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라와 게임 전문 인터넷 방송인(스트리머) ‘우왁굳’이 협업한 제품을 사기 위해 지난 4일 ABC마트 인천 간석점 앞에 긴 줄이 생겼다. 휠라코리아 제공
‘휠라(FILA)’는 1990년대 전성기를 누린 뒤 줄곧 오래된 브랜드로 인식됐다. ‘아저씨들이 신는 양말 브랜드’였다. 새로울 것도 없고 새로운 제품을 내놔도 안 팔렸다. 그랬던 휠라가 지금은 10~20대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가 됐다. 6만9000원짜리 휠라 신발은 ‘밀리언셀러’에 오르고 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는 먼저 손을 내밀어 협업 제안을 해올 정도다. 휠라코리아 주식은 MSCI 한국지수에 편입돼 증시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가격 확 낮춰 젊은 층 공략
윤근창 사장
휠라코리아 매출은 2016년 9671억원에서 지난해 2조5303억원으로 두 배 이상 뛰었다. 올해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7.5% 증가한 7258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107.8% 급증한 739억원에 달했다.
휠라의 부활은 가격 인하에서 출발했다. 2016년부터 9만~11만원대였던 신발값을 5만9000~6만9000원대로 내렸다. 그러자 중·고등학생들이 먼저 반응했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 다른 스포츠 브랜드보다 5만~7만원가량 값이 싼 데다 교복에 잘 어울리는 디자인이었기 때문이다. 2016년 9월 선보인 코트디럭스는 지금까지 135만 켤레가 팔렸다. 후속 제품인 디스럽터2(사진)는 지난해 6월 출시 이후 지금까지 150만 켤레가 판매됐다. 미국 신발 전문 미디어인 풋웨어뉴스가 선정한 ‘2018 올해의 신발’에 디스럽터2가 이름을 올렸다. 나이키 아디다스 리복 등 글로벌 브랜드를 제치고 정상에 오른 것이다. 디스럽터2는 연말까지 세계에서 1000만 켤레 판매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생산 단가 최대 50% 낮춰
휠라가 가격을 낮출 수 있었던 건 안정적인 생산시스템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과거엔 중국 공장에 샘플 제작을 의뢰하고 제품 생산을 기다렸지만 ‘하세월’일 때가 많았다. 그래서 2009년 5월 중국 진장에 글로벌소싱센터를 직접 세웠다. 직접 개발한 샘플을 즉시 주문할 수 있고, 자체 디자인 관리도 가능해졌다. 품질 개선도 뒤따랐다. 이처럼 5년간의 노력 끝에 안정적인 생산시스템을 확보하면서 단가를 30~50% 내릴 수 있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글로벌소싱센터의 올해 생산량은 한국용 700만 켤레를 포함해 총 4500만 켤레에 달한다. 2010년보다 15배나 늘었다. 전 세계에 판매되는 휠라 신발의 70%가량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지금은 의류 샘플도 개발 중이다.
생산 혁신을 주도한 건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의 아들인 윤근창 사장이었다. 2007년 휠라USA에 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사업개발 및 생산분야에서 일을 시작한 뒤 제품 개발과 기획, 라이선싱, 도매유통 등 모든 분야를 거쳤다. “사장님이 실무를 가장 잘 안다”는 말이 직원들 사이에서 나돌 정도다. 2013년부터 미국 지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았던 그는 당시 3년 동안 중국 글로벌소싱센터를 오가며 생산 혁신에 주력했다. 윤 회장은 올해 3월윤 사장에게 대표이사직을 물려주고 자신은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도매·온라인·협업 강화
유통망도 성공의 한 축으로 꼽힌다. 2016년 11월 휠라는 홀세일(도매)본부를 신설했다. ABC마트, 슈펜 등 젊은 층이 자주 찾는 멀티숍과 거래를 시작했다. 휠라는 그전까진 백화점, 쇼핑몰 위주로 판매해왔다. 멀티숍들은 전국 매장에 신발을 한꺼번에 주문하기 때문에 안정적 매출을 낼 수 있었다. 디스럽터2는 홀세일로만 100만 켤레를 팔았다.
온라인몰도 강화했다. 직영몰이어서 수수료가 들지 않고 재고관리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펜디 어반아웃피터스 츄파춥스 등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도 추진했다. 게임 스트리머 ‘우왁굳’과 협업한 제품은 대히트를 쳤다. 롯데쇼핑 e커머스사업본부와 함께 롯데 전용상품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협업을 진행하고 온라인상품을 늘릴수록 회사의 수익성은 좋아졌다. 협업 상품에 대한 로열티 수익이 늘고 관리비용은 줄어든 것이다.
박희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롱다운 등 겨울 의류가 잘 팔리는 4분기엔 영업이익이 작년보다 83.8% 늘어난 946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며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확대하면서 브랜드 인지도가 상승해 로열티 수입도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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