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배터리 핵심 원자재 중국 의존도↑
한국 반도체 핵심 원자재의 최대수입국은 중국이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이슈 보고서'에 따르면 실리콘웨이퍼를 만드는 실리콘의 중국 수입 의존도는 지난해 75.4%로 전년 대비 6.6%포인트 올랐다. 반도체 연마재에 사용되는 희토류(61.7%)와 반도체 금속 배선 원료인 텅스텐(68.6%)도 지난해보다 의존도가 각각 2.1%포인트, 0.4%포인트 상승했다. 차세대 화합물 반도체에 사용되는 게르마늄은 74.3%로 17.4%포인트, 갈륨·인듐은 46.7%로 20.5%포인트 각각 올랐다. 다만 불화수소의 원료인 형석은 47.5%로 2.4%포인트 하락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인 고순도 희귀가스도 해외 의존도가 크다. 지난해 기준 반도체 원자재의 대중국 수입액 비중은 ▲네온 81% ▲크립톤 43% ▲제논 64% 등으로 집계됐다. 네온은 웨이퍼 위에 빛을 이용해 미세한 회로를 새기는 노광공정에 사용되는 엑시머 레이저의 주재료다. 제논과 크립톤은 회로 패턴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제거하는 식각공정에 주로 쓰인다.
한국 전기차 배터리에 필요한 광물 가운데 중국 생산 비중이 압도적인 것도 위협적이다. 배터리 음극재의 필수 광물인 흑연은 글로벌 시장 내 중국의 생산 비중이 80%를 웃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중 수입 비중은 천연흑연과 인조흑연 모두 95%를 넘었다.
中 자원 무기화 가능성 여전
미국 상무부는 우리 기업이 생산하는 AI 핵심 반도체 HBM을 중국이 아닌 미국과 동맹국에 공급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앨런 에스테베스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은 지난 9월 '2024 한·미 경제안보 콘퍼런스'에 참석해 "중국이 미국과 동맹의 안보를 위협하는 첨단기술을 확보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HBM을 중국이 아닌 미국과 동맹에 공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한국이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기를 권고한다"면서 "미국 압력에 저항해 반도체 부문에서 중국과 협력을 계속 심화할 수 있는지는 한국의 지혜를 시험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이미 핵심 원자재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반도체와 전자 제품의 핵심 소재인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을 막고 있다. 최근엔 배터리 원료로 사용되는 안티몬 수출 통제에 나섰다. 안티몬은 방염제, 야간투시경, 핵무기 생산 등에 사용되는 준금속 물질이다. 중국이 세계 안티몬 생산량의 48%를 차지하고 있다.
'공급망 안정화' 정부 지원 절실
공급망 다변화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돼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세계 주요국은 경제 안보를 위해 핵심광물의 공급 안보를 국가 전략으로 삼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들은 '탈중국'에 무게를 두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핵심광물 공급망 안정화는 민간의 노력만으로는 이뤄내기 어렵다. 해외 자원개발 사업은 탐사부터 개발, 생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비용 부담도 있어 리스크가 크다.
자원외교를 통해 정부가 지원개발을 이끌고 민간 기업과 협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우량 자원을 찾고 민관이 동반 투자해 기업의 참여를 독려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현재는 중국에 편중된 배터리 공급망 안정화의 적기라고 평가된다. 양극재 업계의 수익성을 좌우하는 핵심광물(리튬, 니켈, 코발트)의 가격이 지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전기차 산업이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에 빠지면서 관련 광물 가격이 내려간 덕분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원 개발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국가 간 외교도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정부가 선도해서 자원 확보에 나서고 민간 기업이 자원 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방법이 현실적"이라며 "첨단 산업의 안정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선 지속적인 공급망 자립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