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카세(おまかせ)’는 ‘남에게 모두 맡긴다’는 뜻의 일본어다. 그날그날 신선한 재료를 다루는 게 중요한 일본의 스시(초밥) 레스토랑에서 ‘셰프의 추천 메뉴’라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 오마카세가 국내에서는 스시에 이어 한우, 양식, 디저트, 커피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음식점이 알아서 고기를 정해 구워주는 ‘한우 오마카세’는 서울에만 50여 곳이 영업하고 있다. 서울 청담동의 설로인과 수린, 마장동의 본앤브레드 등이 시작해 주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으로 번졌다. 도쿄등심은 서울에만 7개 지점을 냈다. 카페에서도 오늘 가장 맛있는 원두를 종류대로 맛볼 수 있는 방식의 테이스팅 메뉴가 늘고 있다. 믿을 수 있는 식당이나 카페에서 뭔가 특별한 메뉴를 서비스받을 것이란 기대 등이 오마카세로 소비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스시에서 한우로
오마카세를 처음 알린 건 고급 스시 레스토랑이다. 바 뒤에서 스시 마스터가 잘 손질한 신선한 재료로 스시를 만들어줬다. 스시효, 오가와 스시, 기꾸스시 등이 대표주자였다. 오마카세는 일종의 ‘큐레이션’이다. 좋은 것을 추천해준다. 최근 신선한 재료와 새로운 경험을 찾는 미식가가 늘며 오마카세는 다른 음식으로 확산되고 있다. 브랜드나 간판이 아니라 셰프의 명성을 좇는 소비자가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양식에서도 ‘오늘의 추천’ 등의 이름으로 비슷한 코스가 있다. 하지만 생선, 고기 등의 식재료를 익히지 않고 먹는 문화가 발달한 일식과 한식에서 더 활발하게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우는 한국인에게 익숙하면서도 비싼 식재료다. 조리법은 간단했다. 찜, 구이, 국 등으로 한정됐다. 부위별로 완전히 다른 맛을 내고, 조리법에 따라 양식 일식 한식 등으로 여러 가지 변형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셰프들에겐 오마카세의 주재료가 됐다.
손님→셰프와 식재료로 ‘중심 이동’
오마카세는 ‘제철 식재료를 이용하는 요리법’이다. 정해진 메뉴가 없기 때문에 셰프의 창의력이 중요하다. 식재료를 따라가는 메뉴 개발이 셰프들에겐 고통스러운 작업이지만, 1년 내내 같은 메뉴를 반복해야 하는 지루함보다는 훨씬 낫다는 게 요즘 셰프들의 이야기다.
한우 오마카세 코스를 전문으로 선보이는 청담동 비플리끄의 윤남노 요리사는 “봄에는 각종 허브와 봄나물, 여름에는 당도 높은 과일 등 그 계절에 가장 맛있는 식재료로 한우와 어울리도록 메뉴를 개발한다”며 “조리법 역시 카르파초(신선한 날고기를 얇게 썬 것), 수제 육포, 숯불구이 등 다양한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한우 오마카세를 내는 곳들은 개성이 다 다르다. 식재료의 경계도 없다. 부로일은 문어, 홍새우, 푸아그라 등의 전채요리로 시작해 한우를 부위별로 다르게 요리해 한 접시씩 내놓는다. 부로일 관계자는 “셰프가 여러 가지 실험을 할 수 있고, 먹는 사람도 그 부분에서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커피, 디저트로도 진화
오마카세 문화는 커피, 디저트 등 다양한 외식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서울 연남동 바람커피에서는 1만~3만원에 원두 세 종류로 핸드드립한 커피를 순서대로 맛볼 수 있다. 부산에는 마틴커피로스터스, 인천 부평에는 온더바가 있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의 소나는 네 가지 디저트를 코스요리로 내놓고 있다.
오마카세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낯설지 않은 문화다. 예전부터 ‘시가’ ‘제철 코스요리’ 등 이름으로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있었다. ‘단골집’이라는 개념도 주인장 마음대로 내놓는 음식들을 거부감 없이 소비하게 했다. 하루에 3~4테이블만 받는 프렌치 레스토랑과 원테이블 레스토랑도 2000년대 중반 등장해 ‘오늘의 요리’를 선보여왔다. 1인 자영업자와 소규모 레스토랑이 늘어난 것도 오마카세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소량으로 그날 필요한 재료를 사서 조리하기 때문에 재고 부담이 없다. 문정훈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 교수는 “소비자는 매번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좋은 제철 식재료를 즐길 수 있고, 공급자는 가장 자신있는 방식으로 최고의 요리를 낼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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