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스]◆기사 게재 순서
①'대박' 아니면 '쪽박' 서학개미
② 삼성증권 ATS 독점계약 만료… 증권사 서학 개미 공략 차별점은?
③ 해외채권 쓸어담는 서학개미, 투자 전략은[소박스]
#서학개미 김지애(37세, 가명)씨는 지난해 말 회사에서 받은 성과급 200만원으로 미국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 주식에 투자했다.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ChatGPT)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AI챗봇 경쟁을 벌이는 알파벳의 가치가 오를 것이란 기대다. 당시 1주당 86달러에서 움직이던 알파벳 주가는 지난 2월 107달러로 21달러(24%) 올랐고 김 씨는 두 달 만에 20% 넘는 수익을 시현했다.
#테슬라 전기차를 보유한 박재권(43세, 가명)씨는 '테슬람'과의 이별을 선언했다. 이슬람 신자들처럼 테슬라에 대한 믿음이 깊다는 별명을 지닌 박 씨는 테슬라 (NASDAQ:TSLA) 주식에 약 1000만원을 투자했다. 박씨가 1주당 800달러에 산 테슬라는 지난해 4월 1200달러를 돌파하며 이른바 '천이백이슬라' 고지에 올랐으나 현재 18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박 씨의 주식 손실율은 70%를 넘어선다. 박 씨는 "직장인 마이너스통장을 열어 주식에 투자했는데 큰 이익을 얻으려다 큰 손실을 봤다"며 "평균 손실 단가를 낮추기 위해 주변에서 돈을 빌려 물타기를 했는데 빌린 돈과 마이너스통장 이자를 갚으려면 전기차를 팔아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국내 주식시장은 증시 불황에 주식투자 열기가 주춤해졌으나 미국 증시 상승세에 올리탄 서학개미(해외주식투자자)들은 알짜 종목을 쓸어 담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금리인상 우려가 커지면서 지난 1월 폭풍 매수했던 테슬라는 과감하게 내다 팔고 챗GPT와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테마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AI 챗봇 열풍에 구글 사고 테슬라 팔고
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SEIBro)에 따르면 2월1일부터 3월3일까지 가장 많이 산 종목 1위는 알파벳(1891억원)로 집계됐다. 지난 1월까지만 해도 순매수 50위권 내 종목에도 들지 못했던 알파벳은 2월 한 달간 순매수 1위 종목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알파벳 (NASDAQ:GOOG) 주가는 올해 첫 거래일인 지난 1월3일 89.12달러에서 지난 3월7일 93.86달러로 4.74달러(5.31%) 올랐다. 지난 2월7일 알파주가는 장중 108달러로 올라선 바 있다.
2위는 마이크로소프트 (NASDAQ:MSFT)(1663억원)로 집계됐다. 테슬라를 팔아치운 서학개미들이 AI 챗봇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알파벳과 MS로 옮겨간 셈이다.
챗GPT가 출시 5일 만에 사용자 100만명을 돌파하는 등 인기를 얻자 빅테크 기업을 향한 투자자들의 기대가 높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안소은 KB증권 연구원은 "미국 내에서도 이익이 성장하는 기업이 희소해진 만큼 지금이 긴 관점에서 성장주에 투자하기 좋은 시점"이라며 "소프트웨어, 커뮤니케이션 등 미디어·엔터 업종의 경우에도 인공지능(AI)과 같은 큰 테마에 대한 기대를 반영해 성장 전망이 상향 조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학개미들은 AI관련주를 사들이는 동안 테슬라를 대거 팔아치웠다. 연초만 해도 서학개미 순매수 상위 종목에 자리한 테슬라가 최근 한 달 동안에는 순매도 종목으로 전환한 모습이다.
서학개미는 2월1일부터 3월3일까지 테슬라를 15억4449만달러 규모로 매수한 반면 16억7701만달러 규모로 매도해 1억3252만달러를 순매도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의 매파적 발언에 금리인상 가능성이 커지자 대표 기술주인 테슬라의 주식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 연준의 금리인상과 CEO의 트위터 인수, 연말 전기차 할인 등의 악재로 한 해 동안 65% 급락했던 테슬라는 올해 55% 급등했으나 지난 2021년 11월 역대 최고가와 비교하면 절반도 못 미친다.
박연주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테슬라 주가는 단기 급등에 따른 피로감과 투자자의 날에서 (신차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었던 실망감으로 주가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투심 엇갈리는 서학개미, 상승 vs 하락 베팅
지난해 서학개미의 투자 성적은 낙제점을 받았다. 전 세계 주요국 증시가 약세를 보인 데다 원화를 비롯한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화가 강세를 보인 탓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가 보유한 해외 주식·펀드 등 지분증권의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5195억달러(약 677조원·평가액)로 집계됐다. 2021년 말보다 723억달러 줄어든 수치다. 투자자들이 지난해 408억달러 규모의 해외 주식과 펀드 등을 사들여 1131억달러의 평가손실을 본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도 큰 수익을 노린 서학개미들이 함박웃음을 짓기엔 암울한 증시가 이어지고 있다. 2월23일부터 3월1일까지 일주일간 서학개미들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 '디렉시온 데일리 20+년 트레져리 불 3X ETF(TMF)'의 손실률이 4.84%에 달하기 때문이다.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국채값이 하락한 영향이다.
기술주들의 하락세도 이어진다. 지난 일주일간 서학개미들이 5990달러를 투자한 프로쉐어즈 울트라프로 QQQ(NASDAQ:TQQQ)의 손실률은 5.84%, 디렉시온 데일리 세미컨덕터 불 3X(SOXL (NYSE:SOXL))은 5594만 달러를 매수해 2.65% 손실을 봤다. 테슬라는 투자자들이 3183만 달러 어치를 매수했는데 수익은 0.35%에 그친다.
최근 서학개미들이 투자 포트폴리오에 담은 상장지수펀드(ETF) 중에서 블랙웨이브 드라이벌크 쉬핑 ETF'(종목코드 BDRY)의 수익률도 저조하다. 지난 2월 한달간 BDRY 가격은 20.19% 상승했으나 2021년 10월 기록한 최고가에 비해 62.45% 낮다. 발틱해운거래소에 따르면 BDI는 지난달 27일 기준 935포인트를 기록하며 10주 만에 하락세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BDI 지수는 중국의 석탄·철광석 수입량과 상관관계가 높은 편으로 최근의 회복세는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며 "아직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선 지난 3년간 주가 급등락을 현상을 경험한 서학개미들이 밈주식(개인투자자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종목)을 사고파는 행위보다 증시 변동성 속에 대비하는 모습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해외 주식은 국내 주식보다 정보 비대칭성이 심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최근 한 달간 외화주식 결제금액 상위 5개 종목 가운데 테슬라를 제외한 4개 종목이 지수를 3배 추종하는 ETF인 동시에 하락장에 베팅하는 인버스 ETF로 나타났다. 서학개미가 지수 상승과 하락장에 동시에 투자한 것이다.
국내 투자자들이 8억2117만달러를 매수한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QQQ ETF'(TQQQ)는 미국 나스닥100지수 상승률을 3배로 추종한다. 반대로 8억2013만달러를 매수한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쇼트 QQQ ETF'(SQQQ)는 나스닥100지수가 내려가면 하락률의 3배 수익을 낸다.
예탁결제원 관계자는 "TQQQ와 SQQQ는 대표적인 곱버스 상품으로 일일 지수 등락률을 역으로 3배 추종하며 높은 변동성을 보인다"며 "미국 금리인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증시 변동성이 심해지는 만큼 외화증권 투자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