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을 우선시하던 시장 분위기도 몇 년이 지나는 동안 확연히 달라졌다. ESG 기준에 부합하는 기업에만 투자를 집행하는 이른바 ‘ESG 투자’가 요즘의 대세다. 2018년 기준 약 3경 3,600조원 정도였던 글로벌 ESG 투자 규모는 2021년에는 약 4경 4,400조원으로 31% 이상 성장했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변화가 크립토 업계의 최신 흐름과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블록체인 특유의 투명성을 이용한 일차원적인 활용이 다수였지만 요즘에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전통 기업과 크립토 기업의 경계가 더욱 희미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물류용 도구에서 종합 플랫폼으로…쓸모 많아진 블록체인 스타벅스는 글로벌 프랜차이즈 커피 업계에서 ESG 경영을 가장 앞장서서 선도하는 기업 중 하나다. 플라스틱 빨대 대신 종이 빨대를 사용하거나, 재생지를 사용해 일회용 컵을 제조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보급하는 등 과감한 시도들을 해 왔다. 지난 2018년부터는 블록체인을 활용해 원두 생산지부터 소비자에게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빈 투 컵(Bean to cup)’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소비자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먹는 원두가 어디의 누구에게 오는지, 스타벅스의 지불 과정이 공정했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물류 플랫폼에 블록체인을 적용한다고 해서 효율이 비약적으로 개선되진 않지만 신뢰라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고, 그것이 지속가능한 경영의 동력원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블록체인 오라클 프로젝트인 체인링크(Chainlink)는 기후 변화 방지에 도움을 주는 행동을 하면 보상을 지급하는 인센티브 시스템인 AIRS(Automated Incentives for Regenerative Stewardship)를 제작하고 있다. 녹지를 늘리고 토양을 개선하는 행위를 위성 이미지를 통해서 확인하고, 체인링크 오라클을 통해 자동으로 보상을 지급하는 방식의 스마트컨트랙트(Smart Contract)를 만드는 게 목표다.
이 시스템이 완성되면 범 지구적인 규모의 탄소 저감 협력이 가능해진다. 태양에너지 활용성은 뛰어나지만 상대적으로 탄소 저감에 관심이 없는 중,저위도 지역에 사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녹지를 늘리고 확충하도록 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토큰 보상을 통해 독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체인링크는 지난해 5월 이같은 계획을 밝히고 코넬 대학(Cornell University) 연구팀과 함께 작업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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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다음으로 시가총액이 높은 이더리움의 경우, 아예 블록체인 합의 구조를 전력을 많이 소모할 수밖에 없는 작업증명(PoW) 방식에서 지분증명(PoS) 방식으로 바꾸고 있다. 올해 9월 예정된 병합(Merge) 작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이더리움 전체 네트워크가 사용하는 전력량은 기존 사용량의 1% 수준으로 감소하게 된다.
토큰 보유자들이 자유로운 제안과 투표를 통해 사업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탈중앙화자율조직(DAO)은 불투명한 전통 기업의 거버넌스 구조를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 모델로 꼽힌다. 유명 탈중앙화금융(DeFi, 디파이) 프로젝트인 신세틱스(Synthetix)와 메이커다오(MakerDAO)는 이미 지난 2020년과 2021년에 DAO로 운영체계를 전환했다. 지난 12월 암호화폐 전문 투자사 a16z는 NFT 기반 아티스트 협의체인 FWB(Friends With Benefit) 다오에 직접 130억 원 상당의 투자를 집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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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ESG 바람을 타고 블록체인 기술을 가져다 쓰는 전통 기업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토큰과 NFT, DAO 구조를 차용하는 기업들도 늘어날 것이다. 경쟁없는 시장에서 정해진 성공 공식에 따라 자기 복제를 즐기던 크립토 기업들은 어쩌면 이제부터는 긴장해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