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노조 리스크' 그림자 커진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미국 최대 자동차산업 노조인 전미자동차노조(UAW)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재선을 노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노조의 표심을 잡기 위해 친노조 행보를 보이면서다. 지난 1월 UAW가 민주당 지지 의사를 밝히자 바이든 대통령은 "월스트리트가 아닌 중산층이 미국을 만들었고, 중산층은 노조가 건설한 것"이라며 노조에 대한 연대를 드러냈다.
바이든 대통령을 등에 업은 UAW는 노동자 처우 개선을 명분으로 임금 인상과 근로 조건 개선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UAW는 조합원이 40만명에 달해 대표적인 경합지로 분류되는 미시간주에서 영향력이 크다.
지난달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의 배터리 합작법인 얼티엄셀즈 노사는 향후 3년간 임금을 30% 인상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시간당 임금은 3.59달러 오르고, 신입 직원 시급도 16.50달러에서 26.91달러로 인상됐다. 2022년 임금 대비 2배 수준을 상향된 것이다. 노조와의 관계를 의식한 바이든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얼티엄셀즈가 역사적 합의에 도달한 것을 축하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한국과 미국 회사의 배터리 합작사 중 노조가 설립된 곳은 얼티엄셀즈 뿐이지만 이번 합의를 계기로 노조의 불씨가 타 배터리사로 이어 붙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업계에선 얼티엄즈에 이어 SK온과 포드의 합작 법인 '블루오벌SK'에도 노조가 생길 수 있다고 걱정한다.
SK온은 노조 리스크로 생산에 차질을 빚은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10월 포드는 2026년 가동을 목표로 하던 SK온과의 합작 2공장 투자 계획을 연기했다. 전기차 수요 둔화와 함께 노조 파업으로 손실이 발생했다는 게 이유다. 당시 포드는 6주간 진행된 UAW의 파업으로 총 8만대 규모의 생산 차질을 빚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1조8000억원(13억 달러)에 달한다.
"기껏 공장 옮겼더니"... 美 공장 설립 '부메랑'되나
UAW는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를 인상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AMPC는 미국이 역내에서 생산하는 배터리 셀과 모듈 등에 지급하는 보조금이다. 배터리 기업은 1킬로와트시(kWh) 생산 시 35달러를 받고 모듈까지 생산하면 45달러를 지원받는다.
전기차 캐즘을 지나는 중인 한국 배터리 기업에게 노조 리스크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 수요가 둔화되면서 배터리 기업들의 성장세가 꺾인 데다, 전기차에 회의적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집권 가능성까지 우려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전기차 전환 속도 조절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어 여기에 노조 리스크가 더 해질 경우 큰 타격이 예상된다.
UAW는 자동차에 이어 배터리 기업으로 노조 설립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로이터에 따르면 UAW는 올해부터 2026년까지 2년 동안 미국 내 비노조 공장 및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 노조를 조직하는 데 4000만 달러(약 556억원)을 투입한다.
UAW가 노조 조직에 성공할 경우 협상에서 막강한 지위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UAW는 지난해 하반기 제너럴모터스(GM), 포드, 스텔란티스 등 미국 자동차 대형 3사에서 대대적인 동시 파업을 벌였다. 그 결과 이들 회사에서 4년간 25%의 임금 인상 합의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