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축한 소와 돼지를 부위별로 잘라 공급하는 ‘고기 공장’들이 무너지고 있다. 경북 김천에서 연간 1000마리 이상 도축하던 D업체는 지난달 최종 부도 처리됐다. 전북 전주에서 19년간 도축장과 육가공 공장을 운영해온 C업체도 최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회생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신청을 기각했다. 연 매출 270억원대인 이 회사는 130여 명 직원의 퇴직 신청을 받고, 부도 절차를 밟고 있다.
‘1차 육가공 업체’로 불리는 고기 공장은 전국에 약 3600개. 이 가운데 D, C사 외에도 상당수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으로 축산업계는 보고 있다. 외식경기 침체가 축산물 유통 생태계를 흔들기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과 주 52시간 근로제 등으로 외식업이 위축되면서 중견 육가공업체가 도산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외식업 지수 최저 수준
육가공 업체들이 큰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것은 2016년부터다. 그해 9월 부정청탁금지법이 시행됐다. 이어 주 52시간 근로제와 ‘미투 운동’ 등으로 기업의 단체회식이 급격히 줄었다. 회식 감소는 고기 수요의 급감으로 이어졌다. 경기침체와 고용시장 위축은 외식업 수요를 더욱 얼어붙게 했다. 이는 고기 공장의 경영난으로 이어졌다. 외식산업경기전망지수는 2016년 9월 부정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70 이하로 떨어진 뒤 계속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에는 5년 만에 최저인 64.2를 기록하기도 했다.
1차 육가공 공장은 축산 농가와 식당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전국 70여 개 도축장으로부터 소와 돼지를 받아 부위별로 나눠 전국 고깃집과 정육점, 대형마트 등 5만여 곳에 납품한다. 국내에서 생산된 돼지고기의 약 98%, 소고기의 약 73%가 1차 육가공 공장을 거쳐 나간다. 1980년 이후 1인당 육류 소비량이 증가하면서 이 회사들도 함께 성장했지만 최근 3년 새 급속히 경영난에 빠져들었다.
HMR에 밀리고 수입육에 치이고
외식 시장이 침체되자 육가공 공장에는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다. 주 5~6일씩 돌리던 공장을 요즘은 3~4일만 돌리는 일도 많아졌다. 더 이상 쌓아둘 창고가 없어 올 들어서는 시장에 저가로 무더기로 내놓기도 했다. 국산 돼지고기 1㎏에 3900원짜리도 등장했다. 국내 최대 한돈 협동조합인 도드람은 냉동 창고에 수천t의 돼지 뒷다리 등을 쌓아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에도 돼지고기값이 크게 오르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가정간편식(HMR)과 수입 고기도 육가공 공장에 타격을 줬다. 국민 1인당 하루 육류 소비량은 2010년 100.1g에서 지난해 약 120g으로 늘었다. 외식 경기가 침체된 반면 HMR 시장은 성장하면서 육류 소비가 늘었다. 함정은 HMR은 대부분 수입육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단가가 싸고, 냉동이라 더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소고기 자급률은 36.4%, 돼지고기 자급률은 66.9%로 둘 다 사상 최저였다.
축산업까지 확산 우려
서울 수도권보다 경남 경북 충남 등이 더 큰 타격을 받았다. 자동차 조선 등 제조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지방 외식 경기가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충남 아산에서 한우 농장과 육가공회사,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서 단체회식마저 줄어 매달 1000만원 이상 적자를 내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육가공업체들 사이에서는 연쇄 부도 우려가 퍼지고 있다. 축산업계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회식의 실종-식당의 경영난과 고기 수요 감소-육가공업체 도산’이 소와 돼지를 키우는 축산업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얘기다. 김삼희 한국외식산업연구원 연구실장은 “최저임금 인상과 직장인들의 생활 패턴 변화 등으로 외식업 경기가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외식 경기 침체는 육가공 공장은 물론 도축장과 축산 농가 등 생태계 전반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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