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 상암동 한샘 사옥에서 만난 최양하 회장은 “한샘은 가구가 아니라 공간을 파는 회사로 변화하고 있다. 새롭게 내놓은 ‘리하우스 패키지 사업’이 회사의 변신을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최양하 한샘 회장은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린다. 1994년 조창걸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전문경영인(CEO)만 24년을 하고 있다. ‘국내 최장수 CEO’의 비결은 그가 외치는 구호에 있다. “위기가 기회를 만든다.” 외환위기 때는 부엌가구업체 한샘을 종합가구 회사로 탈바꿈시켜 위기를 타개했고,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중저가 주방가구를 공급하는 ‘iK’ 사업을 성공시켰다. 2014년 이케아가 한국 시장에 진출했을 때 ‘국내 가구업계가 초토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뚫고 한샘은 매출을 2조원으로 두 배 늘렸다. 최 회장의 승부사적 기질이 이뤄낸 결과라고 업계는 평가한다. 그런 최 회장에게도 올해는 만만치 않았다. 지난해 불거진 여직원 성폭행 사건 이후 한샘 주가는 18만원대에서 6만원대로 급락했다.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71% 급감했다. 최 회장 스스로도 “24년 CEO 인생에서 올해가 가장 어려운 해였다”고 털어놨다. 2일 서울 상암동 한샘 사옥에서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내 최장수 전문경영인이라고 하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열심히 달려온 것 같아요. 다들 그 비결을 물어보는데 대답하기 난감합니다. 그저 열심히 했어요. 요새도 회사에 새벽 6시까지 출근합니다.”
▶올해 실적이 좋지 않습니다.
“상반기까지는 작년에 불거진 성추행 사건 영향이 컸습니다. 홈쇼핑 방송 같은 공격적인 영업을 자제했습니다. 하반기부터는 정상 궤도에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부동산 시장 규제 정책이 나오면서 시장이 급격히 위축됐습니다. 집을 사고팔지 않으니 가구 수요도 줄었습니다.”
▶시장 위축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보는지요.
“그보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경영환경 탓이 크다고 봅니다. 주 52시간 근무제도 시행으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회사가 한샘일 겁니다. 한샘은 정말 열심히 일하는 회사였습니다. ‘밤샘’ ‘빡셈’ 같은 별명이 붙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회사가 지난 1월부터 선제적으로 ‘주 40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면서 많은 게 바뀌었습니다. 영업사원들의 근무시간이 갑자기 줄어든 게 가장 타격이 컸습니다.”
▶다른 위기와 비교하면 올해는 어땠습니까.
“돌이켜보면 외환위기나 세계 금융위기 때보다 작년과 올해가 더 힘든 해였습니다. 사회 분위기가 급변했습니다. 회사도 따라 바뀌어야 했습니다. 급작스럽게 바뀐 사회 분위기에 적응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더군요.”
▶무엇이 가장 어려웠습니까.
“잘되는 회사엔 대부분 군대 문화가 있었어요. 한샘도 그랬고. 지금도 상명하복식 문화를 바꿔나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양성평등 문제도 그렇고…. 정부 기준이나 규제가 없던 라돈 검출 사태가 터지니 몇십 년 된 대진침대 같은 기업이 갑자기 사라져요. 옛날처럼 밤샘하며 일만 열심히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생깁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 시대가 됐습니다.”
▶어떻게 적응하고 있습니까.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쇠퇴하게 될 거라는 걸 절감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대리점과의 상생에 신경쓰고 있습니다. 넓은 점포를 낼 여력이 없는 대리점을 위해 ‘표준 매장’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나 양성평등 문제도 주의깊게 들여다보고 있어요. 매출 감소를 감수하고 주 40시간제를 먼저 적용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품질 문제는 작년 하반기부터 6개월 이상 직접 챙겼습니다.”
▶실적 부진을 극복할 방법이 궁금합니다.
“가구업체가 아니라 ‘토털 리모델링업체’로 업의 본질을 바꿀 겁니다. 거실, 방, 부엌, 화장실 등 집 전체를 ‘패키지’로 고객에게 제안하는 사업입니다. ‘리하우스 패키지’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15가지 내외 옵션 중 고객이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선택만 하면 벽지, 바닥, 창호, 가구같이 인테리어에 필요한 모든 걸 ‘원스톱 서비스’로 제공합니다. 시공 기일은 최대 5일로 맞출 거고요. 현재 전체 매출의 20% 수준인 리하우스 사업부의 매출을 내년엔 50%까지 늘릴 겁니다. 2020년까지 리하우스 대리점을 500개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대기업 중 인테리어 시장에 진출하는 최초 기업입니다.”
▶왜 리모델링 사업입니까.
“각종 세금 부담으로 주택 매매도 쉽지 않고, 규제 때문에 재건축도 만만치 않아졌습니다. 20년 넘은 노후 주택 수가 800만 가구에 달합니다. 고쳐 써야죠. 수직 증축을 하든, 계단식을 복도식으로 바꾸든 말이에요. 살던 집을 고쳐 쓰는 수요가 상당할 거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공간을 통째로 공급한다는 개념이 아직 생소합니다.
“가구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점이 있어요. 고객이 원하는 건 싱크대가 아니라 ‘부엌이라는 공간’을 원한다는 점입니다. 집도 마찬가지예요. 자동차 제조 초기 시절 미국엔 자동차 회사가 1000개도 넘었어요. 맞춤식 제작을 한 거지요. 포드가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개발해 대량생산하면서 가격은 싸지고 품질도 좋아졌죠. 저희도 소비자가 원하는 공간을 개발할 겁니다. 설렁탕집 가서 ‘함평고기에 고랭지 배추 넣어 한 시간 이상 끓여주세요’라고 주문하는 사람이 있나요? 트렌드에 맞는 공간을 ‘레디메이드(기성품)’화해서 파는 겁니다. 장기적으로 리하우스 사업으로 한샘의 국내 사업 규모가 4~5배 크는 건 문제가 없을 걸로 봅니다.”
▶중국 사업은 어떻습니까.
“리하우스 비즈니스를 해외에 제대로 뿌리내리면 연매출 100조원도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중국에서도 우리나라처럼 모델하우스 방식 주택 분양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샘과 같이 일하고 싶다고 연락해오는 중국 건설회사들이 있습니다. 집 고쳐주면서 가구와 살림살이까지 다 넣어줘 옷가방 하나만 가지고 입주하면 되는 비즈니스 모델은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커가는 소품 시장은 어떻게 대응할 겁니까.
“생활용품·소가구 시장이 10조원 가까이 되는 걸로 분석됩니다. 패브릭 하나로 2000억원 매출을 올리는 이브자리, 프라이팬으로 1500억원 규모 기업으로 성장한 해피콜 같은 회사도 있죠. 소품 사업을 키울 겁니다. 일단 유통망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지금은 직매장에서만 소품을 팔지만 키친웨어 전문점, 생활용품 전문점을 열어 공격적으로 확장하려고 합니다.”
▶한샘을 어떤 회사로 만들고 싶습니까.
“이케아는 전 세계에서 연 45조원, 홈데포는 북미 시장에서 연 90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인테리어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혁신이 일어날 여지가 많은 산업입니다. 매일 직원들한테 얘기합니다. 한샘도 충분히 100조원 규모 기업이 될 수 있다고. 한샘 직원들이 한샘을 통해 자기가 가진 꿈과 목표를 실현했으면 좋겠습니다. 회사가 직원에게 줄 수 있는 진짜 좋은 선물은 편안한 환경이 아니라 다른 회사에 가더라도 잘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퇴직한다면 어떤 말을 할 생각인지요.
“아직 퇴직사 같은 건 생각 안 해봤어요. 주변에서 늘 한샘의 성공 비결을 이야기해달라고 하는데 강연은 세 번밖에 못 나섰네요. 한샘은 사실 성공 사례보다는 실패 사례가 많은 회사예요. 우리가 겪은 시행착오를 한 번쯤 정리해 다른 이들에게 전수하는 것도 내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합니다.”
■약력
△1949년 서울 출생
△1968년 2월 보성고 졸업
△1973년 2월 서울대 공과대학 금속공학과 졸업
△1976년 6월 대우중공업 입사
△1979년 1월 한샘 입사
△1983년 1월 공장장
△1989년 1월 상무이사
△1994년 1월 전무이사(대표이사)
△1997년 1월 대표이사 사장
△2004년 6월 대표이사 부회장
△2010년 1월~ 대표이사 회장
심성미/김진수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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