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와 중국. 지난해 전체 수출의 21%(품목)와 27%(지역)를 책임진 ‘일등공신’들의 ‘배신’에 우리 경제는 연초부터 휘청였다. 올 들어 20일까지 수출액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28.8%(반도체)와 22.5%(중국) 쪼그라들면서 전체 수출은 14.6% 뒷걸음질쳤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 다음달 초 찾는 중국 산시성 시안 공장은 ‘수출 한국’을 멍들게 한 ‘반도체+중국’의 실상을 가장 가까운 데서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이번 출장을 통해 추락하고 있는 반도체 경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中 경기 하락…반도체 수요도 뚝
우리 기업들의 중국 수출 물량이 급감한 배경에는 중국의 성장 둔화가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6.6%로 1990년 이후 28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의 성장 둔화는 반도체 경기 하락과 직결된다. 화웨이 샤오미 오포 등 중국 정보기술(IT) 업체들의 제품 판매량이 줄어드는 만큼 메모리 반도체 탑재량도 감소하기 때문이다. 화웨이가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5G(5세대) 네트워크 장비 수출이 줄어들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도 똑같이 타격을 받게 된다는 얘기다. 화웨이는 삼성전자의 글로벌 5대 거래처(금액 기준)로 꼽히는 ‘큰손’이다.
중국은 삼성전자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거래국이다. 2013년 18.5%에서 5년 만인 지난해 3분기 32.9%로 급증했다. 현지 가전·휴대폰 업체에 밀려 삼성전자 완성품(세트)의 중국 점유율이 급감한 점을 감안하면 반도체가 중국 비중을 끌어올린 핵심 요인이었다. ‘중국 경기 둔화→반도체 수출 급감→삼성전자 영업이익률 급락’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수익성이냐, 장악력이냐”
2014년 문을 연 시안 공장은 삼성전자의 유일한 해외 메모리 반도체 생산기지다. 주력 생산품은 전원이 꺼져도 저장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 낸드플래시다. 삼성전자는 내년 본격 양산을 목표로 이곳에 2공장을 짓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새해 첫 해외 출장지로 시안을 꼽은 것에 주목하고 있다. 낸드 가격 및 출하 전략을 세우기 위한 현장 점검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낸드는 삼성,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빅3’가 세계 시장의 95%를 차지하는 D램과 달리 삼성전자, 도시바, 웨스턴디지털, SK하이닉스 등 5~6개 업체가 경쟁하는 탓에 가격 하락 폭이 상대적으로 컸다.
낸드 업체들이 ‘가격을 지키기 위해 출하량을 줄이느냐’와 ‘가격을 포기하는 대신 출하량을 늘려 점유율을 높이느냐’를 놓고 고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위권 업체들은 업계 1위인 삼성(시장점유율 41%)이 어떤 전략을 쓰느냐에 예의 주시하고 있다. 기술력과 자금력을 갖춘 삼성이 가격 하락기를 틈타 ‘치킨게임’을 벌일 가능성도 있어서다. 치킨게임 과정에서 몇몇 업체가 쓰러지면 훗날 반도체 호황이 올 때 살아남은 업체들은 더 큰 과실을 거두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내년으로 예정된 시안 2공장 본격 양산 시점을 늦추면 ‘수익성 극대화를 위한 출하량 조정’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반대로 양산을 강행하면 ‘낸드발(發) 치킨게임’이 시작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오상헌/고재연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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