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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투기에 '엄격' 블록체인 기술엔 '관대'…정부가 먼저 "무엇을 도울까요"

입력: 2022- 10- 12- 오전 02:46
암호화폐 투기에 '엄격' 블록체인 기술엔 '관대'…정부가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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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블록체인 위크 2022'가 열린 7월 마리나베이샌즈 엑스포에서 업계 전문가들이 '심가포르 암호화폐 규제'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싱가포르=김정우 기자

암호화폐 급락세에 ‘크립토 겨울’이 시작됐다는 목소리가 커지던 올 7월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엑스포에 마련된 블록체인 행사장은 북적이는 사람들로 열기가 가득했다. 기업 부스를 둘러싸고 대화를 나누는 싱가포르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들의 표정은 ‘봄’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다음이었다. 블록체인 기업인들은 차례로 중앙 연단에 올라 장밋빛 비전을 제시하며 약속이라도 한 듯 싱가포르통화청(MAS)에 대한 감사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현지에 본·지사를 둔 기업인들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세운 MAS의 정책이 사업 운영에 큰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규제 혁신을 촉구하는 성토의 장이 되곤 하는 국내 행사장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정책적 뒷받침 속에 글로벌 블록체인 허브로 올라선 싱가포르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블록체인 기업에 전년보다 10배나 늘어난 약 1930억 원을 투자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체 투자액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암호화페 데이터 분석 업체 코인컵이 발표한 지난 2분기 암호화폐 친화 국가 순위에서 싱가포르는 3위에 올랐다. 같은 기간 한국의 순위는 29위에 머물렀다.

인구 570만 명에 불과한 도시 국가 싱가포르가 암호화폐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던 원동력은 정부의 효율적인 암호화폐 정책에 있다. 싱가포르 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나누는 이분법적 접근이다. MAS는 엄격한 암호화폐 투자자 보호 조치를 취하면서 블록체인 기술은 앞장서 장려했다. 블록체인에 친화적인 정부의 태도는 전 세계 기업이 싱가포르에 몰려들게 했고 이렇게 모인 인적·물적 자원이 다시 기업을 불러 모으는 선순환이 형성됐다. 블록체인 사업을 전개하는 국내 유명 기업들도 이미 싱가포르에 터를 잡았다. 플레이투언(P2E·돈버는 게임) 사업에 뛰어든 국내 대형 게임사 컴투스와 카카오게임즈 (KQ:293490) 등을 비롯해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두나무)와 빗썸 등도 싱가포르 법인을 설립했다. 카카오의 블록체인 자회사 크러스트는 아예 본사를 싱가포르에 두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싱가포르행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국내에서 암호화폐공개(ICO)와 증권형토큰공개(STO) 등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투자자 보호를 이유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사이 블록체인 시장 선점에 나선 기업들은 제도적 자유가 보장된 싱가포르로 발을 돌렸다.

한국은 안 되지만 싱가포르는 되는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네거티브 규제’다. 싱가포르는 블록체인과 같은 신기술을 대할 때 원칙적으로 허용하면서 금지 사항을 열거하는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한다. 블록체인 산업을 바라보며 주도권 선점이 중요하다고 판단하면 일단 허용한 뒤 문제가 생길 때 해결하는 방식이다. 좁은 영토와 적은 인구에도 전 세계 금융 허브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 블록체인에서도 통한 것이다. 정부가 신산업을 적극 수용한다는 일관된 메시지 속에 기업들은 정책을 예측할 수 있고 과감하게 새로운 시도에 나선다. 서상민 크러스트 최고 클레이튼책임자(CKO)는 “일단 허용에 무게를 둔 싱가포르 당국은 기업과 미팅할 때마다 ‘(정부가) 무엇을 도와줄까’라고 묻는다”며 “우리도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해 빠르게 변하는 블록체인 기술에 발맞춰 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법을 먼저 만들고 산업을 육성하려다 보면 다른 나라에 선수를 뺏긴다”고 지적했다.

규제 샌드박스를 신기술을 공부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당국의 자세도 본받을 만하다. 싱가포르 증권형토큰 거래 플랫폼 ADDX의 황인무 최고운영책임자(COO)는 “2019년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시장에 빠르게 진입했는데 MAS 직원들이 수시로 사업자와 소통하며 기술을 배우고 올바른 방향의 제도 정착을 위해 애썼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싱가포르가 ‘암호화폐 무법 지대’는 아니다. 오히려 암호화폐 거래에는 매우 엄격한 규제를 두고 있으며 올해 들어 더 강화하는 모양새다. 1월 MAS는 일반 대중 대상 암호화폐 광고를 금지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싱가포르 공공장소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암호화폐를 홍보할 수 없다. 싱가포르 전역에 있는 암호화폐 자동입출금기(ATM)도 모두 폐쇄됐다. 싱가포르 비트코인(BTC) ATM 운영 기업인 ‘대너리스 앤 코’와 ‘더디’도 사업을 철수했다. MAS는 “블록체인 기술 개발과 암호화폐의 혁신적 적용 사례를 긍정적으로 보지만 암호화폐 거래는 매우 위험하며 일반 대중에게 적합하지 않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네거티브 규제에 기반한 블록체인 기술 장려와 강력한 투자자 보호 정책을 병행하는 싱가포르식 정책 성공 선례에 우리 정부도 주목하는 모습이다. 8월 싱가포르 국경절 행사에 참석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암호화폐 산업을 규제하면서 동시에 발전시키는 것은 보다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며 쉽지 않은 과제”라며 “싱가포르의 접근 방식은 금융위가 본받을 만한 사례”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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