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시가총액 최상위 100종목들의 이름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중 영문 또는 영어를 한글 발음으로 만든 회사명을 가진 종목이 90개가 넘었습니다. 마치 2000년 닷컴버블 때 회사 이름에 닷컴과 같은 영문명이 들어가면 주가가 폭등하던 상황이 떠오르더군요.
그리고, 시가총액 상위 100종목의 재무제표를 살펴보다 보니 현재 시가총액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적자인 종목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코스닥 시장의 주가가 매우 왜곡된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코스닥 시총 상위 100종목 중 6월 말까지의 누적 실적 적자 종목 수 30개
오래전부터 코스닥 시장은 회사의 성장성과 네러티브에 따라 주가가 형성되어 왔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앞서 인트로에서 언급 드린 바처럼 회사 이름을 멋지게 영어를 섞어가며 만든 코스닥 종목이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가총액 Top 100종목 중 90여 개의 종목이 알파벳 또는 영어단어를 한글화한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코스피(유가증권) 시장도 이런 경향이 있긴 합니다만, 이름이 올드해 보이면 밸류에이션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서일까요? 코스닥 시장은 유독 심합니다.
그렇게 멋진 이름과 회사에 대한 성장스토리를 제시해서인지 코스닥 시장 시총 상위권 종목들은 화려한 주가 상승을 만들면서 투자자들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곤 하였지요.
그런데 오늘 코스닥 시장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종목을 살펴보다 보니, 이건 너무한 건 아닌가 싶은 상황이 눈에 보이더군요. 6년 넘게 연속 적자를 지속하고 있고 최근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던 회사가 시가총액 1조 원대에 위치해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회사만 그런가 싶어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100종목의 올해 2024년 6월 말까지의 누적 실적을 조사하여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시가총액 Top 100종목 중 영업이익이 적자인 회사는 31종목, (지배주주 지분) 순이익이 적자인 회사는 30종목에 이르렀습니다. (코스피 시장은 10종목 정도에 불과합니다.)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100종목 중 눈을 감고 아무 종목이나 집어내도 30% 확률로 적자 기업을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심지어 적자가 수년간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슈와 네러티브 또는 테마 등을 타고 주가가 폭등하였던 종목들도 부지기수입니다. 물론 코스닥 시총 상위 종목 중에는 매출액, 이익 등이 꾸준히 성장하면서 급등한 좋은 종목들도 있습니다만, 그저 겉모양과 스토리만으로 주가가 고공권에 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현재 코스닥 시장은 매우 비효율적인 시장 : 투자 이론보다는 수급과 분위기가 좌우
주식시장에 대해 묘사한 투자 격언 중에 “주식시장은 미남/미녀 선발대회”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논리적인 부분보다는 투자자들의 관심이 몰리는 종목이 움직이기 때문에 이러한 말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도 선이 있습니다. 아무리 군중들의 투표로 미남/미녀를 선발한다고 하더라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인물이 없는 후보에게는 사람들이 투표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코스닥 시장은 선을 넘어도 많이 넘었습니다. 시장에서 퇴출당하여도 이상하지 않을 회사들이 시가총액 최상위권에서 수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이는 투자자들의 심리뿐만 아니라 패시브 투자가 증가하면서 ETF와 인덱스 펀드들이 시총 최상위만 매매하다 보니 시장의 자정 작용이 약해진 것도 원인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결국, 코스닥 시장은 마치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 눈에 보이는 광경처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는 원래 그래~”라면서 말입니다. 그야말로 매우 비효율적인 시장 그 자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장기적인 부담만 남기는 현재 코스닥 시장
물론 코스닥 시장이 자정 작용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코스피(유가증권) 시장과 비교하면 합리적인 주가로 되돌리는 과정과 시간이 매우 복잡하고 오래 걸릴 뿐이지요. 문제는 그 시간이 수개월이 아니라 몇 년이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 예전에는 이 정도로 길지는 않았습니다.)
말도 안 되는 주식이 테마를 타고 시가총액 최상위권에 올라오면, 패시브 자금과 시장 참여자들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회사의 실적은 간과하고 수급만으로 주가가 최상위권을 유지합니다. 그 기간이 2010년대 후반, 특히 2020년대 들어서는 수년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서서히 기대했던 그 회사의 실적이나 이상향이 현실이 되지 않으면 매도세가 점점 커지면서 주가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고, 코스닥 대표 지수에서 제외되게 되면 급격히 붕괴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 과정에서 코스닥 지수는 허무하게 급등했다가, 허무하게 폭락하는 상황들이 반복되고, 이는 한편, 수십 년간 코스닥 지수가 1,000p도 제대로 넘지 못하는 이유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편 이러한 코스닥 시장 시총 최상위에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고평가와 설명 불가능한 밸류에이션 현상으로 인해, 오히려 코스닥 시가총액 하위권에서는 회사 이름이 올드하다는 이유로, 네러티브가 없다는 이유로, 밸류에이션 멀티플이 낮다는 이유로, 고배당 수익률 종목이라는 이유 등등 말도 안 되는 명분으로 극단적인 저평가 영역에 들어간 종목들이 제법 많습니다.
코스닥 시가총액 최상위권에서는 수년간 적자행진을 이어가도 수조 원대 시가총액인데, 코스닥 시가총액 하위권에서는 수년간 흑자행진과 매출 증가가 있었어도 주가가 늪에 빠진 듯 올라오지 못하는 현재 코스닥 모습은 그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본 풍경처럼 당혹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24년 8월 23일 금요일
lovefund이성수 [ CIIA / 가치투자 처음공부 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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