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타임스=인도/아시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가 건설되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기록된 지 25년여가 지난 가운데 최근 부동산 수요에 대한 의구심이 나오는데도 계속 새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있다고 블룸버그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세계에서 가장 초고층 빌딩이 많은 도시 중 하나인 쿠알라룸푸르에는 최근 678.9m인 ‘메르데카118’이 추가됐다. 이 건물은 긴 첨탑 덕분에 상하이 타워를 제치고 두바이 부르즈 칼리파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건물이 됐다.
최근 인구 약 2백만명이 사는 이 도시에서 사무실과 주택이 비어 가고 있어 고층 빌딩 수요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지만, 투자자들이 수익을 추구하고 개발자와 정치 지도자들이 고층 건물로 국력을 과시하려는 경향이 여전해, 이같은 건설 사업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한편 지난달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는 저렴한 주택과 작은 식당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달라며 “이미 많은 고층 빌딩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더 이상 고층 빌딩 건설을 우선순위로 삼지 않겠다는 것이다.
1980년대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총리가 급속한 경제 성장을 추진하고 서구를 능가하는 대규모 인프라 건설에 나서면서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건설 계획이 수립됐다1996년 이 건물이 완공됐을 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미국이 아닌 나라에 생긴 것은 1백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쿠알라룸푸르 싱크탱크인 시장교육센터의 CEO 카멜로 페를리토는 메르데카 118이 민족주의적 상징성을 지닌다고 짚었다. 그는 “삼각형 유리 평면과 160m 첨탑으로 이뤄진 좁은 타워 디자인은 1957년 말레이시아 초대 총리가 영국 통치 종식을 알리며 오른팔을 들어 ‘메르데카(독립)’라고 외친 연설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쿠알라룸푸르의 빌딩 붐을 우려의 눈으로 바라본다. 1850년대 광산 도시로 만들어진 이 곳은 독립 당시 열대 우림에 둘러싸인 채 개별 부지에 방갈로들이 모여 있었다. 최근 수십년 간 이 지역 대부분이 개발업자에게 팔리며 고층 빌딩과 쇼핑몰들이 거대한 고속도로로 연결된 파편화된 도시가 됐다.
쿠알라룸푸르의 인구가 늘면서 부동산을 부의 저장 수단으로 선호하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의 주택 수요가 급증했다고 부동산 데이터 회사 ‘어반메트리’ 설립자 차라이 코가 말했다. 수십년간 가격도 상승했기에 이런 생각은 굳어졌고, 여러 채를 구입하는 사람도 많았다.
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말레이시아의 주택 5채 중 1채가 빈 상태였다. 최근 몇 년 집값이 정체되자 아파트를 팔지 못한 사람들이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있지만, 새 건물은 계속 건설되고 있다.
페를리토 CEO는 부동산 수익 하락에도 건설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 “내게도 이 현상은 미스터리”라고 말했다. 부동산 컨설팅 회사인 ‘라힘 앤 코’의 부동산 중개업체 CEO인 시바 샨커는 현재 사무실 공간의 3분의 1이 비어 세입자가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페를리토는 공급 과잉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연계된 기업과 프로젝트들이 빌딩을 계속 건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10개 빌딩 중 절반 이상이 아직 건설 중이며, 그 중 일부는 정부와 연관이 있다.
분석가들은 대형 오피스 빌딩 대부분은 수년간의 경기 침체를 견딜 수 있는 기업과 펀드가 소유해 시장 붕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한다. 페를리토는 말레이시아가 중동을 모델로 삼는 경향이 있어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빌딩 건설이 권력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방법이 됐다”며 “내 것이 더 크다는 사고방식”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