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은 ELS를 수년간 판매한 은행과 증권사를 대상으로 불완전 판매 여부 조사에 들어갔다. 2019년 해외 금리 파생결합펀드(DLF)의 불완전 판매로 홍역을 치뤘던 금융권이 또 한번 고위험 파생상품 판매로 분쟁에 휩쌓일지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하는 홍콩H지수 ELS는 8조4000억원으로 40%에 해당하는 3조원이 손실구간에 들어갔다.
홍콩H지수는 지수형 ELS 발행에 있어 S&P 500, 유로스탁스에 이어 3번째로 많이 활용되는 지수로 홍콩 증시에 상장된 기업 중 50개의 대표 종목을 골라 산출한다.
ELS는 기초 자산으로 삼은 지수 등을 연계해 수익 구조를 결정하는 파생상품이다. 손실 발생의 기준점이 되는 '원금손실발생구간'(녹인 구간·통상 가입 당시 가격의 50%) 밑으로 떨어지면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내년 상반기에는 2021년 홍콩H지수가 고점을 찍었을 때 가입했던 ELS 가운데 8조4000억원이 만기를 맞는다. 주가연계펀드(ELF)와 주가연계신탁(ELT)이 포함된 금액으로 대규모 손실이 예상된다.
중국 경제 추락에 홍콩H 지수 반토막… "투자위험 고지" 쟁점
ELS는 전문가들도 구조를 이해하기 어렵고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고위험 상품이다. 원금까지 잃을 수 있는 녹인 구간은 통상 기준가의 45~50%로 설정돼 주가나 지수가 반 토막 나지 않는 이상 원금 손실 가능성도 높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녹인(Knock-in)'형 상품은 만기 시점에서 최종 상환 기준선(70%) 수준까지는 회복돼야 원금 손실을 피할 수 있고, '노 녹인(No knock-in)'형 상품은 65% 이상이어야 원금을 손에 쥘 수 있다.
내년 상반기 홍콩 H지수가 3년 전의 65~70% 수준은 돼야 원금손실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지수가 2021년 2월 대비 절반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지금보다 주가가 30%는 올라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주가가 50% 이상 하락해 원금 손실 구간에 한 번이라도 진입한다면 통상 3년으로 설정된 만기까지 투자금이 묶일 수 있고 만기가 돼서도 원금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홍콩H 지수의 전망도 어둡다. 증권사들은 홍콩H 지수의 밴드 전망 상향선을 7800으로 잡고 있다. 삼성증권은 지난달 홍콩H지수 향후 6개월 밴드를 5500~7500선으로 제시했다. 하나증권은 홍콩H지수 내년 예상 밴드를 5960~7850선으로 잡았다.
투자자들은 원금 손실 상품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투자해 막대한 손실을 떠안았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판매사들이 ELS에 대해 잘 모르는 고령층을 상대로 홍콩H지수 연계 ELS를 판매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은 금융투자업자가 일반 투자자에게 투자를 권유할 때 지켜야 하는 6가지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설명의무 ▲적합성 ▲적정성 ▲불공정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행위 금지 ▲허위·과장광고 금지 등이 있다. '불완전판매'에 해당해 금융회사는 당국 제재를 받고 투자자 민원에 따른 분쟁조정이나 이후 법정 소송에서도 불리하다.
가장 높은 빈도로 문제가 되는 게 설명 의무다. ELS는 상품 구조가 복잡해 어떤 경우에 어디까지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판매사 프라이빗뱅커(PB)가 제대로 설명했는지가 더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홍콩H지수 연계 ELS를 판매한 은행과 증권사들이 투자자들에게 손실 가능성을 충분히 고지했는지 집중적으로 점검할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회사가 ELS 상품 선정을 어떻게 했는지, 상품을 판매하는 직원들에게 어떻게 교육했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전날 금융위·금융감독원·은행장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금융감독원의 불완전판매 조사 결과에 따라 제도적으로 보완할 게 있는지, 소비자보호 관점에서 할 게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