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현지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행정부는 현재 제재 완화를 놓고 고위급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고위급 대화는 마두로 행정부가 내년 치러지는 베네수엘라 대선의 공정성을 보장할 경우 미국이 대 베네수엘라 제재를 대폭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제재 완화를 위한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베네수엘라 측에서는 국회의장이 직접 논의에 참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미국은 마두로 대통령을 공식 행정부 수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은 지난 2018년 베네수엘라 대선을 부정선거로 규정하며 마두로 대통령의 연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행정부는 마두로 행정부에 대규모 제재를 가하며 후안 과이도 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했다.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과이도 임시 대통령' 체제는 4년 동안 이어졌다. 이같이 '한 지붕 두 대통령 체제'는 과이도 임시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0일 퇴진하며 종료됐다. 과이도 임시 대통령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으나 군부와 국영석유회사 PDVSA를 손에 넣은 마두로 행정부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했다. 또 과이도 임시 대통령이 지휘하는 야권은 지난 2021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며 결속력을 잃었다.
이란 대신 베네수엘라 택한 바이든
결국 바이든 대통령은 이란 대신 베네수엘라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년반 임기 동안 양국(이란·베네수엘라)과 제재 해제 논의를 이어왔다. 이란과는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외교 작품인 이란핵합의(JCPOA) 복원을, 베네수엘라와는 PDVSA-셰브런(Chevron) 합작법인 운영을 논의해왔다.
특히 이란(세계 4위)과 베네수엘라(세계 1위)가 거대 산유국이라는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제재 해제·완화를 고심해왔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11월 셰브런의 베네수엘라산 원유 생산 재개를 일시적으로 허가했다. 당시 미국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셰브런 측에 6개월 사업권을 부여했다.
당초 바이든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대신 이란 제재 완화를 검토했다. 과거 부통령 시절 JCPOA를 체결하는 등 대이란 외교에서 성과를 봤기 때문이다. 이란과 달리 베네수엘라 원유가 대부분 중유라는 점도 미국 입장에선 부담으로 작용했다. 초경질유(콘덴세이트)인 이란산 원유는 국제시장에서 베네수엘라산 중유보다 인기가 높다. 미국과 이란이 지난해 8월 JCPOA 복원안에 합의한 이유다.
이란과 베네수엘라의 운명을 가른 건 다름 아닌 양국의 내부 상황이다. 지난해부터 히잡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는 이란과 달리 베네수엘라의 국내 상황은 비교적 안정적이다. 베네수엘라 대다수 국민이 자국 화폐 대신 미국 달러를 사용함으로써 인플레이션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제재 완화는 국제 유가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이 75만배럴에 불과하다는 관측과 달리 300만배럴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일일 원유 생산량인 900만배럴의 3분의1에 해당하는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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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소토 베네수엘라 승계 국회의원은 지난해 4월 머니S와 인터뷰를 통해 "가혹한 제재 속에서도 일일 원유 생산능력을 300만배럴 혹은 그 이상으로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며 "미국의 불법적인 제재에 맞서 러시아 등 이웃 국가들과 협력하며 석유 생산능력을 유지한 덕분"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