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개발자 뽑습니다” 정보기술(IT)업계의 우수 개발자 채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가중되고 있다.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 붙은 모바일 앱 개발업체의 채용 광고. 신경훈 기자
얼마 전 대기업에서 정보기술(IT) 프로젝트를 따낸 소프트웨어 관련 중소기업 A사 대표는 밤잠을 설치고 있다. 수개월 공들인 끝에 수주에 성공했지만 13년차 핵심 개발자가 “지금 연봉의 두 배를 제안받았다”며 돌연 사표를 냈기 때문이다. A사 대표는 “다른 개발자를 구하지 못해 프로젝트를 반납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IT업계를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전문가 등 개발자 구인난이 심해지면서 중소기업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고액 연봉, 주식매수청구권(스톡옵션) 등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과 유니콘기업급 스타트업들이 개발자를 싹쓸이하면서 중소기업의 인력 유출이 잇따르고 있다.
최소 인력으로 운영하는 중소기업은 개발자가 회사를 떠나면 당장 업무가 마비될 수밖에 없어 발을 구르고 있다. 스마트공장으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중소제조업체도 개발자 인력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올해 소프트웨어 및 시스템통합(SI) 분야 개발인력은 수요(32만6450명)에 비해 공급은 58% 선인 18만8700명에 그칠 전망이다. 대기업 IT 계열사에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한 협력사 대표는 “최근 구직 사이트를 통해 개발자를 모집했는데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며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 이후 이런 개발자 인력난은 처음 본다”고 했다.
국내 벤처 1세대 기업인인 이금룡 도전과나눔 이사장은 “AI를 비롯해 가상현실(VR) 클라우드 기술 발달로 스타트업이 도전할 수 있는 길이 크게 넓어진 게 인력 부족의 원인”이라며 “정부가 개발자 육성 프로그램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발자 환승센터’로 전락한 中企…"프로젝트 어쩌나" 발 동동에듀테크 업체 A사는 요즘 팀장급 개발자를 구하느라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작년에 출시한 안드로이드 기반 운영체제의 중고생용 학습용 앱에 추가로 애플 (NASDAQ:AAPL) 운영체제(iOS) 기능을 넣을 계획이었지만, 개발자가 갑자기 대형 정보기술(IT) 업체로 이직했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아이폰을 이용하는 학생이 많아 안드로이드 앱으로는 출시 효과가 미미한 상태”라며 “반쪽짜리 프로젝트로 전락할 판”이라고 우려했다. 정보기술(IT) 개발자의 연쇄 이직 행렬에 중소·벤처기업들이 업무에 차질을 빚는 사례가 늘고 있다. IT 기업이 많은 경기 분당구 판교역 지하철에 개발자 채용 광고가 붙어 있다. /신경훈 기자
개발자 연쇄 이직이 잇따르면서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등 어려움을 겪는 중소·벤처기업이 늘고 있다. 직원 10명 미만의 초기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밸류체인 말단에 있는 중소 IT업체의 고민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연봉 수준이 낮아 우수 인력을 데려올 수 없고, 경력을 쌓은 직원들은 더 큰 기업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개발자 쟁탈전…연쇄 이동 본격화
IT 벤처·스타트업 업계에선 요즘 HR(인적자원관리) 담당자 간에 ‘신경전’이 일고 있다. “판교의 인사 담당 직원들이 서로 점심도 함께 먹지 않는다”는 말이 돌 정도다. 유명 IT 업체들이 고연봉으로 경력 개발자들을 데려가면서, 스타트업이 서로 개발자들을 뺏기지 않기 위한 견제에 나선 것이다. 타사 직원에게 노골적으로 이직을 권유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굵직한 사업의 개발 경력이 확실한 직원의 경우 연봉에 스톡옵션이나 구주 제공, ‘사이닝 보너스’(일회성 인센티브)까지 제시하는 일도 흔하다.
사내 개발자에게 유능한 경력 개발자를 추천하도록 해 포상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보험서비스 IT기업 ‘보맵’은 직원이 경력 개발자를 추천해 입사까지 하면 채용 포상금으로 1000만원을 지급하는 제도를 작년 9월부터 도입해 두 명의 개발자를 뽑았다.
프로젝트 매니저(PM)급의 핵심 개발자를 주로 알선하는 헤드헌터 업체의 위상도 높아졌다. 한 IT 솔루션 업체 사장은 “헤드헌터를 이용하면 신규 고용되는 엔지니어 월급 3개월 치가량을 헤드헌터 업체에 고스란히 수수료로 지급하는 계약도 체결한다”고 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개발인력의 몸값도 중소기업에는 부담이다. ‘톱티어’ IT 업체들의 연봉 인상만 부각되다 보니 중소기업까지 눈높이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그래머는 물론 웹디자이너까지 들썩이는 분위기다. 모바일용 게임을 개발하는 한 업체 대표는 “웹디자이너 면접에서 연봉 조건을 묻자 ‘A유통 플랫폼사가 7000만원 이상 받으니 저도 5000만원은 받고 싶다’고 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입 개발자’ 뽑아 낭패 겪기도개발자 이직에 따른 중소기업의 가장 큰 후유증은 업무 중단이다. IT 벤처기업이 온라인 비즈니스를 위해선 최소 프런트엔드 및 백엔드 개발자, 클라이언트 부문 개발자(iOS, 안드로이드)가 필요하다.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최소 인력으로 시작한다. 이 때문에 한번 개발자가 빠지면 중소기업이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전면 중단되곤 한다. 한 벤처기업 관계자는 “통상 한 명의 핵심 개발자가 이직하면 그 업무 부하가 기존 영역의 1~2명 개발자에게 가중돼 원래 계획한 개발 로드맵에 따라 사업 진행이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대체 개발자를 섣불리 충원했다가 사고가 나는 일도 있다. 이른바 ‘입 개발자’를 뽑아 낭패를 겪는 경우다. 실제 개발 능력은 부족한데도 면접 과정에서 말로 역량을 부풀리는 사람들이다.
기업용 영업 솔루션을 개발하는 IT기업 대표는 “코딩학원에서 1~2년 공부한 초짜 개발자가 쌓아놓은 데이터를 날려 먹거나 성능이 안정화되지 못한 프로그램을 만들 때도 있다”며 “원점에서 다시 제품 개발을 하거나 고객사로부터 납품 계약 파기를 당한 적도 있다”고 했다.
서울 구로디지털밸리에 있는 IT업체 대표는 아예 유명 코딩학원과 제휴를 맺었다. 학원에 교육비 명목으로 지원을 하고, 유능한 학생을 일종의 ‘입도선매’로 추천받을 수 있게 협력 관계를 만든 것이다. 그는 “중소기업에 입사 원서조차 내지 않고 코딩 테스트도 거부해 우수 직원을 뽑으려면 우회로를 거칠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스마트 공장으로 전환하기 위해 첨단 설비 보급을 서두르는 중소제조업체들도 개발자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는 프럼파스터 조병국 본부장은 “생산비용 절감을 위해 첨단 설비 구축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이 필요하지만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채용이 여의치 않다”고 전했다.
김동현/김병근 기자
개발자 채용 전용 플랫폼 경쟁도 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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