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의 인천 스마트 야구장에선 스마트폰 앱을 통해 선수와 경기 관련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SK텔레콤 제공
정부는 1960년대 이후 중소기업에 500조원을 쏟아부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연구개발(R&D) 지원 예산을 늘렸다. 성과도 있었지만 문제점이 더 많았다. 도전적 R&D는 실종됐다. 중복·나눠먹기식 지원, 나홀로 연구 등은 여전하다. 정부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조주현 중소벤처기업부 기술인재정책국장은 “R&D 지원 시스템은 한계에 이르렀다”고 했다. 변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생겼다. 방향은 ‘시장이 원하는 기술개발 지원, 유니콘 육성을 위한 집중 지원,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의 확산’ 등이다.
하지만 앞길은 험난하다. R&D 예산은 여러 부처로 쪼개져 있고, 지원 방식도 다르다. ‘컨트롤타워’ 부재로 매년 2조원을 R&D 지원 관리비용으로 쓰고 있다. 지원하는 자와 받는 자 모두 기득권이 된 셈이다.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중소기업 R&D 지원이 가야 할 방향을 짚어봤다.
○유니콘을 키워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1961년 “10년 안에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고 말했다. 8년 후 아폴로 11호는 달에 착륙했다. 클린턴 정부 시절 앨 고어 부통령은 정보 고속도로 프로젝트를 들고나왔다. 이 고속도로로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 등이 질주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뇌 지도를 완성하는 ‘브레인 이니셔티브’를 역설했다. 미국은 국가가 미래 혁신기술을 선정해 기업을 지원했다. 그 분야의 규제를 풀고, 기업 연구를 도왔다. 시장이 커졌고, 과감히 뛰어든 기업들은 R&D를 통해 그 과실을 따먹었다.
반면 한국 정부가 R&D 지원 방향을 밝힌 것은 김대중 정부 때 정도다. 이마저 정보기술(IT) 거품으로 끝났다.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R&D 정책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것이 쉽지 않다면 방식이라도 바꾸자고 기업인들은 입을 모은다.
첫 번째 요구는 선택과 집중이다. 개별기업에 소액을 뿌려주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업을 선정해 집중 투자하자는 제안이다.
한 벤처기업 대표는 “R&D 기반이 취약한 중소기업을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벤처기업)이 될 만한 기술력, 잠재력을 갖춘 기업을 전략적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도입해 대상 기업을 선정하면 특혜 시비도 피할 수 있다”고도 했다. 예컨대 전략적으로 키울 미래 산업 분야의 기업 중 수출 규모, 특허 수 등을 기준으로 선정하는 것이다.
○오픈 이노베이션 생태계를 구축하라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취임 후 ‘오픈 이노베이션’을 강조하고 있다. “중소기업 혼자가 아니라 대학, 연구원, 대기업을 포괄하는 R&D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만큼 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선우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혁신기업연구단장은 “대학과 기업의 R&D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협업이 어렵다”며 “대학의 R&D 목적은 국제 학술지 게재, 기업의 목적은 특허 획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업에 나서는 교수를 ‘연구보다 돈벌이에 치중한다’며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학 문화도 산학협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고 분석했다.
기업 간 협력과 관련해서는 SK와이번스의 스마트 야구장 구축이 모델이 될 수 있다. 문학구장에 들어가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을 켜면 내비게이션이 작동해 비어 있는 주차 공간을 알려준다. 덜 혼잡한 화장실도 찾을 수 있다. 선수 정보는 증강현실(AR)을 통해 확인한다. 스마트 야구장에 적용된 기술은 모두 중소기업이 개발했다. 2016년 미래창조과학부가 제안해 문화체육부의 R&D 자금 지원으로 추진한 프로젝트다.
○실패 펀드를 만들어라
모험적인 R&D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도 개선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정부는 중소기업 R&D 실패에 엄격한 페널티를 적용한다. 실패 판정을 받으면 3년간 정부 R&D 과제에 참여할 수 없고 지원받은 금액을 전액 돌려줘야 한다. 구조적으로 모험은 불가능하다.
그 대안으로 투자형 R&D 지원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융자를 투자로 바꿔 중소기업이 상환 부담에서 벗어나 혁신 기술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자는 얘기다. 핀란드 일본 등이 하는 방식이다. 핀란드는 정부가 세운 시트라(SITRA·핀란드의회혁신기금)와 핀란드투자공사를 통해 유망 기업에 투자한다. 이런 지원책 덕분에 핀란드는 노키아 몰락 이후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경제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전설리/김기만 기자 sljun@hankyung.com
"핀란드 '시트라'처럼 국회에 R&D 기구 설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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