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RP 사기, 850만 달러 증발… ‘검증’마저 속인 정교한 함정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위험한 줄타기에 나서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연준이 전날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결정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그는 물가 안정이 여전히 정책 목표라는 점을 강조하며 미묘한 균형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채권시장은 이를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고, 전날 미 국채 금리는 상승했다.
향후 발표될 인플레이션 지표가 연준의 신중한 금리 정책을 뒷받침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는 정책 신뢰성이다. 워시 의장의 전날 기자회견 발언은 시장의 우려를 키우며, 비록 제한적이지만 연준의 신뢰도에 일부 타격을 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워시 의장은 “우리는 2%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며 “그것이 바로 물가 안정의 정의”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목표치를 크게 웃도는 상황에서 이 같은 표현은 다소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목표치와 실제 물가 흐름 사이의 격차를 어떻게 설명하고 시장과 소통할지에 대한 명확성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연준의 커뮤니케이션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이날 발표되는 6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물가 둔화를 보여주며 최근 지표 부진 속에서 시장에 다소 안도감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예상대로 물가가 둔화하더라도 연준의 2% 목표와 실제 전년 대비 물가 상승률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극이 남을 전망이다. 앞서 발표된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 흐름도 이러한 격차를 시사하고 있다.

금리 인상을 미루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워시 의장은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고, 그 배경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데도 실패했다. 채권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미 국채 금리는 일제히 상승했으며, 특히 인플레이션에 가장 민감한 만기인 30년물 국채 금리는 5.20%까지 급등해 2007년 이후 최고 종가를 기록했다.
워시 연준 의장은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관리 성과를 평가할 때 인내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5월 취임한 이후 아직 재임 기간이 짧아 정책 성과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논리다. 일견 타당한 주장이다. 하지만 채권시장은 전임 의장이 직면했던 인플레이션 문제와 현재 상황을 구분하지 않는다. 시장에는 모두 하나의 연속된 흐름으로 인식된다.
이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문제다. 인플레이션은 이미 1년 넘게 연준의 2% 목표치를 크게 웃돌고 있으며, 최근 몇 달 사이에는 다시 상승 속도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이란 전쟁이 다시 격화되면서 에너지 가격 상승 압력이 지속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연준이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인플레이션 지표를 중시한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변동성이 큰 항목을 제외한 근원 지표가 물가 추세를 보다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근원 인플레이션 역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를 통해 확인된 물가 둔화 흐름은 긍정적인 신호이며, 이날 발표될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표에서도 이러한 추세가 확인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시 의장의 과거 발언을 감안하면, 그는 관망 기조를 유지하는 정책 전환의 근거로 대체 인플레이션 지표에도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의 절사평균 PCE 물가지수(Trimmed Mean PCE inflation rate)는 5월 기준 2%대 초반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중동 지역의 무력 충돌 재개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수출이 사실상 막힌 상황은 앞으로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준의 역할이 사실상 끝났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체 물가지표를 내세우는 것은 채권시장을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핵심 위험은 전체 물가 상승률(headline inflation)이 주요 근원 물가지표로 다시 전이되는 상황이다. 이미 이러한 전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신호도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연준의 금리 동결 결정이 합리적이라고 평가하지만, 워시 의장이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응하는 역할을 당분간 채권시장에 맡길 수 있다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취임 초기부터 통화정책 신뢰성을 구축해야 하는 중앙은행 수장에게는 부담스러운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워시 의장은 “이번 연준은 물가를 목표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책무에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의 신뢰성은 맡은 역할을 수행하고 책임을 다하는 데서 나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준이 채권시장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발언은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연준은 전날 시장 영향력의 일부를 잃었다. 물론 예상보다 낮은 인플레이션 지표가 연준을 지원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반대 방향의 전개 역시 충분히 가능하다.
분명한 것은 채권시장이 이미 워시 의장을 시험하고 있다는 점이다. 긍정적인 부분은 그에게 아직 정책 방향을 수정할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날 논의가 향후 정책 가이던스 전략의 기준이 된다면, 앞으로 몇 달간 연준의 영향력과 채권시장의 관계는 순탄치 않은 길을 걸을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