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8월13일 (로이터) - 10일(현지시간) 투자자들 사이에 유로존 은행주 매도세가 나타났다. 터키 위험 노출도를 우려한 영향이다. 터키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고 있지만, 정부는 통화 안정화를 위해 결단을 내릴 준비가 됐다는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리라화 가치는 올 들어 40% 이상 하락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주요 동맹국인 미국과의 갈등 확대, 재임에 성공한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통화정책 통제 등의 악재가 겹친 탓이다. 특히 터키 시중은행들이 타격받게 됐다. 이들이 보유한 부채 중 3분의 1은 외화로 구성돼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터키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 인상을 승인했다. 이에 따르면 알루미늄에는 20%, 철강에는 50% 관세가 부과된다. 터키의 미국인 목사 구금을 비롯한 외교적 문제가 발생해 양국간 긴장이 고조된 탓이다.
유로존 은행주 매도세는 이날 파이낸셜타임즈(FT)의 보도 이후 더 강해졌다. 보도에 따르면 유럽중앙은행(ECB)은 일부 은행들, 특히 스페인의 BBVA, 이탈리아의 우니크레디트, 프랑스의 BNP파리바에 대해 우려스러운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은행들은 유로존 내에서 터키와 가장 큰 규모의 사업을 진행한다.
ECB는 사안 관련 답변을 거부했다. 다만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수주 전부터 검토를 진행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들은 이번 검토가 현 상황에 따른 건전성 감독 행위라고 설명했다. 아직 상황이 심각하게 고려되고 있진 않다는 FT의 보도 내용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이날 유로존 은행지수는 3.23% 내렸다. BBVA는 5.16%, 우니크레디트는 4.73%, BNP파리바는 2.99% 하락했다.
터키는 올 상반기 BBVA가 기록한 당기순이익 가운데 3억7300만유로를 기여했다. 총량의 14%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는 BBVA가 터키 시장 혼란에 가장 취약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BBVA는 사안 관련 답변을 거부했다.
골드만삭스의 애널리스트들은 우니크레디트가 인수한 터키 은행 야피크레디의 자본 수준이 가장 취약해졌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우니크레디트는 최근 실적발표에서 터키 위험 노출도를 낮게 잡았다.
우니크레디트는 터키가 자사 매출의 2% 미만을 차지하고 있으며, 리라화가 10% 급락하더라도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약 2bp(1bp=0.01%p) 가량 타격받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CET1비율은 금융충격에 대비한 버퍼로 준비해야 하는 자본의 수준을 의미한다. 우니크레디트는 이날 답변을 거부했다.
그러나 크레딧스위스는 보고서를 통해 터키가 여전히 우니크레디트의 위험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밝혔다. 리라화 약세가 핵심자본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니크레디트는 이탈리아 내 최대 자산 보유 은행이지만, 6월 말 나타난 핵심자본 수준은 예상을 하회했다.
이어 크레딧스위스는 우니크레디트가 보유한 야피크레디 지분의 장부가치가 25억달러이고, 현재가치는 11억달러라고 보고서에서 밝혔다.
크레딧스위스는 "터키발 위험은 잠재적 자산건전성 저하를 수반한다. 터키 기업들이 대규모 달러화표시 채권의 압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규제당국이 위험 노출에 대비한 자본 확충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도 덧붙였다. 우니크레디트는 루블화 약세, 이탈리아 국채 수익률 스프레드 확대 등의 위험에도 노출돼있다.
한편, 올 상반기 말 CET1이 10.8%를 기록했다고 발표한 BBVA 또한 리라화가 10% 급락할 경우 핵심자본이 받을 영향은 2bp 가량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통계에 따르면, 유로존 은행들의 터키 위험 노출 규모는 스페인이 820억달러, 이탈리아가 170억달러에 이른다. 주요 유로존 은행들의 자산 총액이 20조유로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수준이다.
게다가 터키 위험 노출도의 상당 부분은 현지 자회사의 대차대조표상에 기록돼있는 리라화다. 이는 본사가 지고 있는 실질 위험이 더욱 작은 수준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이코노미스트들은 리라화 가치 폭락세가 터키 경제를 끌어내릴 수는 있겠지만, 유로존 은행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미약한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베렌버그의 카르스텐 헤세 이코노미스트는 "터키 내 인플레이션 급등, 국채 수익률 급등, 리라화 가치 급락 등의 악재가 나타난 점을 보면, 현재 터키가 파산의 위험에 다다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유로존 경제성장률에 끼치는 영향은 작을 것"이라며 "터키 경제 침체가 유로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0.1%포인트 미만이 되리라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터키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에 맞대응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만큼, 터키 자산 매도세는 아직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인들이 금과 달러를 리라화로 교환해 통화가치를 지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어둠의 "금리 로비스트"들과 서방의 신용평가사들이 터키 경제를 악화시키려한다고 말한 바 있다.
(편집 박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