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이 마이너스 통장(유동성 한도 대출) 한도를 최대 2억~3억원에서 오늘부터 최대 1억원으로 조정한다. 전문직의 경우 대출 한도가 이전 보다 3분의 1 가량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정부가 가계 대출 문턱을 계속 높이고 있는 가운데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역차별’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직장인 및 전문직 마이너스통장 대출의 최고 한도를 일괄 1억원으로 조정키로 했다. 직장인 대출 중에는 우리 주거래직장인대출 및 우리WON하는직장인대출(기존 2억원)이, 전문직 전용 대출 중에는 우리스페셜론(기존 3억원)의 한도가 내려간다.
영업점에서는 20일부터, 은행 앱 등 비대면 채널에는 23일부터 적용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가계 대출 증가 속도 조절 차원에서 개인 최고 대출 한도를 조정하기로 한 것”이라며 “기존에 1억원 이상 대출을 받아놓은 사람은 계약 연장시에도 한도가 유지되기 때문에 새로 대출을 받거나 증액하려는 경우에만 한도가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할 것을 주문하고 나서면서 은행권이 잇따라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는 게 업계 얘기다. 가장 눈에 띄게 조건이 바뀐 것은 고소득·전문직 대출이다. 그동안 의사, 법조인 등 소득이 높은 전문직은 전용 대출 상품을 통해 직장인 보다 높은 한도와 낮은 금리를 보장 받아 왔다. 은행마다 다르지만 마이너스통장과 건 단위로 받는 건별 신용대출을 합쳐 3억~4억원 정도는 손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엇다는 설명이다.
9월부터 분위기가 급변했다. 금융당국이 연말까지 가계 대출 한도를 조절한 것을 은행권에 잇따라 주문하고 나섰기 떄문이다. 신한은행은 한도를 두지 않았던 전문직 전용 한도 대출을 1억원까지만 내주는 것으로 규정을 새로 만들었다. 일부 전문직에 소득의 300%까지 대출을 내주기로 했던 기준도 200%로 낮췄다. 국민은행은 전문직 전용 한도 대출의 한도를 1억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내렸다.
농협은행은 전문직 대출 한도만 기존 2억5000만원에서 2억원으로 내렸다. 직장인 대출 한도(2억5000만원) 보다 오히려 전문직의 대출 한도가 더 줄어든 셈이다. 5대 은행 중에서는 하나은행만 전문직 전용 대출의 한도를 3억원으로 유지 중이다. 단 직장인 전용 대출의 한도를 기존 2억2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7000만원 내렸다.
은행들이 잇따라 이같은 조치에 나선 것은 정부의 대출 억제 주문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잇단 부동산 규제 실패와 ‘빚투’(빚내서 투자) 열풍 속에 너도 나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는) 식의 대출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의 가계 대출 규모는 전달 대비 10조6000억원 늘어난 968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8월(11조7000억원)에 이어 역대 두번째로 많은 증가폭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신용이 높고 소득이 많은 전문직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은 은행입장에서도 부실이 날 가능성이 가장 낮은 우량 자산”면서도 “연말까지 가계대출 증가세를 눈에 띄게 낮추려면 한도가 높은 대출을 조이는 게 효과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줄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신용이 높은 고소득 전문직을 되레 희생시키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말부터 연소득 8000만원이 넘는 고소득자가 신용대출을 1억원 이상 받을 경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를 적용키로 했다. 신용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길을 사실상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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