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프로그래머 A씨는 얼마 전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심신이 지쳤다는 게 이유였다. 서류에 적힌 퇴직사유는 ‘권고사직’. 실제론 자진 퇴사였지만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비자발적 퇴사’ 모양새를 갖췄다. A씨는 이렇게 최근 3년간 세 번 사직서를 냈고, 그때마다 월 100만원이 넘는 실업급여를 받아 휴식과 해외여행으로 재충전했다. 구인난을 겪는 업종이다 보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취업은 가능했다.
일자리·복지 재정이 ‘밑 빠진 독’으로 불리는 데는 엉성한 설계와 허술한 단속이 한몫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마지막 수급 기간 만료일 기준으로 직전 3년간 실업급여를 3회 이상 받은 사람은 올 들어 5월까지 1만8636명으로 집계됐다. 이 추세라면 올해 수치는 작년(3만2308명)을 크게 웃돌 전망이다.
최근 3년간 실업급여를 3회 이상 받았다는 건 △한 직장에서 180일 이상 근무하다가 △‘비자발적’으로 해고되자 △적극적으로 재취업 활동을 벌이는 과정을 최소 1년에 한 번씩 반복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 중 일부는 자발적 퇴사자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비자발적 퇴사인 것처럼 꾸미면 편히 쉬면서 최소 90일 동안 최대 월 150만원가량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인난이 심한 소프트웨어, 간호 관련 업종에서 이런 식의 편법 수급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현행법상 실업급여 반복 수급을 제한하는 규정도 없고 실업급여를 받는 시기에 해외여행을 금지하는 규정도 없다”며 “실제 구직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모니터링과 단속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편법을 넘어 부정수급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부정 신고센터에 신고된 노동분야 부정수급 건수는 173건으로, 전년(77건)보다 124.6% 늘었다. 본인은 호주로 출국하고 비슷하게 생긴 형이 고용센터를 찾아 구직활동을 인정받는 식으로 실업급여 900만원을 타낸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올해 고용보험기금의 실업급여계정 지출이 지난해(7조7198억원)보다 1조4707억원(19.0%) 늘어난 9조1905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대로 가다간 고용보험기금의 안정성이 흔들릴 것으로 판단한 정부는 고용보험료율 인상(급여의 1.3%→1.6%)에 나섰다. 고용보험기금은 지난해 2750억원의 적자를 냈다.
오상헌/서민준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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