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국회에 출석해 내년 하반기 물가상승률이 2%대 중반 이하로 둔화될 것이라고 밝힌 가운데 물가 목표 수정론이 미국 의회 및 월가에서 또다시 확산되고 있다.
한국의 '물가 목표 2%'라는 개념은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물가안정목표제(Inflation targeting)로부터 비롯됐지만, 연준마저도 '2%'라는 수치를 설정하게 된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눈길이 가는 대목은 미국 의회에서는 연준이 설정한 물가상승률 목표 수치 2%에 대해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목표치를 수정해야 할 목소리가 커지는 반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2% 목표치를 달성 필요성을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의 기준금리 결정(24일 통화정책방향 회의)이 임박한 상황에서 금융권의 관심이 쏠린다.
23일 국회 및 금융권에 따르면 이창용 총재는 전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향후 물가상승률 전망을 묻는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8~9월 이후 물가상승률이 3%가 될 가능성이 있고 그 이후부터 천천히 떨어져서 내년 하반기 쯤에는 2%대 중반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답했다.
이 총재는 한국은행 물가안정 목표치(2%)보다 물가가 높은 상황에 대해 "물가가 많이 올라서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번에 물가가 올라간 요인은 유가등 해외 요인이 많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 총재는 "해외요인이 많아서 물가를 단시간에 잡을 수 없다"면서도 "빠른 시일 내물가상승률이 3% 밑으로 내려간 국가는 선진국 중 한국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수진 의원은 "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 수준이 여전히 높다. 미국과 기준금리 차이가 2%p로 확대됐고 고물가가 서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고 있다"면서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근원물가상승률은 4.5%로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총재가 조금 더 긴장하셔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통위는 지난 7월 회의에서 "국내경제는 성장세가 점차 개선되는 가운데 물가상승률이 상당기간 목표수준(2%)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정책 여건의 불확실성도 높은 만큼 물가안정에 중점을 두고 긴축 기조를 상당기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인플레 목표치 수정론 확산
연방준비제도. 사진 출처 = 이코노믹리뷰 DB
이같은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미국 하원과 월가에서는 연준이 정책목표로 제시한 인플레이션 2% 복귀의 효용성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물가안정을 위한 연준의 적정 목표치를 현재의 2%에서 3%로 올려야(목표 완화)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대표적으로는 올리비에 블랑샤르(MIT대 교수(전 IMF 수석경제학자), 케네스 로고프 하바드대 교수, 모하메드 엘 에리언 전 핌코 CEO 등이 물가목표치를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와 더불어 물가목표 범위 도입론) 물가안정목표를 2%가 아니라 2~3.5%(근원 PCE 상승률 기준)의 목표범위 방식(물가목표 범위 도입론)으로 변경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시간) 연준이 인플레이션 2%대 복귀를 위해 얼마나 더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고수해야 하는지를 놓고 반론이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기록적인 인플레이션 속에 9.1%까지 치솟았지만, 현재는 3.1%까지 하락하면서 진정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다만 연준이 물가를 끌어내리기 위해 기준금리를 2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 연 5.25∼5.50%로 올리면서 경제 전반의 피로가 고조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미 의회 뿐 아니라 경제 전문가들은 현재 3.1%의 물가상승률을 2%로 낮추기 위해 추가로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실업률 상승 등 각종 고통을 감내해야 할 정도로 물가상승률 2%대 복귀라는 연준의 정책 목표 달성이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느냐는 것이다.
민주당 소속인 로 칸나 하원의원(캘리포니아)은 "물가상승률 2%라는 목표는 과학이 아니고, 연준의 정치적인 판단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칸나 의원은 2%라는 수치에 어떠한 의미도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연준이 명확한 인플레 목표 수치를 설정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지난 2006년 벤 버냉키가 연준 의장으로 취임한 뒤에야 인플레 목표치 설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을 정도다.
40여 년 만에 가장 가파른 인플레이션이 진정된 만큼 인플레 목표 수치를 2%에서 현재 물가상승률인 3%대로 조정하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애덤 포즌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소장은 "물가상승률을 3.5%에서 2.25%로 낮추기 위해 경제를 짓누르는 행위에 대해선 경계해야 한다"며 "물가상승률은 절대불변의 가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연준이 인플레 목표치를 수정할 경우 말 바꾸기로 인한 시장의 신뢰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또한 현재 미국 경제 상황을 살펴보면 2% 목표 달성에 우려할 만큼 큰 고통이 뒤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수전 콜린스 보스턴 연은 총재는 현재 미국 경제에 대해 "연착륙으로 가는 길이 넓어졌다"고 표현했다. 실업률을 크게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향후 2년 이내에 인플레 2% 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연준도 인플레 목표치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목표치 수정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반복적으로 밝혔다.
다만, 연준이 인플레 목표치 2%를 고수한다 하더라도 한국이 이 목표치를 무조건 따라가는게 타당한지는 별개 문제다.
국제금융센터는 올해 4월 '연준의 물가안정목표제(Inflation targeting) 논란 및 평가'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 문제를 짚었다.
보고서에서는 "물가경로의 불확실성이 큰 현 상황에서 물가목표 변경은 시기상조라는 시각이 중론이나, 물가상승률이 3%대로 낮아질 경우 적정 물가목표 수준을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고 중앙은행들도 물가목표 수정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나타낼 가능성 잠재한다"고 분석했다.
한편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3%로 25개월래 최저치로 둔화했다.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물가상승률은 3.3%로 둔화했다. 8~9월 물가상승률이 다시 반등한 후 완만하게 하락할 것이라는 게 한국은행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