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지난달 부친인 이건희 회장의 장례식을 치른 이재용 삼성전자 (KS:005930) 부회장이 다시 법정에 섰다. 이 부회장의 행보와, 삼성 전체의 운명에 시선이 집중된다.
9일 오후 1시30분경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연루 관련 공판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이하 서울고법)에서는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 전·현직 임원들의 국정농단 연루 혐의를 다시 추궁하는 재판이 열렸다.
서울고법 형사1부는 이 부회장의 공정농단 관련 파기환송심이 재개된 이후의 첫 정식 공판을 열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올해 1월 17일 해당 사안으로 공판에 출석한 이후 약 10개월 만에 다시 법정에 서게 됐다. 본래 재판부는 지난 10월 26일의 공판 준비 기일에도 이재용 부회장의 출석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난달 25일 부친상을 치른 이 부회장은 공판 준비 기일에 법정에 출석하지 못했다. 법원은 상중으로 공판 준비 기일에 참석하지 못한 이 부회장에게 불출석사유서를 받았다.
재판이 열리는 서울 고등법원 서관에는 본 재판이 시작되는 오후 2시보다 이른 오전 시간부터 수많은 현장 취재진들이 몰렸다. 이날 오후 1시 10분에는 최지성 전 삼성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사장), 1시 30분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법정에 도착했다.
9일 오후 1시30분경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연루 관련 공판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현장의 기자들은 재판에 임하는 이 부회장에게 현재의 심경과 공석으로 남아있는 삼성 회장에 언제 취임할 것인지의 여부 그리고 이후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삼성의 경영 방침을 질문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대답하지 않고 법정으로 바로 입장했다.
법정 현장에는 일찍부터 방청권을 받아 재판을 관전하러 온 이들로 붐볐다. “이재용 부회장은 무죄다”라면서 이 부회장의 입장을 변호하는 이들과 “이재용을 구속하라”면서 이 부회장의 혐의를 끝까지 추궁해야 한다는 이들이 몰려들어 한동안 법원 현장 관리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법정으로 향하는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사장, 사진 오른쪽).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정훈 기자
검찰은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에 대한 청탁을 목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로 대표되는 국정농단 세력에게 총 298억여원의 뇌물을 제공했다고 주장하며 그 혐의를 추궁하고 있다.
지난 1심은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에 대한 지원금 72억원,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16억원을 대가성이 있는 뇌물로 판단해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 실형을 선고했고 이 부회장은 구속됐다. 그러나 2심에서는 후원금에 대해서는 무죄 판단, 더불어 유죄로 인정되는 금액이 줄었고 이 부회장은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으면서 풀려났고 직후에 삼성의 경영에 복귀했다.
이후 한동안 이재용 부회장의 국정농단 연루 관련 파기환송심 재판은 진행되지 않았다. 법원은 삼성이 자체적으로 경영에서의 법적 원칙을 준수하겠다는 의지로 설치한 ‘준법감시위원회’의 활동을 앞으로의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뜻을 공표했다. 이에 대해 삼성을 수사 중인 특검은 재판부가 “삼성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려고 한다”라면서 재판부 인원들의 교체를 요구하는 기피 신청을 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고 기존에 계획된 재판부 인원들 그대로 유지된 채 재판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재판의 관건은 재판부가 양형에 반영하겠다고 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활동이다. 삼성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의 정도 경영을 지속하는 조건으로 다수의 감시 인력들을 외부에서 구성했다. 이번 재판에서는 준법감시위원회의 그간 활동을 평가하는 전문심리위원 선정 절차가 진행된다. 그러나 이것으로 삼성이 모든 것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대법원은 이 부회장의 뇌물·횡령액이 약 86억원으로 산정했다. 이는 현행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징역 5년 이상의 선고도 가능하다.
법정으로 향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정훈 기자
판사는 곧 이건희 회장의 공석을 채우고 삼성의 회장이 될 이재용 부회장의 역할과 삼성이 그간 이 사회에 공헌해 온 것들을 고려해 형을 감경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여건들이 재판에 반영 여부도 이번 재판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재판에서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활동 내역과 삼성 측의 무죄 주장 의견들을 듣고 이후에 있을 재판 일정을 다시 정한다. 올해 안으로 해당 사안에 대해서는 최소 두 차례의 재판이 추가로 열릴 예정이다.
검찰과 삼성의 오랜 기간 공방을 지속해 온 국정농단 공판은 이제 원점에서 다시 시작됐다. 이건희 회장 별세 이후 더 어깨가 무거워진 이재용 부회장의 이후 행보는 앞으로 열릴 재판에서 다시 논의되고 결정될 전망이다. 이후의 재판결과에 따라 삼성에게는 최악의 경우 회장의 별세에 이어 전방위 위기상황 속 총수의 부재라는 악재까지 겹칠 수 있다. 다시 열릴 재판에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