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편집자주] ‘광풍’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던 기업공개 시장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 풀 꺾인 모양새다. 유동성 축소 기조에 IPO기업들의 공모도 옥석가리기가 심화되고 있고, 앞서 기대를 모았던 대어급들의 상장 이후 주가흐름도 신통치 않다. 이런 가운데 스팩(SPAC)이 안전한 투자처를 찾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로 각광받고 있다. 다만 투자손실 위험이 아주 없지는 않은 만큼 스팩의 구조나 다양한 투자시점 등을 이해하고 투자를 실행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
비상장기업과의 인수합병(M&A)을 목적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상장시키는 스팩은 침체된 IPO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용도로 미국 증권회사가 개발한 상품이다. 1990년대 미국과 유럽에 먼저 도입됐고, 국내 시장에는 2009년 12월 도입됐다. 시기적으로는 2008년 리만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다. 당시 금융당국은 성장 잠재력이 높은 우량 중소기업의 상장과 자금 조달 지원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던 끝에 스팩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야심차게 출발했던 만큼 스팩은 초기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 도입 이듬해인 2010년 무려 21개의 스팩이 증시에 입성했다. 특히 국내 최초의 스팩인 대우증권스팩을 포함해 동양밸류스팩, 우리스팩 1호까지 3개의 스팩이 코스피에 줄줄이 상장되기도 했다.
코스피 스팩 3곳을 포함해 12곳은 합병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래도 9곳은 이후 3년 내에 합병상장에 성공했다. 국내 시장에서 최초로 합병에 성공한 스팩은 HMC제1호스팩이다. HMC제1호스팩은 지난 2011년 8월 자동차부품기업인 화신정공과 합병이 성사됐다. 당시 스팩합병 1호 타이틀의 주인공은 바뀔 뻔했다. HMC제1호스팩에 앞서 대신증권그로쓰스팩이 터치패널 전문기업 ‘썬텔’과 합병을 결정했으나, 스팩의 주요주주인 기관투자자들이 "피합병법인인 썬텔의 가치가 과대평가됐다”면서 반대의사를 표명해 결국 합병이 무산됐다.
초기 제도에 대한 이해도가 낮기도 했고, 합병이 잇따라 무산된 탓에 2011년까지 합병성공 기업은 2곳에 그쳤다. 이에 따라 스팩에 대한 불안감이 조성됐고, 합병성공 기업의 주가가 초기에 기대만큼 뛰지 못하면서 스팩은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스팩의 거래량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했던 것도 투자자들의 관심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스팩은 2013년까지 침체기를 맞았다. 스팩 상장은 2011년 1건, 2012년 0건, 2013년 2건으로 3년간 3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애니팡’ 게임으로 유명세를 탔던 선데이토즈(현 위메이드플레이)가 하나그린스팩과 합병해 2013년 11월 코스닥에 입성한 후 주가가 폭발적으로 상승하면서 스팩은 다시 부흥기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당시 선데이토즈는 4달여만에 주가가 300% 이상 폭등했다. 또 2013년 말과 2014년 초 스팩을 통해 코스닥에 상장한 디에이치피코리아와 알서포트도 주가가 큰 폭 상승하면서 스팩의 부활을 도왔다.
이후 2014년에서 2021년까지 8년간 197개의 스팩이 증시에 올랐다. 2016년과 2020년을 제외하면 매년 20개 이상의 스팩이 상장되고 있다. 연간 편차가 있지만 8년간 연평균을 따지면 24개 수준이다. 특히 2016년을 제외하고 2015년부터는 매년 상장스팩의 10곳 이상이 차후 합병에 성공하면서 스팩은 상장의 통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와 흥국증권 리서치센터 자료에 따르면 국내 시장에서는 올해 3월 초까지 총 226곳이 상장됐다. 그 중 122개는 우량 비상장기업이나 코넥스 상장기업을 만나 합병상장에 성공했거나 진행 중이며, 57개는 합병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상장이 폐지됐다. 나머지 코스닥시장에서 거래 중인 47개의 스팩은 합병대상을 찾고 있다.
한편 스팩은 코스닥에만 상장됐는데, 지난해 5월 NH스팩19호가 코스피에 상장되면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NH스팩19호는 총 공모금액이 96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몸집이 큰 만큼 합병에 성공할 경우 그 대상기업이 유니콘일 가능성이 있는 까닭에 시장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스팩이 코스닥에 집중되는 이유 중 하나는 규모가 작은 기업들을 타깃으로 해 합병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인데, 이런 점에서 볼 때 NH스팩19호가 차후 합병을 성사시킨다면 국내 스팩 역사의 큰 이벤트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