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대표 서범석)이 공모가를 3만원으로 확정했다. 수요예측 부진에 희망범위 하단보다 30% 낮은 가격으로 결정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바이오 업종에 대한 냉각된 투심과 밸류에이션 고평가 논란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당초 예상치보다 큰 폭의 가격 메리트가 발생한만큼 청약과 상장 이후 주가흐름이 달라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11일 투자은행업계에 따르면 루닛은 공모가를 3만원으로 확정했다. 이는 희망범위(4만4000~4만9000)하단보다 31.8% 낮은 가격이다. 확정 공모가 기준 공모규모는 364억원이며, 상장 시가총액은 3156억원이다.
루닛은 지난 7~8일 국내외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진행했다. 수요예측에는 162곳의 국내외 기관이 참여했으며, 경쟁률은 7.10대 1을 기록했다.
신청수량 기준 수요예측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밴드상단 이상의 가격을 제시한 수량이 전체 55% 수준에 이르렀고, 가격 미제시(15.17%)까지 포함하면 70.17%에 달했다. 밴드 하단가격인 4만4000원 이상 신청수량으로 범위를 더 넓혀보면 그 비율은 87.21%(가격 미제시 포함)까지 올라간다. 다만 경쟁률이 낮고 참여기관이 적은데다 기관 참여건수 기준으로는 4만4000원 이하에 접수한 비율이 월등히 높아 공모가를 대폭 낮춘 3만원에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상장을 주관한 NH투자증권 관계자는 "루닛의 시장경쟁력과 미래성장성에 대해서 많은 기관투자자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면서 "최근 주식 시장의 위축된 투자 심리가 루닛에도 영향을 미쳤고, 이에 따라 시장 친화적인 가격으로 공모가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IPO시장은 바이오섹터에 대한 투자심리가 좀처럼 깨어나지 않고 있다. 상반기 바이오 관련 기업은 애드바이오텍, 바이오에프디엔씨, 노을, 보로노이 단 4곳의 입성에 그친 가운데 7월 공모에 나선 루닛도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 그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고평가 논란도 제기됐다. 2019년 이후 사업화에 본격 매진하면서 매출 성장률은 가시화되고 있지만 수익성이 따라오지 못했다. 루닛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66억원에 영업손실 456억원을 기록했다. 당기 순손실도 적자 상태다. 때문에 이번 공모도 2025년 추정 당기순이익 583억원을 기준으로 평가가치를 구했다.
회사가 2025년 추정 이익으로 이번 공모에 나선 것은 암 진단 솔루션인 ‘루닛 인사이트’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가운데 바이오마커 솔루션 ‘루닛 스코프’가 2025년부터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룰 것으로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루닛 스코프를 활용한 제약사의 신약이 2024년 FDA 인허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이에 따라 의료보험 수가를 적용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다. 하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적자규모가 도드라진 현재 재무상황을 기준으로 볼 때 미래 추정이익이 다소 과도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공모가를 확정한 루닛은 오는 12~13 청약을 거쳐 21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할 예정이다.
루닛은 지난 2013년 설립한 인공지능 기반의 의료영상 진단 및 치료 플랫폼 개발 기업이다. 대표 제품은 암 진단을 위한 AI 영상분석 솔루션 '루닛 인사이트(Lunit INSIGHT)'와 암 치료를 위한 AI 바이오마커 플랫폼 '루닛 스코프(Lunit SCOPE)'가 있다.
루닛은 국내외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앞서 기술특례 상장을 위한 기술성 평가에서 복수의 전문평가 기관으로부터 AA등급을 획득했다. 이는 국내 헬스케어 기업으로는 최초 사례다. AI기술력과 의료 전문성을 동시에 갖춘 만큼 GE헬스케어, 필립스, 후지필름과 같은 글로벌 메이저 의료기기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는데도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전 세계 600여 개 이상의 의료기관에 제품을 공급 중이다.
루닛은 이번 IPO를 통해 확보한 공모 자금을 제품 연구개발(R&D) 및 인허가 과정에 투자하고, 글로벌 파트너십 구축 운영자금으로 사용해 지속 성장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회사관계자는 더스탁에 "당사는 성장잠재력이 큰 의료인공지능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이번 공모자금을 임상 및 인허가 등에 활용할 계획"이라면서 "주요 제품 중 루닛 인사이트는 CT 및 DBT(디지털 유방단층촬영술) 의료기기 판매허가를 위해 임상을 다양하게 추진할 예정이고, 루닛 스코프의 경우 진단 또는 동반진단기기로서 판매허가를 받기 위해 다양한 임상을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