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8월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은 전국민에게 ‘전기차 포비아(공포증)’를 안겼다. 벤츠 전기차 한 대서 시작된 불은 주변 차량 87대를 전소 시키고, 793대를 그을리고 나서야 진압됐다.
배터리업계도 화들짝 놀라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특히 ‘화재를 늦추는 기술’을 가장 필요로 한다. 화재 자체를 막기는 힘든 탓이다. 발생원인이 워낙 다양하다. 화재를 지연시켜 진압까지의 골든타임을 버는 것을 ‘최선책’으로 보고 있다. 앞선 청라 화재도 전기차에서 연기가 난지 1분 만에 전소로 이어져 대응할 시간이 부족했다.
이른 바 단열소재가 떠오르는 배터리 밸류체인이 됐다. 세스맷은 이 시장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배터리셀 메이커 A사가 세스멧 제품으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업계 대다수 전문가들이 배터리 효율을 높이는 것에 집중할 때 ‘안전’을 연구해온 것이 선두에 선 비결이다. 김기재(사진) 세스맷 대표(성균관대 교수 겸직)가 무려 17년 전부터 안전으로 특허를 내왔다. 시대를 앞섰던 노력인데 드디어 빛을 보고 있다.
김 대표를 최근 세스맷 수원 본사에서 만나 창업스토리와 현 주소에 대해 들어봤다.
◇ 열전이 막는 단열소재 개발…물질배합이 핵심, 특허로 보호
전기차에 들어가는 중대형 2차전지(리튬이온배터리)는 ‘셀(Cell)→모듈(Module)→팩(Pack)’ 구조로 만들어진다. 셀은 크기가 커지면 부피에 비해 표면적이 작아 열배출이 훨씬 어려워 작은 셀을 여러 개 묶어서 사용하게 된다. 묶은 셀을 외부충격에서 보호하기 위해 만든 프레임이 모듈이다. 그리고 다수의 모듈을 적층한 것이 팩으로, 전기차 한 대에 하나의 팩이 들어간다.
(사진:IR자료)
청라 사건과 같은 화재는 특정 셀에서 발생한 열이 다른 셀로 쉽게 전이됐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셀의 온도가 지나치게 높아져 화재가 발생하는 현상을 열폭주(Thermal Runaway, TR)라 하고, TR이 주변 셀로 퍼지는 현상은 열전이(Thermal Propagation, TP)라 한다.
2022년 말 설립된 세스맷은 TP를 막거나 지연시키는 단열패드를 개발하는 회사다. 이 제품은 셀과 셀 사이에 필름형태로 삽입된다. 특정 셀에 화재가 발생해도 주변 셀 온도상승은 억제시키는 역할을 한다.
세스맷 단열패드 제품 작동원리(사진:IR자료)
사업 초기엔 아예 불을 꺼버리는 소화기능 필름을 만들어 A사 등에 제안했다. 다만 이 소재는 상용화하기엔 가격이 비쌌다. 이에 A사 요구로 맞춤형으로 다시 만든 것이 단열패드다. 약간의 소화기능도 포함하고 있다.
이 단열패드가 A사에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제품이다. 개념은 단순(단열)하지만 만들기는 쉽지 않다. 세스맷만의 기술 노하우가 필요하다.
김 대표는 “우리 제품 리버스 엔지니어링(분해해 모방하는 작업)을 다른 기관에 시켜봤는데 어떤 물질로 조합했는지 찾아내지 못하더라”라며 “코카콜라가 시중에 유통돼도 경쟁사가 같은 맛을 내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물질배합이 핵심 경쟁력이고, 특허로도 보호를 해놨다”고 덧붙였다.
◇ 2007년부터 ‘안전’으로 특허, 누적된 기술경쟁력
설립 2년차 벤처기업이 어떻게 A사가 눈여겨보고 테스트까지 진행할만한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을까. 김 대표의 이력을 보면 수긍이 간다. 김 대표는 산업계와 학계를 오가며 국내 2차전지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해 대통령표창까지 받은 전문가다. 그런데 수십년 전부터 학계 주류였던 ‘배터리 효율’ 연구보다 비주류인 ‘안전’에 공력을 쏟아왔다는 점이 다르다.
김 대표는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에서 신소재공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까지 땄다. 이후 2004년 LG화학 (KS:051910) 배터리연구소(현 LG에너지솔루션)에 입사해 중대형 2차전지 공정개발 파트장직을 수행했다.
파트장 재직당시 낸 특허가 ‘안전’에 관한 것이다. ‘안전장치를 구비하고 있는 중대형 전지팩’이란 제목 특허인데, 전지팩 온도가 위험수준을 넘었을 때 발화나 폭발을 방지하는 물질을 분사하는 안전장치를 다루고 있다.
김 대표는 “배터리에 대한 연구는 학계에서 오래전부터 양극재 등 핵심소재를 메인으로 해왔는데 그쪽이 산업에서도 가장 요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라며 “에너지 밀도를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달려갔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에너지밀도가 높아질수록 배터리에 대한 위험성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이제 안전성에 대한 이슈가 지속적으로 터지고 있는 것”이라며 “저는 안전 쪽으론 LG화학 재직시절부터 오랫동안 연구해 왔고, 상용화 목적으로 단열소재를 본격적으로 개발한 것은 6~7년 전”이라고 덧붙였다.
김기재 대표가 2006년 발명한 LG화학 특허 출원서(사진:특허청)
김 대표는 LG화학을 거쳐 전자부품연구원을 다니다 이후론 교편에 섰다. 2016년 서울과학기술대(신에너지공학과)와 2018년 건국대(미래에너지공학과), 2023년부턴 성균관대(에너지과학과)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 현재까지 낸 국내외 배터리관련 특허가 무려 44건이다. 세스맷을 출원자로 낸 특허도 현재 5건이다. 논문은 SCI(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급으로 150건에 달한다.
세스맷도 오로지 안전에 초점을 맞춘 기업이다. 사명에서 드러난다. 세스맷은 커팅엣지 세이프티 솔루션 머티리얼즈(Cutting-Edge Safety Solution Materials)의 약자(CESSMAT)로 우리말로 '최첨단 안전해결 소재'다.
김 대표가 세스맷을 설립한 계기는 글로벌 영업통인 현상준 세스맷 부사장과 금융전문가인 정재선 벤처캐피탈 대표의 강력한 권유에 있었다. 현 부사장은 LG전자 출신으로 풍부한 해외네트워크가 강점이었고, 정 대표는 벤처캐피탈업계에서 수십년간 옥석을 가려온 전문가였다. 현 부사장과 정 대표가 봤을 때 김 대표의 기술은 충분히 상용화 경쟁력이 있었다.
세스맷 특허(사진:IR자료)
◇ 상용화까지 9부능선, 내년 초도공급 목표
세스맷은 향후 1년 안에 배터리 단열패드 제품이 상용화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배터리 셀 메이커가 테스트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실력을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다. 테스트에 통과하면 상용화까지 9부 능선을 넘었다고 보면 된다.
김 대표는 “내년 안에는 초도물량(파일럿 제품)을 공급해 매출을 일으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매출 기대치는 당연히 높다. 김 대표는 “저희 자체적으로 단열소재 시장 규모는 글로벌 시장에서 약 2조원대로 추산하고 있다”며 “전기차만 계산한 것인데 ESS(대규모저장장치) 등으로까지 적용이 확대되면 글로벌 시장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의 궁극적 목표는 전기차시장 확대에 기여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회사를 시작했던 목표가 전기차를 타는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게 마음 편히 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며 “지금은 화재사건으로 장벽이 더 높아졌는데 그 장벽을 허물어 전기차 시장 확대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