요한 임추위를 꾸리지 않았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임추위 구성과 위원 선임은 이사회 의결 사항인데 이사회를 통과하지 못했다”며 “이사회가 언제 소집될지도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다음 주 18일에 이사회가 열려 임추위가 짜여진다고 해도 임명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이다.
산업은행법에서는 이사의 임면은 산업은행 회장의 제청으로 금융위원회가 결정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아직은 임추위조차 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후보를 추려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은성수 금융위원장에게 인사권을 행사해달라고 요청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금융위원장이 사전에 사외이사 선임 과정을 잘 알고 있거나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나름대로 검증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산업은행 사외이사 선임 절차가 급박하게 진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 30일 손교덕 사외이사를 임명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당시에는 3월25일 오후 4시50분에 비로소 임추위 구성과 위원 선임이 이뤄졌다. 임추위는 이동걸 회장을 비롯해 양채열 사외이사, 김정식 사외이사, 김남준 사외이사, 이윤 사외이사 등 6명 모두 내부 인원이 맡았다. 임추위가 후보군을 찾고 금융위원장이 검증을 거쳐 임명할 때까지 6일이 걸렸다.
다른 공공기관들은 임원을 선임할 때 공고모집을 하기도 하지만 산업은행은 공모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다만 공모절차는 의무는 아니다.
금융권에서는 최대 정책금융회사인 산업은행의 사외이사 선임 절차가 너무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는 거 아니냐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주요 의사 결정을 내리는 이사회의 멤버가 주먹구구식으로 채워진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금융지원까지 떠맡으면서 산업은행의 어깨가 무거워진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지적했다.
산업은행의 자산은 268조원으로 기업 자금조달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20조원에 가까운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 최근에는 40조원짜리 기간산업안정기금 운용도 맡았다. 지난해말부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두산중공업 등에 수조원을 투입하기도 했다.
산업은행은 올해 5명의 사외이사가 모두 바뀔 수 있다. 지난 3월 손교덕 이사가 이사회에 들어온 것을 비롯해 25일에는 양채열 이사의 후임이 결정된다. 김정식 이사와 김남준 이사가 다음달 27일 2년의 임기가 끝나고, 7월31일에는 이윤 이사도 2년의 임기가 찬다.
산업은행법에서는 임원의 임기를 3년 이내에서 정관을 통해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정관에서는 사외이사의 임기는 2년으로 하되 연임하는 경우의 임기는 1년 이내 씩으로 정해졌다. 총 5년까지 사외이사를 지낼 수 있다. 김정식 김남준 이윤 이사의 임기가 1년 더 늘어나지 않는다면 이 회장은 모든 사외이사를 바꾸게 되는 셈이다. 물론 임추위가 구성돼 이미 3년을 채운 양채열 사외이사가 4년간 일할 수 있도록 한다면 올해 1명 손교덕 사외이사 1명을 교체하는 선에서 인사가 마무리될 수도 있다. 하지만 4년 이상 사외이사를 지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 회장의 임기는 9월10일까지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책금융회사의 사외이사를 선임할 때 약간 ‘짜고 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고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대목도 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절차적인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노력까지 하지 않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은 안타까운 장면”이라고 꼬집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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