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림페이퍼 안산공장에서 생산된 골판지 원지 완제품. 사진=태림페이퍼〉
코스피 상장 절차를 밟던 태림페이퍼가 상장을 철회한다. 글로벌 시장환경 악화와 고평가 논란에 결국 수요예측이라는 산을 넘지 못했다. 상장 후 배당성향 20% 계획 등 시장친화 전략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결국 기관투자자들의 투심을 얻는데 실패했다. 태림페이퍼는 향후 적절한 시기에 IPO를 다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태림페이퍼는 11일 상장철회신고서를 제출했다. 회사 측은 “보통주에 대한 공모를 진행해 최종 공모가 확정을 위한 수요예측을 실시하였으나 회사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려운 측면 등 제반 여건을 고려해 공동대표주관회사의 동의 하에 잔여 일정을 취소하고 철회신고서를 제출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태림페이퍼는 코스피 상장을 위해 1,540억~1,783억원의 공모를 추진했다. 공모주식 수는 총 810만4000주, 희망 공모가 밴드는 1만9000~2만2,000원이다. 지난 9~10일 공모가 확정을 위한 수요 예측을 진행하고, 이어 12~13일 청약을 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수요예측 과정에서 목표한 기관 물량을 채우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태림페이퍼는 골판지 원지 시장 점유율 1위로 업계 내 탄탄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회사다. 최근 골판지 원지시장은 공급자 우위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같은 우호적인 시장환경 아래 △업계 최다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점 △원지 전지종을 생산할 수 있는 역량 △시장의 니즈를 반영한 신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기술연구소를 업계에서 유일하게 확보하고 있는 점 △수직계열화를 통해 안정적인 판매채널을 확보한 점 △원지 및 패키징 생산 기지가 전국 주요거점에 위치해 있어 물류비용에서 유리한 점 △모그룹인 글로벌 세아그룹과의 시너지 등을 핵심경쟁력으로 제시했다.
여기에 회사는 시장 호황을 바탕으로 현금창출 능력도 입증했다. 지난해 영업이익 1172억원을 기록했는데, 영업이익률이 골판지 업계 최고 수준인 13.2%를 달성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태림페이퍼는 이번에 냉각된 투심과 마주했다. 여기에는 업계평균 대비 2배의 멀티플을 적용한 것에 대해 밸류에이션이 과도하다는 시장의 평가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태림페이퍼는 이번에 기업가치 및 공모가를 산정하기 위해 아세아제지, 대영포장, 삼보판지 3개사를 최종 비교기업으로 선정했으며 PER 11.10배와 할인율 11.65~23.69%의 할인율을 잡았다. 업계평균 멀티플(PER 5~6배 수준)의 2배 수준이 적용되면서 고평가 논란이 일어났다.
구주매출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태림페이퍼는 총 공모주식 수의 40%인 324만2000주를 구주 매출할 계획이었다. 이 지분은 최대주주인 세아상역이 내놓은 것이다. 대신 태림페이퍼 측은 상장 후 올해부터 향후 3년간 별도재무제표 기준 현금 배당성향 20% 이상을 유지할 것과 함께 대주주인 세아상역의 현금 배당금은 내부 유보해 성장 재원으로 사용한다는 내용의 주주 친화 정책을 확약했지만 판을 뒤집지는 못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더스탁에 “올해 상장을 한차례 이상 철회한 이력이 있는 현대엔지니어링, 대명에너지, SK쉴더스의 사례를 보더라도 최근 IPO시장이 구주매출에 다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수요예측 시점에 국내외 증시가 큰 폭 하락한 것과 더불어 원스토어와 공모일정이 완전히 겹친 점 등도 투심을 떨어뜨린 요인으로 제기됐다. 태림페이퍼와 원스토어의 수요예측 마지막 날인 10일에는 코스피 지수가 강력한 지지선으로 작용하던 2600선 아래로 내려 앉았다.
태림페이퍼는 추후 적절한 시기에 IPO를 재추진한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이번 IPO 과정에서 기관투자자로부터 업계 1위로서의 시장 영향력과, 친환경 주주정책 등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면서 “다만 최근 증시의 변동성과 불안전성이 큰 만큼 시기적으로 당사의 온전한 기업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는 시점에 상장 추진을 재 검토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