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월6일 (로이터) - 2016년 가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을 때 K씨는 '게임이론'을 언급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길 기대했다.
K씨는 혐의자들 중 일부가 사실을 고하는 댓가로 죄를 경감 받으면서 '범죄의 윤곽'이 드러나고 국정을 농단한 자들이 처벌을 받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을 나타낸 것이다.
하지만 사건 전개과정은 K씨의 기대와 달랐다. 범죄 용의자들은 완벽한 증거를 내밀지 않는 이상 오리발을 내밀었다. 심지어 명확해 보이는 증거물에 대해서도 부인으로 일관하거나 증거물 획득 과정을 문제 삼기도 했다.
청와대가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비리 사건에 대해 사람들은 경악했으나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실을 불지 않았다.
국회 국정조사특위의 청문회에 나온 사람들도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는 말로 일관했다.
검찰 역시 조사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결국 특별검사가 꾸려졌다. 특검의 '증거 수집 능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됐다.
정황 증거는 많아 보였으나 범죄를 완벽하게 입증하긴 만만치 않다.
K씨가 꺼내들었던 게임이론의 가장 유명한 사례 '죄수의 딜레마' 얘기부터 시작해 보자.
▲ 게임이론 - 죄수의 딜레마
K씨는 조사과정에서 범죄 용의자들 중 일부는 혐의를 불 것으로 봤다. 범죄 혐의자나 피고가 유죄를 인정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해 증언을 하는 대가로 검찰이 형을 낮춰주는 것을 플리 바게닝(plea bargaining: 사전형량조정제도)라고 한다.
게임이론의 가장 유명한 사례인 '죄수의 딜레마'도 플리 바게닝과 관련된다.
죄수의 딜레마를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용의자 A와 B라는 두 사람이 체포된다. 유죄를 확정하기엔 증거가 부족하다. 검사가 피의자들을 각각 다른 조사실에 가두고 '거래를 제안'한다.
네 가지 경우의 수가 나온다. 2명의 주체와 두가지 선택의 길이 있기 때문에 경우의 수는 2×2=4, 즉 네 가지다.
1. 네가 자백하고 공범이 침묵하면 너는 무죄다.
2. 네가 침묵하고 공범이 자백하면 너는 징역 3년을 살게 된다.
3. 너와 공범 모두 자백하면 모두 징역 2년을 산다.
4. 너와 공범 모두 침묵하면 모두 징역 1년을 산다.
'합리적인' 용의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용의자 A는 용의자 B의 행동을 예상해서 자백을 할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용의자 A의 입장에서 접근해보자. A의 행동강령은 B의 움직임에 따라 다르다. 용의자 B가 자백한다고 가정할 경우 A도 자백해야 한다. 그래야 징역 2년으로 막을 수 있다. 침묵하면 혼자 징역 3년이라는 독박을 쓰게 된다.
용의자 B가 침묵할 경우 A가 자백한다면 A는 무죄로 풀려날 수 있다. 이 경우 A도 침묵하면 징역 1년을 살아야 한다.
결국 A의 입장에서 결론은 한 가지다. 자백을 하는 수밖에 없다. B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자백하는 게 A에겐 유리하다.
B 역시 A의 행동을 예상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으며, 결론은 A와 같다. 결국 각 주체에게 가장 합리적인 행위는 '자백하는 것'이다.
이처럼 '상대방의 행동을 예상해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 경제학에서 흔히 얘기하는 '내시균형'이다.
내시균형은 존 포브스 내시라는 미국의 수학자가 제창한 이론이다. 내시는 유명한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이다. 파란만장한 삶은 살았던 내시는 이 이론으로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위의 예를 눈여겨 본 사람은 알겠지만 내시 균형은 '가장 유리한' 균형은 아니다.
죄수의 딜레마에선 둘 모두 침묵하면 '징역1년'만 살고 나오면 된다. 두 사람 사이에 '텔레파시'가 통한다면 둘은 모두 침묵하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의 의중을 모를 때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행위는 '징역 2년'이란 결과로 이어지고 만다.
아울러 내시균형이 아닌 상태에선 누군가 최선의 행동을 다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내시균형으로 수렴하는 것이다. 완전경쟁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서로간의 힘을 가늠하다가 한 지점으로 수렴하는 원리와 같다.
▲ 죄수의 딜레마, 적용될 수 없었던 이유
'청와대 게이트'가 진행되는 사이 범죄 용의자들은 사안에 대해 불지 않았다. 명확한 증거가 나온 경우에만 마지못해 인정하는 식이었다. 심지어 인정했던 범법행위마저 뒤늦게 모른다는 식으로 나오기도 했다.
용의자들이 사실을 불지 않은 이유는 뭐였을까. 죄수의 딜레마의 '가정'을 점검해 보자.
죄수의 딜레마는 A와 B가 서로 연락을 취하지 못한다는 가정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청와대게이트에서 이 가정은 처음부터 성립되지 않았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의 40년 지기라는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를 대하는 검찰들이 처음부터 이상했다. 아무런 권한도 없는 민간인이 권력을 휘둘렀지만 국가 사정기관이 그녀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2016년 가을 이 사태가 터졌을 때 한국 검찰은 그녀를 체포할 의지가 없어 보였다. 심지어 독일에 있던 최순실이 '자신이 원하는 날짜'에 맞춰 귀국할 때 검찰은 그녀를 배려했다. 귀국 후 하루 쉬면서 조사에 대비할 수 있도록 했다.
'청와대 비밀문건'을 아무런 권한도 없는 일반인, 최순실이 받아 봤다는 증거물이 나왔으나 한국 검찰은 그녀가 작전을 구상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처럼 보였다.
증거인멸 우려가 크고 범죄 혐의자들의 작전모의가 뻔해 보이는 상황에서 한국 검찰은 황당한 결정을 했던 것이다.
일각에선 완성단계의 문서가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 기록물이 아니라는 식으로 펜스를 쳐주는 모습들도 보였다.
종편 방송 JTBC가 2016년 10월24일 태블릿 피씨를 입수해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 등을 검토했다고 보도해 사회적 파장은 커졌으나 범죄 혐의자를 대하는 '법'의 태도는 비정상적인 것이다.
JTBC 보도 이전에도 최순실은 의혹의 대상이었다.
한겨레는 2016년 9월22일 "대통령 직속인 이석수 틀별감찰관이 지난 7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모금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 대해 내사를 벌인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후 안종범 청와대 수석이 전경련과 기업체들에게 돈을 재단(미르와 K스포츠)에 출연하도록 압력을 넣었으며, 이런 행위의 중심엔 최순실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민들은 과거 한국경제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인 '정경유착'을 떠올렸다. 재벌들의 기부(?)와 관련한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의 연관성, 청와대의 개입 가능성, 기업들의 문화재단 지원 댓가성 등을 따져야 할 문제였다.
청와대가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고 기업들도 자신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돈을 냈다면 이런 행위들은 뇌물죄, 배임죄 등 형사적 측면에서도 법률 위반이 된다.
1997년 대법원은 "대통령은 기업체들의 활동에 있어 직무상 또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금품을 공여하면 바로 뇌물공여죄가 성립하고 대통령이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는 범죄의 성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서 '포괄적 뇌물죄'의 법리를 인정한 적도 있다.
2016년 가을부터는 세간엔 안종범 청와대 수석과 기업 관련자 등이 뇌물 관련죄를 저질렀다는 얘기들이 주장이 파다했다.
아울러 최순실의 연설 '지시 내용'을 박근혜 대통령이 '그대로 따랐다'는 보도들이 잇따르고 최순실 일가의 재산형성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종잣돈'이 됐다는 의혹들이 보도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을 '공동 정범'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들도 나왔다.
하지만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조사 청문회에도, 헌법재판소의 출두 요청에도 거의 응하지 않았다. 최 씨는 조사에 응하더라도 자신의 '무죄 항변'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만 나서는 듯했다. 대통령은 자신의 약속과 달리 사법기관의 부름에 나가지 않았다.
최순실과 청와대의 범법행위 연루 의혹을 받는 사람들은 심지어 증거가 나와도 '불법적으로' 취득한 증거물은 증거로서의 효력이 없다는 식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들은 법의 구조상 '일단 뻣대는 게 유리하다'는 점을 파악한 것으로 보였다.
제한된 시간이지만 최순실은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동안에도 언론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 결정이 나온 뒤 마치 범죄혐의자에게 대응을 지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의혹을 키우기도 했다.
언론의 질문을 받지 않는 박 대통령이 2017년 연초 예정에 없던 긴급 '기자회견'을 하면서 '나는 죄 없다'고 주장했다. 호사가들은 용의자들, 혹은 혐의자들 간에 물밑 조율이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범죄 용의자와 피의자 등으로 구성된 청와대 게이트 관련자들이 입을 맞추는 듯한 양상을 띄었던 것이다. 결국 범죄 혐의자들은 '잘못이 없다'거나 묵비권 행사로 특검에 맞섰다. 범죄 혐의자들간의
소통 창구가 닫히지 않은 이상 범죄의 딜레마 이론은 무용지물이 된다.
▲ 게임이론 기본구조
죄수의 딜레마는 게임이론의 가장 대중적인 예다.
하지만 게임이론엔 매우 다양한 사례가 있으며 복수의 내시균형이 생기기도 한다.
게임이론은 세상의 많은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 게임의 관점으로 접근해 어떤 결과가 생길 수 있는 지 예상할 수 있게 하는 툴이다.
이 이론은 '전략적 사고'를 통해 위기를 탈출하고 기회를 잡는 방법이다. 거창한 것 같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어떤 현상을 분석한 뒤 해결책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
동양철학의 '역지사지' 이론, 즉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사안을 보는 접근법과 유사하다. 경제학자 케인즈가 얘기한 '미인 대회'와도 비슷하다.
케인즈의 미인대회에서 '중요한' 미인은 내가 생각하는 미인이 아니라, 남들이 생각하는 미인이다. 예컨대 A라는 남자는 남방계 스타일의 여자를 미인이라고 생각하는 데 반해 다수의 사람들은 북방계 스타일의 여자를 미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A는 자신이 생각하는 미인이 아닌 '일반적인' 미인에 베팅을 해야 한다.
내가 생각할 때 오를 주식이 아니라 다른 투자자들이 사고싶어 하는 주식을 찾는 게 영리한 투자자가 할 일이다.
게임이론이 세상만사의 문제를 '게임'의 관점으로 접근하지만 접근 단계가 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게임의 구조를 파악하는 일이다. 이런 태도는 모든 사건에 접근할 때 1차적으로 하는 일이며, 게임이론식 접근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하다.
게임의 구조를 파악한 뒤 향후 일어날 상황을 예상한다. 그런 뒤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큰 골격은 이렇다.
1. 구조 파악
2. 미래 예측
3. 해결책 모색
이 단계를 거쳐서 우리는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 사실 상식적인 얘기다. 현상을 '제대로' 파악해야 미래를 내다볼 수 있으며, 미래가 가늠될 때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 청와대게이트, 그 찬란한 게임
이 지점에서 청와대게이트와 관련해 게임의 구조를 정리해 보자.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죄수들끼리 '상호간의 믿음을 형성하고' 내통한다면 둘은 모두 자백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내통하더라도 같이 불지 않기로 한 뒤 '상호간의 믿음이 약해' 한 사람이 불면 이 사람은 무죄로 풀려날 수도 있을 것이다. 후환이 두렵겠지만...
한데 청와대게이트에선 모로쇠 전략으로 나가는 게 유리한 행동강령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었다.
사실을 불더라도 얼마나 정상 참작을 해 줄 수 알 수 없는 것처럼 보였으며, 위증을 하더라도 '검찰이 사실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용의자들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위증죄도 그리 무겁지 않아 한번 써볼만한 전술이었다.
특히나 특검이 들어서기 전까지 검찰은 용의자들의 편의를 많이 봐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많은 한국 국민들은 이 나라의 '정치' 검찰은 국민의 편에 서서 일하기보다 조직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이익집단으로 이해했다.
이런 구조에선 용의자나 피의자들은 '항전의 의지'를 나타낸다. 한데 조사가 진행되면 될 수록 수없이 많은 범죄 혐의들이 쏟아졌다.
2017년 들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 장관 등은 이른바 '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 건으로 구속 수감됐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은 예술인들을 '좌파'라고 규정해 지원을 끊
는 일 등을 했다고 한다.
청와대가 너무 심심한 곳이어서 재미 있는 많은 일이 필요했을 수 있지만, 21세기에 벌어진 일 치고는 매우 유치한 사건이었다. 이 일에 대한 대통령 관여 의혹도 증폭됐다.
하지만 청와대 출신의 범죄 용의자들의 '모로쇠' 전략은 지속됐다.
▲ 동적게임
'동적 게임'은 '시간의 흐름'을 고려하는 게임이론이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형세가 바뀌게 되면 그에 대응하는 게임이다.
유명한 범죄의 딜레마 이론이 정적인 게임을 가정한 논리라면 동적 게임에선 '게임의 전개'가 중요하다.
상대방의 취해 나가는 전략에 맞춰 나의 전략을 수정하는 것이다. 범죄의 딜레마 상황에 처하더라도 상대방의 전략을 알 수 있으면 그 상황에 맞춰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할 수 있다.
청와대 게이트 역시 동적 게임 구조에 가까운 느낌이 든다.
예컨대 최순실이 '침묵과 부인'이라는 선택지를 집어든 것이 각종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 사건에 관련된 다른 사람들도 그에 맞춰서 자신의 입장을 정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는 죄가 없다'는 입장을 강력히 피력하면서 항전의 의지를 다지면, 그에 맞춰서 범죄 혐의자들이 입장을 정할 수 있게 된다.
또 '고전적인' 죄수의 딜레마 역시 '반복 게임'이 될 경우 두 죄수 모두 자백을 하는 대신 침묵을 선택할 확률이 높아지는 측면도 있다.
이른바 행위 반복을 통해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청와대게이트 관련자들의 '물밑 접촉'이 없더라도 최순실 등 핵심 용의자가 검찰 조사 등에서 침묵으로만 일관하고 모든 사안을 부정한다는 것을 알게된 이상 다른 용의자들도 같이 침묵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 뇌물죄, 모로쇠, 그리고 게임구조 변경
청와대게이트와 관련해서 '뇌물죄' 성립 여부가 중대한 변수다. 강요죄, 직권남용죄 등은 형량이 적으니 뇌물죄로 대통령과 관련 범죄 혐의자들을 구속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현직검사가 이런 얘기를 했다.
"청와대 게이트에선 뇌물죄 성립 여부가 관건입니다. 직권남용이든 뭐든 형량의 한계가 뻔해서 범죄 혐의자들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다만 뇌물죄의 경우 1억 이상일 경우 10년 이상의 형을 감수해야할 수 있는 등 아주 무겁게 처벌돼 누구든 떨게 되죠."
그는 게임의 '새로운' 틀 측면에선 대통령의 구속 여부보다 '범죄집단'의 재기 가능성을 차단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게임의 툴을 바꿀 필요도 있다고 했다.
예컨대 공직자가 저지른 '위증죄'의 경우 형량을 아주 무겁게 해서 위증혐의가 드러날 경우 재기를 어렵게 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하고 조언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의 '무력함' 역시 손을 보는 식으로 '게임의 틀'을 바꾸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아무튼 대기업 총수, 최순실 등 범죄 행위 관련자들 모두 뇌물 관련 죄는 최대한 피하기 위해 노력했다. 안타깝게도 혐의자들이 이번 게임에서 보이는 태도 역시 합리적인 측면이 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더라도 그냥 죽기는 싫은 법이기 때문이다.
게임이론에서도 '공익'을 위해선 '게임의 구조'를 바꾸는 게 필요한 일이라고 조언한다. 예컨대 형량 등 제재기준을 바꾸면 공적인 영역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들의 경우 비용 절감 차원에선 이산화탄소를 그냥 배출하는 게 유리하다. 하지만 이산화탄소를 다량 배하는 일에 대해 제재를 가하기 시작하면 '다량 배출=고비용'이라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어부들의 무분멸한 물고기 난획 문제도 이런 식으로 구조를 바꾸면 해결할 수 있다.
청와대게이트는 범죄행위가 국가에 미치는 폐해를 최소화할 필요성을 웅변하고 있다. 형량 조정 등을 통해 '게임의 구조변경'이 필요함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공직자 등의 위증=높은 형량' 등으로 구조를 변경할 필요가 있다.
▲ 탄핵과 통치행위..게임이론을 넘어서
20년 가량 법조계 일을 하고 있는 한 변호사와 얘기를 나눌 때 그가 이런 얘기를 했다.
"대통령 탄핵 문제를 지금 언론에서 보도하는 행태가 영 마음에 안 듭니다. 대통령 탄핵문제는 형사사건과 별도의 문제입니다. 자꾸 그것과 엮지 마세요."
범죄 행위는 범죄 행위 대로 처리를 하되, 대통령 탄핵은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했다. 즉 탄핵 문제는 기본적인 통치행위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했다.
"예컨대 세월호 때 많은 국민들이 바다에 빠져 죽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출근을 안했어요(대통령과 청와대는 관저근무라고 주장했다). 그 때 뭐했는지 궁금해하니 대통령은 '내가 뭐했는지 맞춰보라'는 식의 스무고개를 계속 했어요. 이게 대체 뭐하는 건가요?"
그는 다른 사안들 역시 탄핵사유로 충분하다고 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상식의 문제입니다. 대통령은 국민들이 자신에게 부여한 권한을 왜 아무런 위임도 받지 못한 최순실에게 이전합니까. 최씨같은 일반인이 이 정부의 인사에 개입했다는 것만으로도 탄핵감이에요."
이 변호사는 또 청와대게이트를 보는 방식에 대해 게임이론을 거론하자 나를 비판했다.
"뭐 그런 이론으로 접근할 수도 있지만, 이건 기본 도덕의 문제에요. 청와대가 황당한 범죄집단, 혹은 범죄의 소굴이 됐습니다. 그 따위 이론이 그들의 남은 이익을 지키려는 행위를 합리화 시켜줄지 걱정되는군요."
공직을 담당하는 사람은 일반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사람들에겐 보다 무거운 도덕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정 잡배보다 못한 '죄의식'으로 무장한 공직자들의 행태는 국민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염치를 모르는 청와대의 저질게임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부록 청와대게이트, 어렵게 드러나다
△ 폭력조직 서방파와 정운호
우선 한국사회의 '제대로 썪은' 면모를 살펴보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나는 과정은 매우 극적이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는 아주 복잡하며 어지럽기까지 하다. 이를 단순히 정리해 보자.
얘기는 폭력조직 범서방파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듯하다.
1977년 김태촌 주도로 결성된 서방파는 1980년대 여러조직을 흡수합병하면서 국내 최대의 범죄 조직으로 성장한다.
범서방파의 역사를 가까운 기간만 보자. 서방파는 2009년 서울 강남에서 부산 칠성파와 크게 한판 붙으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 폭력조직간의 갈등 덕분에 범서방파는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경찰 수사망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러던 중 김태촌이 2013년 돌연 사망한다. 그가 사망하면서 이 조직의 응집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2015년 서방파 조직원 일부가 마카오 고급도박장(정킷방)을 운영한 혐의로 검찰 수사망에 포착된다. 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야구팬들이 모두 아는 삼성 라이온즈 유명 선수들의 도박 혐의도 드러난
다. 하지만 '야구선수 도박건'은 거대 비리의 양념 수준이었다.
조사 과정에서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대표 등 기업인들이 거액의 판돈으로 바카라 도박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수면 아래에 있던 사건들이 고구마 뿌리 엮이듯 드러나기 시작한다.
△ 정운호와 최유정
조사 과정에서 정운호 씨의 롯데그룹 면세점 입점 로비 의혹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롯데 그룹의 비자금 수사로까지 확대된다.
롯데 그룹의 신동주, 신동빈 형제는 2015년 '형제의 난'을 일으키면서 롯데 그룹 경영권을 놓고 다퉜다. 이후 2016년에도 악재는 그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사실 네이처리퍼블릭 사건은 한국의 역사를 바꿨다. 원했던, 원치 않았던 정운호 씨가 '청와대게이트'로 통하는 거대한 비리의 문을 열었다.
2015년 4월 1심에서 징역 1년형을 받고 복역하던 정운호 대표가 자신의 변호사를 폭행한 사실이 드러난다.
정 씨의 변호사는 부장판사 출신의 최유정 씨였다. 그녀는 '전관예우' 특혜를 누리면서 정운호 대표로부터 무려 50억원에 달하는 수임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난다.
수임료 문제로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몸싸움이 일어났고 최유정 씨는 변호사법 위반으로 구속된다.
최유정 씨는 석방 로비 명목으로 구속된 피고인들에게서 100억원(정운호 사건 50억원 등)의 수임료를 챙긴 혐의로 기소된 뒤 2016년 1월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 받는다.
△ 정운호와 최유정, 그리고 홍만표
정운호와 최유정의 '돈 싸움'을 조사하는 와중에 거물급 인사가 포착된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정운호 씨 구명을 위해 뛰던 인사들 중엔 홍만표 변호사 등 유명 법조계 인물들도 개입된 것으로 나타난다.
홍 씨는 정운호 대표에게 수사무마 청탁 대가로 3억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다.
2015년 5월 검사장 출신의 홍만표 비리 조사 과정에서 진경준 전 검사장이 대량의 넥슨 주식으로 무상으로 받아 무려 120억원에 달하는 시세차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난다.
이 사건들은 정운호 건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범서방파 건과 연결돼 드러난 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러다보니 세간에선 많이들 '나비효과'를 거론했다.
△ 진경준과 넥슨, 그리고 홍만표와 우병우
진경준과 넥슨의 검은 거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넥슨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관계가 드러난다.
넥슨으로부터 거액의 주식을 받은 혐의로 진경준 씨가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넥슨과 우병우 씨 처가의 부동산 거래 의혹이 부각된 것이었다.
진경준 검사장이 우 수석의 처가 부동산을 넥슨에 알선했다는 의혹이었다.
정운호 씨는 계속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홍만표 씨는 정운호 씨를 변호하면서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 씨를 거론하면서 안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세상의 호사가들은 전직 검사장과 청와대 민정수석의 검은 커넥션이 드디어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수근댔다.
홍만표와 우병우 두 사람은 운명을 달리한 노무현 대통령을 조사하던 권력지향형 검찰들이었다.
△ 우병우 등장과 조선일보의 싸움..K스포츠와 미르재산
드디어 우병우 전면 등장.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리 의혹이 드러나면서 BH(블루 하우스)는 긴장한다.
우병우 의혹을 일으키면서 그를 대중 스타로 만든 것은 조선일보였다.
이러자 청와대는 조선일보를 '부패 기득권 세력'이라고 비난하면서 사건 확대를 차단하기 위해 애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문화재단 'K스포츠'와 '미르재단'에 대해 청와대가 압력을 넣어 기업들로부터 돈을 상납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등 공세 수위를 강화한다.
청와대의 역공도 만만치 않았다.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이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거액의 접대를 받은 사실이 '친박' 김진태 의원을 통해 폭로된다. 2016년말 촛불시위를 종북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한 그 김진태 의원이다.
당연히 사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를 청와대의 기획된 되치기로 이해했다.
△ 최순실 드러낸 한겨레, 물증 잡은 JTBC
2016년 9월 한겨레가 K스포츠와 미르재단의 기업 옥죄기, 그리고 정경유착의 중심에 '최순실'이 있다고 폭로한다.
한겨레 보도로 사건은 드디어 본격적인 청와대게이트로 커지기 시작한다.
조선일보가 청와대의 되치기에 맥을 못 추는 사이 한겨레는 최순실이 청와대 문건을 수시로 받아보는 등 이미 청와대가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했음을 세상에 드러낸다.
청와대는 한겨레 등 언론의 의혹제기에 사실무근이라는 '주장'으로 맞섰다.
최순실의 존재가 드러난 대략 한 달 뒤 JTBC에서 '최순실 태블릿 피씨'라는 물증을 만천하에 공개한다. 청와대는 단순히 주장으로 맞설 수 없게 돼 버렸으며, 최순실 일가의 국정 농단사건은 한국사회를 들끓게 만들었다.
최순실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학 비리와 삼성의 정유라 승마 지원은 일련의 사건들은 국민들의 분노를 한층 고조시켰다.
대통령은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대통령은 최순실과의 '친한' 관계임을 인정했지만 '순수한 마음'에서 최 씨에게 연설문 문건 등을 보게 했다고 했다. 이런 대통령의 '순진무구한'(?) 발표는 더욱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 청와대게이트와 이재용..그리고
10월의 마지막 밤, 아니 10월의 마지막 토요일부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선 촛불이 타올랐다.
이후 매주말 촛불시위가 서울 시내를 뒤덮었으며 주최측은 12월3일 6차 촛불집회에 232만개의 촛불이 모였다고 발표했다.
결국 국민 분노가 사그라들기는 커녕 계속 커져만 가자 국회는 결국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찬성 234표라는 압도적인 표로 통과시켰다.
이후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은 뇌물죄, 직권남용죄, 강요죄 등의 의혹을 받으면서 특검에 항전하는 태세를 띄었다.
권한이 정지된 대통령은 2017년 새해를 맞아 예정에 없이 갑자기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은 죄가 없으며 '사건을 엮었다'고 주장했다.
특검의 화살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기업 삼성에 맞춰졌다.
2017년 1월16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해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 국회 증언·감
정 등에 관한 법률상 위증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특검은 삼성이 2015년 8월 최순실의 독일 회사인 비덱스포츠와 맺은 220억원대 규모의 컨설팅 계약, 최순실 조카 장시호가 운영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한 16억원,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204억원 등을 모두 뇌물로 봤다.
특검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그리고 이재용 삼성 부회장 사이에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돈 거래'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 부회장이 뇌물을 공여했고 박 대통령과 최순실이 뇌물을 수수한 사건으로 본 셈이었다.
하지만 영장청구는 기각됐으며 청와대의 범죄 혐의자들은 다시금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진다. 그 사이
일부 언론이 '돈 받고' 관제 대모를 한다고 보도한 이른바 보수세력들은 '종북세력 척결' 등을 들먹이면서 탄핵 무효를 주장하면서 분위기 전환에 애를 썼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을 늦추기 위해 박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시간을 끄는 지연 작전에 돌입한다.
2016년 2월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퇴임하면서 3월초까지 가급적 빨리 탄핵심판 도출할 필요성을 제기하지만 범죄 혐의자들과 이를 지원하는 세력들은 시간을 끌면서 역공을 펼칠 기회를 엿본다.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겨울까지 한국의 무정부 상황은 그렇게 흘러갔다.
최순실이 청와대 문건을 받은 것은 기본이며, 각종 인사(심지어 외교관 인사까지)에 개입했다는 정황들도 드러났다.
김기춘, 조윤선 등은 문화산업 관계자들 대상으로 블랙리스트 작성한 의혹을 받았다. 물론 이 모든 사건의 몸통은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대통령 탄핵 사유로 국회가 적시한 내용을 기억해두자.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서 요지에서 밝힌 대통령의 헌법 및 법률 위반 혐의는 다음과 같다.
헌법: ★ 국민주권주의·대의민주주의 위반 ★ 평등원칙 위반 ★ 재산권·직업선택자유 등 위반 ★ (세월호 관련)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법률: ★ 미르·K스포츠 재단관련 범죄 ★ 롯데그룹 추가 출연금 관련 범죄 ★ 최순실 등에 대한 특혜 제공 관련 범죄 ★문서 유출 및 공무상 비밀누설 범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