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100대 기업의 여성 임원이 처음으로 300명을 돌파했다. 글로벌 헤드헌팅 전문기업 유니코써치가 같은 조사를 시작한 2004년(13명)에 비하면 17년 만에 25배(322명)로 늘었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서 ‘여성 최초’ 타이틀은 아직도 새롭다. 이제는 옛말 같은 ‘유리천장’이 깨질 듯 깨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금융업계와 공공기관에서는 더 그렇다.
이미영 예금보험공사 상임이사(54·사진)는 이 두 장벽을 무너뜨리고 이달 19일 예보 창립 이후 26년 만에 첫 여성 상임임원 자리에 올랐다. 국내 금융 공공기관 8곳을 통틀어 봐도 한국자산관리공사(2012년)와 기업은행(2013년) 이후 처음이다. 27일 예보 본사에서 이 이사를 만났다. 소감을 묻자 “내부 승진이어서 직원들의 기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후배들을 위해 좀 더 좋은 직장을 만드는 데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이 이사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일상화했지만 고위직으로 올라가는 게 아직도 상당히 이례적인 일처럼 받아들여진다”며 “늘 도전정신을 갖고 언제든 기회가 왔을 때 적극적으로 뛰어들겠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실력이 90% 있어도 부족한 10%에 사로잡혀 고민하고 망설이는 경우가 많아요.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주려면 자기 자신부터 믿음과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가 걸어온 길은 도전에 정면으로 맞서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당시 미래산업이라던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서울대 전산통계학과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더 맞는 일을 찾아 국민은행에 취업했다. ‘컴퓨터 천재들’ 사이에서 범인(犯人)이 되고 싶지 않았던 그에게 정보기술(IT) 전문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금융사는 최적의 무대였다. 이후 설립을 준비 중이던 한국금융연구원에서 전산 인프라 구축을 총괄했고, 그 경력을 인정받아 1996년 예보 창립 당시 유일한 여성 멤버이자 IT 전문가로 합류했다. 당시 박종석 초대 사장은 “IT 부문에선 사장이라고 생각하고 일하라”며 그에게 전권을 줬다. 이 이사는 “5급 사원인데도 첫날부터 야근하며 부장급처럼 일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부를 계속해 경영학·재무학 석사학위를 따고 저축은행 구조조정, 인사 지원 등에서도 실력을 입증했다.
예보는 이제 전체 직원의 30% 이상이 여성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어려움은 있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이다.
“많은 여성 직원이 출산과 육아로 2~3년 일을 못하면 복직해도 직무감각을 찾는 데 1년은 걸려요. 스스로 위축되고, 결국 ‘여기까지만 하자’ ‘힘들게 살지 말자’ 하면서 자기 타협을 하죠. 의욕과 자신감을 잃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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