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과거 위기 상황의 환율 상승 패턴을 분석하며 1500원대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 정치 불안에 1440원대 급등…탄핵 정국이 '방아쇠'
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거래일 종가보다 17.8원 뛴 1437.0원으로 마감했다.
이는 2년여 만의 최고치다. 장중엔 1438.3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특히 최근 상승세가 과거 위기 때와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현재 원달러 환율은 2024년 9월 저점 대비 10%, 2023년 12월 저점 대비 11.4% 상승했다.
이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트럼프 당선 당시의 10% 상승과 비슷한 수준이다.
과거 위기 때 환율 상승 폭을 보면 IMF 외환위기 당시 121%, 글로벌 금융위기 때 74%라는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10~20% 범위에서 움직였다.
이번 환율 급등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폐기 이후 정국 혼란이 결정타가 됐다.
탄핵안은 7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정족수 미달로 폐기됐다. 그러나 오히려 정치적 불확실성이 더욱 확대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인 지난 4일 새벽 야간거래에서는 1442원까지 치솟았다. 1~2시간 만에 40원 넘게 급등하는 이례적인 움직임이었다.
외환시장에선 1500원 돌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잇따른다. 정치적 혼란에 더해 트럼프 재선 가능성과 경기 둔화 우려가 겹친 탓이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금은 위기 상황이지만 경제위기나 세계 경제 침체 수준은 아니다"라며 "예상할 수 있는 원달러 환율의 최대 상승치는 15~20% 내외"라고 분석했다.
구체적인 수치로 환산하면 2023년 12월 저점 기준으로 15% 상승 시 1480원대, 20% 상승 시 1540원대까지 갈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다만, 해결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고 트럼프 관세 압력도 내년 초에 예상되는 등 원화 가치 입장에서는 열악한 환경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노무라증권은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미국 금리 상승 및 강달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내년 5월 말까지 원달러 1500원을 목표로 달러 매수를 추천한다"고 제시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연구원도 "외국인 투자자의 원화자산에 대한 회피심리가 높아질 전망"이라며 "원·달러 환율이 (2022년 미국 연준의 자이언트 기준금리 인상 당시) 직전 고점 환율인 1430~1440원을 상향 돌파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 리스크에 취약한 경제 펀더멘털이 더해져 '코리아 디스카운트' 우려도 커지고 있다.
포브스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주장하는 투자자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계엄령의 대가는 한국 국민이 시간에 걸쳐 할부로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내 증시도 흔들리고 있다. 코스피는 계엄 사태 이후 개인과 외국인의 동반 매도세에 연일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달러 기준 MSCI Korea 지수는 52주 고점 대비 26~27% 하락했다.
다만,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경험상 웬만한 악재가 반영된 가격대에 접근하고 있다"며 "많이 빠졌다는 이유만으로 바닥을 예견하기는 어렵지만, 외국인 입장에서 주가가 30% 가까이 하락한 상태라면 매도 압력이 더 격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시장의 또 다른 우려는 외환보유액 감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1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153억9000만 달러로 전월 대비 3억 달러 감소했다. 10월부터 2개월 연속 감소세다.
트럼프 당선과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환율이 급등하자 외환당국이 시장 안정화를 위해 달러 매도에 나선 영향으로 분석된다.
이대로라면 외환보유액이 2018년 이후 6년 만에 처음으로 4000억 달러 선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다만,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한국은행의 시장 대응여력은 충분하다"며 "최근 정치 상황과 관계없이 경제부총리 중심으로 경제팀이 총력을 다해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