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금융권에 따르면 태영건설에 대한 채권단 자산실사가 차주 내로 개시될 전망이다. 실사 결과 태영건설 우발채무 규모가 현재까지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크다면 계속기업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높다는 결론이 나와 워크아웃이 중단될 수 있다. 통상 워크아웃을 추진하다 법정관리에 돌입하는 경우 기업이 입을 타격이 더 심화된다고 본다.
올해 3분기 말 기준 태영건설의 PF 대출 잔액은 약 4조4100억원,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위한 PF 대출 보증액을 제외한 부동산 개발 PF 잔액은 약 3조2000억원이다. PF 우발채무 규모는 3조5000억원으로 자기자본의 3.7배에 해당한다. 총자산이 10조원으로 추산되는 태영건설은 현재 가지고 있는 계열사 지분을 모두 팔아도 빚을 갚기 어려운 상황이다.
태영건설의 주채권은행은 PF 대출 1292억원을 포함해 2002억원을 빌려준 KDB산업은행이다. KB국민은행, 기업은행, 우리은행도 각각 700억원에서 1600억대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증권사 중에선 PF 대출 412억원을 제공한 KB증권의 노출 비용이 가장 크다. 하나증권(300억원) 한양증권(100억원) 현대차증권(28억원) 미래에셋(23억원) 등도 단기차입금을 빌려줬다.
워크아웃 시행으로 태영건설은 일단 한 차례 고비를 넘겼다. 채권단의 금융 채권의 행사가 오는 4월11일까지 유예되며 주채권은행이 연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1개월 연장이 가능하다. 산은은 빠른 시일 내에 3개월 간 이어질 태영건설의 자산·부채 실사를 담당할 회계법인 선정을 마무리하고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능력을 평가할 예정이다.이 과정에서 기업개선계획이 수립되면 오는 4월 2차 금융채권자협의회를 소집, 워크아웃 결의 절차에 나선다.
앞서 2013년 워크아웃을 실시한 쌍용건설은 실사 과정에서 PF관련 우발채무 1100억원 가량이 추가로 발견됐다. 경영정상화를 위해 필요한 돈이 더 늘어난 탓에 이를 감당하지 못한 쌍용건설은 결국 법정관리로 넘겨졌다. 산업은행은 지난 10일 "실사 과정에서 계열주와 태영그룹이 약속한 자구 계획 중에 단 하나라도 지켜지지 않거나, 대규모 추가 부실이 발견될 경우 워크아웃 절차를 중단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태영건설은 현재 PF 채무가 쌓인 20여곳 사업장 매각을 추진 중이지만 아직 매각이 완료된 곳은 거의 없다. 고금리에 공사비 인상까지 겹치며 건설업계가 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타 건설업체들 또한 사업성 분석 등에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영그룹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미착공 현장은 채권단 여러분이 동의해준다면 사업장 처리 문제를 확정할 수 있다"며 "한 달 이내에 미착공사업장에 대해서 사업을 진행할지, 중단할지, 중단하면 타 시공사에 양도할지, 완전 철수할지 등의 의사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에 위치한 '데시앙'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임금체불로 공정이 중단되며 태영건설의 시름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지난 15일 지급됐어야 할 임금이 들어오지 않자 200여명 중 50여명의 근로자가 작업을 멈췄고, 나머지 근로자들 또한 월급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출근을 거부했다. 태영건설은 해당 현장 인건비가 이달 말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 형태로 지급될 예정이라는 입장이다.
업계에선 태영 사태를 단순히 한 건설업체의 수주 욕심을 빚어진 해프닝으로 봐선 안 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각에서는 지금의 위기를 호황기에 과도하게 높아진 부채비율 등으로 인한 국지적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PF 규모가 과거에 비해 월등히 크고 차주와 대주 모두 외부적 충격에 취약해져 있다는 점을 고려해 건설산업과 금융산업 모두가 직면한 중요한 위기로 여겨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