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의 마음과 달리 주식시장이 화끈하게 상승하지 못하다 보니, 현재 증시가 답답하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런 증시 상황이 자칫 2010년대 증시와 같은 꽉 막힌 장기 횡보장의 시작점이라고 가정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상상만 해도 고구마 100개를 물 없이 먹은 듯 답답함이 느껴지실 것입니다.
오늘 증시 토크에서는 혹시나 지금 증시가 장기 횡보장으로 진행된다면 어떤 시나리오가 기다릴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일단 물 한 모금 마시고 말이죠.
햇수로 거의 7년여 꽉 막혔던 2010년대 주식시장
2020년 동학개미 운동 이후 증시에 참여하신 분들에게는 책에서만 보았던 2010년대 초장기 횡보장. 경험하신 분들은 그 당시를 어슴푸레 떠올리실 수 있지만, 당시 경험이 없는 동학개미분들에게는 2010년대 증시는 너무도 Easy 하게 느껴지실 겁니다.
“그렇게 좁은 횡보장이 뭐가 두려워? 조금 버티면 되는 거 아님?”
그도 그럴 것이, 2011년부터 시작된 햇수로 7년여의 (혹은 관점에 따라서는 그 이상) 횡보장은 코스피 지수 기준 1,800~2,200p의 좁은 영역에서만 증시가 움직였습니다.
(※ 위의 값은 최대/최솟값이고 기간 대부분은 1,800~2,100p에서 움직였습니다.)
코스피 1,800p 무너졌다 싶으면 다시 증시가 반등하였고, 코스피 2,000p를 넘어서면 서서히 증시 체력이 떨어져 다시 하락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이전까지 한국 증시는 주기적으로 100% 폭등 후 –50% 폭락을 반복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당시 증시 변동성은 그야말로 좁은 수로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투자자들 : 매일 걱정, 경제 걱정, 증시 걱정, 종목 걱정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평온하다고 보이시겠습니다만, 당시 시장참여자들은 지금보다도 더 큰 걱정을 매일같이 하였습니다.
유럽위기로 인한 증시 폭락 걱정, 미국의 부채한도 실패 우려, 미국 파산 걱정, 일본 디폴트 가능성 걱정, 당시 유가 폭락에 따른 산유국 부실과 유럽 주요 은행 디폴트 공포, 2015년 중국 증시 버블 붕괴에 따른 충격파 걱정, 중국 그림자 금융 부실에 따른 글로벌 금융위기 우려, 북한 도발에 따른 국내 지정학적 리스크, 한국의 탄핵정국 속 증시 걱정 등 쉼 없이 투자자들은 증시에 대한 우려와 걱정을 쏟아내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덜합니다만, 2010년대 초중반에는 굴지의 대기업들의 부도 사태가 연이어졌었다 보니 개별 종목 단위의 리스크가 상당하였습니다. 당시 재계 순위 상위권이었던 D모 그룹 부도에 따른 회사채 사태, K그룹 사태에 따른 금융시장 경색 등 상장사들의 파산 위험이 종종 발생하였고 당시 증권가 찌라시에는 자주 “살생부”라는 단어가 들어간 종목 리스트가 돌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보면 증시 변동성이 정말 작았기에 투자자들의 마음은 고요하였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주가지수가 상대적으로 조용했기에 투자자들의 심리는 작은 변동성에도 더 심각하게 반응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향후 증시가 10년 전 당시처럼 좁은 횡보장으로 들어간다면?
증시가 좁은 횡보장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증시 유동성 문제, 경제 성장에 대한 한계, 기업들의 성장성 우려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제 구조상 2025년 이후 초고령 사회가 정해진 운명이다 보니, 경제 활력에 대한 기대치는 점점 낮아져 좁은 횡보장 가능성이 논리적 근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향후 증시가 10년 전처럼 좁은 횡보장에 들어간다면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첫째, 투자자들의 기대 수익률이 매우 낮아질 것입니다.
2010년대 횡보장을 거치면서 개인투자자의 주식시장에 대한 기대 수익률은 은행 이자보다 조금 많은 정도면 된다는 식으로 크게 낮아졌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소박하게 상한가를 노리던 투자심리와 비교한다면 극단적으로 낮아졌던 것이지요. 당시 지인들 친구들과 주식투자에 관해 대화를 나누다 “주식투자 수익률이 은행 이자보다 조금 더 높다면 대박이지….”라는 표현을 종종 듣곤 하였습니다. 그만큼 장기 횡보장이 발생하면 개인투자자의 기대치가 낮아집니다.
둘째, 대박 수익률보다는 안정적인 수익률을 추구 : 위험 중립형 투자 방식 증가
2020년 유동성 랠리 속에 동학개미 운동을 거치면서 투자자들의 기대 수익률은 그 이전에 비해 매우 높아져 있습니다. 2020년 동학개미 운동이 발생하기 직전인 2017년~2019년에는 한 자릿수 기대 수익률을 만들던 양매도 ETN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폭발적이었습니다. 당시 그 인기가 상당했었고 양매도 ETN을 개발한 증권사 직원분은 거액의 연봉을 받고 다른 증권사로 이직했다는 뉴스가 나왔을 정도로 당시 중위험 중수익에 대한 투자자들의 갈망은 상당하였습니다.
만약 장기 횡보장이 찾아온다면, 투자자들은 위험 중립형의 중위험 중수익 투자 방식에도 많은 관심을 끌게 되겠지요.
셋째, 성장성이 있는 극소수의 종목에 투자자들의 이목 집중
경제나 기업들의 성장성이 제한되면서, 높은 성장성을 기대하거나 만드는 상장회사들이 크게 줄어들다 보면 증시는 재미없지만 한편 성장성이 가시적이거나 높은 확률로 기대되는 종목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2010년대에 셀트리온 (KS:068270) 관련 종목에 대한 투자자들의 쏠림을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밸류에이션에 대한 논리적 비판을 무시하고 성장성에 대한 기대가 등장하면 성장이 기대되는 소수의 종목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상승하였지요.
넷째, 한편 가치투자의 기대 수익률도 높아져
성장주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가 크지만 한편, 좁은 횡보장에서 기대 수익률이 낮아진 투자자들은 안전하면서도 합리적인 수준의 수익률을 만들 수 있는 가치주에도 관심을 끌게 되면서 가치주들이 2010년대 초중반 전체적으로 넓게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요즘 가치투자자들이 그리워한다는 그 2010년대 가치주 전성시대가 바로 좁은 횡보장에서 만들어졌었지요.
다섯째, 배당수익률을 더 귀하게 생각하게 된다.
주식투자에 대한 기대 수익률이 너무 높을 때는 투자자들은 배당수익률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하지만, 증시 횡보장이 길어지면 총투자수익률(주식매매 차익수익률+배당수익률)에서 배당수익률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당수익률을 중요시하게 됩니다.
미래는 어찌 될지 모르고, 역사는 반복되지는 않겠지만.
향후 한국 증시가 좁은 횡보장으로 들어선다는 시나리오는 여러 증시 시나리오 중 하나일 것입니다.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니까요? 예상치 못한 좋은 소식에 한국 증시가 3000, 4000, 5,000p를 쉽게 뛰어넘을 수도 있습니다. 한편 반대로 증시가 하락장이 계속 반복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2020~2022년을 거치면서 극단적으로 커졌던 변동성이 예년 수준의 변동성으로 줄어들고 있기에 좁은 횡보장 시나리오 또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요즘입니다.
위에 언급해 드린 상황들이 답은 아니겠습니다만, 혹시나 향후 증시 시나리오를 고민해 보신다면 2010년대 초장기 횡보장에 대한 복기나 연구를 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그냥 주가지수 차트만 보고 판단하지 마시고, 당시 뉴스 기사들을 꺼내 보면서 말입니다.
2023년 5월 24일 수요일
lovefund이성수 (유니인베스트먼트 대표,CIIA,가치투자 처음공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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