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중반 즈음에, 애플의 ARM 프로세서를 탑재한 맥북이 화두를 던졌다.
이전에 마이크로소프트를 필두로 윈도우 계열의 제조사에서 ARM을 탑재하는 것을 도전했지만, 윈도우10의 호환성 문제와 가상머신으로 X86을 구현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구조적인 한계를 직면하게 됐다.
올 6월 세계 개발자 회의에서, 애플은 중대한 발표를 했다. 향후 2년에 걸쳐 자사의 모든 컴퓨터 제품에 ARM 설계 기반에 애플 (NASDAQ:AAPL) 실리콘을 탑재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엄청난 격변이다. 애플과 인텔의 15년 간의 동행이 이렇게나 빠르게 끝날 줄 아무도 상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어느정도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지난 몇 년간 인텔은 자신의 시장점유율을 과신했고, 현실에 안주하는 듯한 행보를 보여왔다. 수 년간 14nm 이상의 공정으로 전환을 이뤄내지 못하며, 본인들의 모토였던 틱-톡 공정, 미세화 -> 최적화 과정을 거친다는 전략이었으나, 2016년에 틱-톡 전략을 포기하고 프로세스-아키텍처-최적화(P-A-O) 계획으로 수정하게 됐다.
다른 펩리스 기업들이 10nm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을 때도, 인텔은 지연된 10nm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공정의 미세화를 통해, CPU의 성능과 전성비가 괄목할만큼 개선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텔의 발전이 얼마나 늦은 것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인텔의 14nm 공정이 다른 기업들의 10nm 공정과 큰 차이가 없고, 이전과 같이 트랜지스터의 크기가 소형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것은 아님에도, 대만의 반도체 업체인 TSMC가 2022년 하반기에 3nm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2023년까지 7nm 생산은 얼마나 뒤쳐진 건지 느낄 수 있다.
결국 인텔은 자신의 가장 큰 고객인 애플을 놓칠 수 밖에 없었다. 애플의 맥 OS는 PC 시장에서 약 17%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작지 않은 고객이다.
게다가, 이번에 출시된 애플 실리콘, M1 칩은 정말 무시무시한 성능을 자랑하고 있다.
PC에 들어가는 여러 종류의 칩을 (SoC) 단일 시스템 온 칩으로 통합하여, 성능 및 전성비가 증대되었으며, 속칭 빅리틀 코어라고 불리는 (저전력 코어 4개 + 고성능 코어 4개의 구성)으로 전력 효율이 배로 나아졌다. 그 결과, 20시간의 어마무시한 배터리 타임을 갖게 되었다.
또한 M1칩은 이전 세대의 i9과 비슷한 성능을 보여주며, 별도의 외장 그래픽 없이도 16인치 맥북과 같은 렌더링 속도를 자랑한다.
또한 애플은 네이티브로 구동되지 않는 X86 앱에 대해서 로제타라는 기술을 통해 구현이 되도록 하는데, 윈도우 쪽과는 달리 높은 호환성과 준수한 성능을 자랑한다.
애플이 이런 변화를 꾀할 수 있었던 데에도 이유가 있다. 우선 그들은 PC OEM을 위해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본인들의 하드웨어를 위해 만들고, 고성능, 고품질, 높은 사용자 경험성과 마진을 추구한다. 인텔의 경우 수익을 포기해가며 ARM으로 이전할 필요성이 없다. 이미 시장은 과포화 상태이며, 점점 점유율을 잃어가는 인텔에게는 불필요한 도박수로 보였을 것이다.
애플의 경우, 넘쳐나는 현금보유량과 자산유동성은 이런 변화를 꾀하기에 충분했고, 그 가치를 몸소 증명했다. 또한 더 이상 인텔에게 라이센스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고, 본인들의 독자적인 규격에 맞춰서 제작되기 때문에 보안성과 호환성이 더욱 좋아질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앞으로의 시장에서 인텔이 살아 남기 위해선, FPGA 시장을 개척하여 암드의 자일링스를 제치고 1위로 등극하거나, 모든 시선이 ARM CPU로 주목된 시장에서 X86 만의 강점을 만들어서 소비자들을 유혹해야 할 것이다.
애플의 이러한 행보는 모든 PC 시장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앞으로 많은 제조사들이 ARM 칩셋을 탑재할 것이며, 기업들은 X86 플랫폼보다는 ARM에 치중하게 될 것이다.
애플의 변화는 극단적이라 할 수도 있으나, 이들의 행보는 매번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