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 자영업자들이 몰려 있는 도소매·숙박·음식점 업종의 대출 규모가 지난 9월 역대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27일 서울 신촌의 한 의류매장에 폐업 정리 안내문이 걸려 있다. 김범준 기자 bjk@hankyung.com
영세 자영업자들이 몰려 있는 도소매·숙박·음식점 업종의 지난 9월 대출 규모가 1년 전과 비교해 24조원가량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통계가 처음 작성된 2008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직원을 내보내고 빚을 내서 버티는 양상”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27일 발표한 ‘3분기 예금취급기관 산업별 대출금’을 보면 9월 말 기준 도소매·숙박·음식점 업종 대출금 잔액은 220조257억원으로 작년 9월 말보다 12.1%(23조7294억원) 늘었다.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집계를 시작한 2008년 이후 가장 높았다. 전체 산업 대출금 증가율(6.9%)과 견줘도 이 업종의 증가율이 유독 두드러졌다.
도소매·숙박·음식점 업종의 대출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2017년 7.2%에서 지난해 9.5%, 올해 1~3분기엔 11.3%로 높아지고 있다. 빚이 늘어난 것은 수익이 줄면서 부족한 운영자금을 차입금으로 충당한 결과로 해석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3분기 전국 가구(가구원 2인 이상)의 사업소득은 월평균 87만9800원으로 작년 3분기와 비교해 4.9% 줄었다. 200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자영업자들이 직원을 내보내는 사례도 늘고 있다. 10월 기준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150만7000명으로 1년 전보다 8.7%(14만3000명) 줄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과 내수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들이 직원을 내보내고 차입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소득 감소폭 최대
2금융권 대출 증가율은 30% 돌파
“서울 압구정동과 청담동 일대에 메이크업숍과 헤어숍을 중심으로 가게를 합치는 사례가 많아졌어요. 인건비 부담에 가게를 내놓는 겁니다. 막 들어온 직원도 한 달에 210만원을 줘야 합니다.”(압구정동 A메이크업숍 사장 오모씨)
“문 닫는 공장이 늘면서 저녁 장사는 이제 접었고 점심 장사도 하루 10명 안팎으로 줄었어요. 혼자 가게를 운영해도 막막합니다.”(인천 남동공단 B식당 사장 김모씨)
내수부진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소상공인연합회 각 지회장들에게는 요즘 이 같은 현장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접수되고 있다. 서울지역의 한 지회장은 “우리 소상공인들은 사업을 접든지, 차입금으로 생존을 위한 버티기에 들어가든지 양자 간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220兆 빚폭탄’ 업은 자영업자
2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 9월 말 기준 예금취급기관의 대출금 현황을 보면 자영업자가 몰린 도소매·숙박·음식점 업종 대출금 잔액은 220조25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1%(23조7294억원) 증가했다. 지난 2분기(12.0%)에 이어 두 분기 연속 사상 최대 증가율을 기록했다. 도소매·음식·숙박업종에는 롯데쇼핑 등 유통 대기업도 있지만 이들 대기업은 주로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은 회사채 시장을 자금조달 창구로 이용한다. 예금취급기관에서 차입금을 조달하는 곳 상당수는 자영업체다.
자영업자 대출은 최저임금이 16.4% 뛰어오른 2018년 이후 가파르게 늘고 있다. 대출 증가율은 2018년 1분기 7.94%에서 2분기 9.31%로 상승하더니 같은 해 4분기 10.7%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 11.4%, 2분기 12.0%, 3분기 12.1%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체 산업 대출금 증가율이 올 1분기 6.6%, 2분기 7.4%, 3분기 6.9%로 6~7%대를 오가는 것과 비교해 증가 속도가 눈에 띄게 빠르다.
자영업자들이 점포를 늘리거나 장비를 새로 들이면 시설자금 대출이 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시설자금 대출은 뚜렷하게 둔화되고 있다. 도소매·음식·숙박업종의 3분기 시설 차입금 증가율은 9.4%(전년 동기 대비 기준)로 통계를 작성한 2008년 이후 가장 낮았다. 인건비와 임차료, 재료비 등 운영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자영업자 대출이 많다는 뜻이다.
자영업자의 차입 여건도 나빠지고 있다. 도소매·음식·숙박업종에 대한 은행의 대출 증가율은 3분기 6.2%를 기록했다. 하지만 저축은행, 협동조합, 상호금융을 비롯한 제2금융권 대출은 1분기 26.1%, 2분기 28.6%에 이어 3분기에는 31.7%로 사상 처음 30%를 넘어섰다. 실적 부진에 신용등급이 떨어진 자영업자들이 생존을 위해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을 전전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위축된 소비에 자영업자 직격탄
자영업자들이 빚을 대폭 늘린 것은 그만큼 사업소득이 줄어든 영향 탓이다. 통계청 가계소득 동향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전국 가구(2인 이상)의 사업소득은 월평균 87만9800원으로 작년 3분기와 비교해 4.9% 줄었다. 가구의 사업소득 증가율은 작년 4분기에 -3.4%, 올해 1분기 -1.4%, 2분기 -1.8%를 기록하는 등 4분기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쪼그라든 사업소득을 빚으로 충당하기도 어려워지자 같이 일하던 직원을 내보내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 지난 10월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150만7000명으로 작년 10월과 비교해 14만3000명 줄었다. 역대 10월 기준으로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10월(26만6000명 감소) 이후 최대로 줄어든 것이다. 반면 직원을 두지 않고 혼자 사업하는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10월에 412만1000명으로 작년 10월과 비교해 2.5%(10만1000명) 늘었다.
자영업자들이 위기에 직면한 것은 내수 부진과 인건비 부담이 겹친 탓이다. 올 3분기 민간소비(실질 기준)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1.7%로 2016년 4분기(1.5%)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각종 수당을 합치면 시간당 최저임금은 이미 1만원을 웃돌고 있다”며 “인건비 부담이 경기 침체와 맞물려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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