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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이번 회기 발의된 가상자산 법안 54개…상당수 내년 통과 가능성 지난 118대 미국 의회에서는 총 54개의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이 중 3분의 2인 38개가 공화당에서 발의한 친가상자산 성향의 법안이다. 해시드오픈리서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상자산 규제를 명확히 하기 위한 법안이 16개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가상자산의 증권성 여부에 따라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로 이원화 돼 있는 복잡한 규제 체계를 정비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재무 정책에 가상자산을 포함시키거나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기술의 활용 방안을 제시하는 등 가상자산 활성화를 위한 법안도 11개나 발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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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의 가상자산 시장 진출을 제한해 온 회계지침 ‘SAB121’의 무효화 결의안도 재추진될 전망이다. SAB121는 가상자산을 수탁(커스터디)하는 기업이 보관 중인 가상자산을 자산·부채로 잡아 재무제표에 반영하도록 하는 SEC 회계지침이다. 금융기관들은 자본 대비 부채 비율을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수탁 고객의 가상자산을 보유하려면 추가 자본을 확보해야 했다. 이러한 조건은 사실상 금융기관의 가상자산 관련 사업을 금지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SAB121 무효화 결의안은 초당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된 바 있어, 다음 국회에서는 통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최대 100만 개의 비트코인(BTC)을 전략적으로 보유하도록 하자는 법안의 향방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미선 해시드오픈리서치 센터장은 “비트코인 전체 공급량의 5%를 미국이 확보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선 ‘그림자 규제’ 먼저 걷어야…가상자산위 출범에도 업계 우려 여전 반면 국내 가상자산 제도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가상자산 친화적 법안의 통과를 논하는 것조차 시기상조라는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법적 근거가 없는 금융당국의 그림자 규제가 여전히 업계를 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 금지를 들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2018년 금융기관 행정지도를 통해 가상자산 투자 목적의 법인 실명계좌 발급을 간접적으로 금지했다. 이후 다른 국가에서는 일반적인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가 국내에서는 제한되고 있다. 또한 2017년부터 가상자산공개(ICO)를 통한 가상자산 발행도 그림자 규제로 금지돼 국내 사업자들의 해외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가상자산을 자금세탁 등 불법 행위 수단으로만 보던 과거의 규제 기조가 7년째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주요 금융 선진국에서 활발히 진행 중인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와 토큰증권발행(STO) 법제화도 국내는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과 전자증권법상 가상자산 현물 ETF와 STO 도입이 불가능해 관련 법 개정이 선행돼야 하는 상황이다.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자본시장법상 비트코인이 기초자산으로 인정되지 않아 가상자산 현물 ETF 도입이 어렵다"며, "토큰증권의 경우에도 분산원장을 활용한 STO가 가능하도록 전자증권법을 개정하고, 투자계약증권 유통 시 매출공시 의무화 등 자본시장법의 현실적 개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미국 주도의 글로벌 가상자산 정책 변화에 뒤처질 경우 가상자산 패권 경쟁에서 낙오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석우 두나무 대표는 최근 디지털자산 컨퍼런스에서 "주요국의 가상자산 정책 변화에 발맞춰 우리 제도도 개선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국내 가상자산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며, "특히 단일 테크 기업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현실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국내 가상자산 기업 육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당국도 이러한 우려를 인식해 지난달 가상자산 정책 자문기구인 가상자산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지난달 6일 열린 첫 회의에서는 법인 계좌 발급 허용 문제가 중점적으로 논의됐다. 위원회는 이를 바탕으로 이달 중 관계부처와 정책 방향을 검토할 예정이다.
그러나 업계의 우려는 여전하다. 당초 업계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하겠다고 했던 가상자산위원회에서 업계 종사자가 제외됐기 때문이다. 9명의 민간 위원 전원이 학계와 연구기관 인사로 채워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당국이 업계와의 소통을 강조하며 위원회를 출범시켜 기대가 컸으나, 민간 위원 구성을 보고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며, "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할 인사가 없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논의가 가능할지 우려된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