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사들은 과거 ‘부동산 디벨로퍼’로 불렸다. 목 좋은 곳에 백화점, 마트를 짓기만 하면 장사는 거저먹기였다. 사업의 성패는 ‘상권’ 개발에 있었다. 2000년대 들어선 경쟁의 축이 ‘가격’으로 넘어갔다. 좋은 상품을 싸게 파는 것이 관건이었다. 유통사들은 ‘최저가’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그러던 ‘전선’은 또다시 이동하고 있다. 유통사들이 눈을 돌린 곳은 결제시장이다. 은행, 카드사 등 금융사가 그동안 장악하고 있던 영역이다. 유통사는 ‘미래의 석유’로 불리는 소비자 데이터를 뽑아내야 했다. 간편결제 사업이 그 통로다. 경쟁은 이미 본격화됐다.
○쓱페이, 오픈뱅킹 서비스 도입
신세계그룹의 간편결제 서비스 ‘쓱페이’(SSG페이)를 운영 중인 신세계I&C는 21일 오픈뱅킹 서비스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오픈뱅킹은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융 정보를 공개해 이를 제3자가 활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금융사뿐 아니라 핀테크 기업들도 금융결제원을 통해 은행 전산망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작년 10월 말 10개 주요 은행을 시작으로 참여 금융사가 늘고 있다. 신세계는 유통사 중 오픈뱅킹을 최초로 도입했다.
쓱페이에 은행 계좌를 등록해 놓으면 이날부터 계좌 조회와 송금 등의 금융 서비스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간단한 본인 확인만 거치면 된다. 보안카드, 1회용 비밀번호(OTP) 등 복잡한 절차를 요구하지 않는다. 송금 수수료는 다음달 말까지 10회에 한해 무료다. 이후는 건당 150원을 내야 한다.
다음달 서비스가 한 차례 업그레이드된다. 카카오 송금하기처럼 스마트폰 내 연락처만 누르면 바로 송금이 가능해진다. 여러 건을 한꺼번에 송금하는 기능도 더해진다. 스마트폰을 흔들기만 하면 상대방에게 바로 송금하는 기능도 넣기로 했다.
신세계는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등 그룹 내 유통 계열사에서 쓸 수 있도록 2015년 쓱페이를 처음 내놨다. 이후 기능을 계속 늘려갔다. 간편결제를 넘어 카드 발급과 대출, 보험 가입 등도 가능하게 했다. 서울시 세금 납부 서비스, 아파트 관리비 결제 등의 서비스도 더해졌다. 이용자가 800만 명을 넘기자 신세계는 쓱페이를 오는 6월 쓱닷컴에 합치기로 했다. 쓱닷컴은 작년 3월 설립된 신세계그룹 내 e커머스다. 온라인 쇼핑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가 간편결제란 판단 때문이다.
○빅데이터 활용 목적이 커
간편결제는 최근 유통사들에 ‘뜨거운 감자’다. 주요 유통사가 모두 뛰어들었다. 가장 앞선 곳은 이베이코리아다. ‘스마일페이’란 이름으로 2014년 처음 사업을 시작했다. G마켓, 옥션 등이 있어서 가능했다. 현재 약 1450만 명이 사용한다. 유통사 중에선 가장 많다. 파리크라상, 던킨도너츠, CGV 영화관 등 다양한 곳에서 쓸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쿠팡의 ‘쿠페이’는 신흥 강자다. 쿠팡의 성장과 맞물려 사용자 수가 1000만 명을 넘겼다. 국내 간편결제 중 결제 절차가 가장 간단하다. 비밀번호 입력, 지문 인식 등도 필요 없다.
롯데그룹의 ‘엘페이’는 잠재력을 높이 평가받는다. 국내 최대 유통사여서 그만큼 쓸 수 있는 곳이 많다. 특히 이달 말 출시 예정인 롯데의 통합 e커머스 ‘롯데ON’과 합쳐지면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될 것으로 업계에선 본다.
이들이 간편 결제 사업에서 노리는 것은 데이터 수집과 통합이다. 과거에는 구매 데이터를 카드사, 은행이 가졌다. 유통사는 자기 고객이 뭘 샀는지 알아도 다른 곳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심지어 계열사 간 데이터도 공유가 안 됐다. 간편 결제가 이를 한번에 해결해 줬다. 쓱페이만 있으면 신세계그룹 내 모든 결제 정보뿐 아니라 제휴사 데이터까지 알 수 있다. 이 데이터를 통합하면 소비자 개인을 온전히 이해함으로써 ‘1 대 1 맞춤형 추천’을 할 수 있게 된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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