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가 이미 지난해 5월 이 같은 금융거래 한도제한계좌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했지만 조치 기한을 한참 넘긴 현재까지 금융당국이나 은행들은 어떠한 개선책도 추진하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과 은행이 8년 묵은 낡은 규제로 ‘면피’하는 데 급급한 가운데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매년 급증하고 규제에 따른 소비자 불편은 계속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5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권익위는 지난해 5월 ‘은행계좌 개설시 금융거래목적 확인제도 개선’을 의결하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이를 권고했다.
권익위는 “금융사별로 제각각의 증빙서류를 요구함으로써 국민 불편과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익위는 △제도의 법적 근거 마련 △금융사별 증빙서류 통일 및 간소화 △사전 안내 강화 등을 권고했다. 법적 근거 마련은 올해 4월까지, 나머지는 작년 10월까지 조치하라고 기한도 정해줬다.
권익위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특별법’에 금융사가 금융거래목적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신설하라고 권고했으나 해당 법에는 여전히 해당 규정이 없다.
금융사별로 소비자가 제출해야 하는 증빙자료를 제각각 다르게 요구하거나 처음부터 명확하게 알리지 않고 있다는 권익위 지적도 개선되지 않았다. 소비자가 비대면으로 한도계좌 해제 신청을 할 수 있는 곳도 인터넷전문은행과 농협·기업·SC제일은행(근로소득자에 한해) 등 일부 특수·외국계 은행뿐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객 편의성을 고려하면 필요한 증빙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비대면을 통한 해제도 허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면서도 “이렇게 하면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게 뻔해 풀기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한도제한계좌 관련 구체적인 절차는 금융사가 자율적으로 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보이스피싱 범죄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지능화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 발생 건수는 총 3만1681건으로 2016년(1만7040건)보다 86% 늘었다. 피해액은 같은 기간 1468억원에서 7000억원으로 무려 377% 급증했다.
사기범들이 금융거래 한도계좌 등을 우회하는 기법을 속속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지난 6월 검거한 대포통장 공급 일당은 2015년부터 6년간 해외 보이스피싱·사이버도박 등 범죄조직에 대포통장을 팔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통장에 유입된 범죄 피해액만 무려 1조4700억원에 달한다.
이 일당은 명의 대여자 57명에게 1인당 300만원을 주고 명의를 사들여 이들 명의로 유령법인 150개를 세웠다. 이 법인 명의로 전국 은행을 돌며 대포통장을 만드는 방식으로 금융당국과 은행의 감시망을 피해갔다.
은행 관계자는 “금융결제원과 은행들은 금융사기 패턴 분석을 통해 대포통장 거래를 잡아내는 인공지능(AI)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지만 범죄에 연루된 계좌를 100% 잡아내긴 힘들다”고 인정했다.
빈난새/박진우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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