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저자의 개인 견해로 로이터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서울, 9월23일 (로이터) 임승규 기자 - 2016년 미국 대선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이름이 언론 지면의 헤드라인에 나오지 않은 날을 꼽기가 어렵다. 그만큼 많은 이슈가 트럼프 대통령을 쫓아다니고 있는 데다 그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이슈도 적지 않다.
바쁜 시간을 쪼개 각종 현안을 챙겨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들어 빼놓지 않고 트위터에 올리는 게 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에 대한 비판이다. 지난 7월 연준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 기준금리를 인하한 후에도 30여 차례나 연준과 파월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에도 자신의 할 일을 잊지 않았다.
이날 파월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경제가 하강하면, 더 폭넓은 연속적인 금리 인하가 적절할 것"이라면서도 "지금 그것(경기 하강)을 보는 것도 아니고 연준이 그걸 예상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장에선 경기가 나빠질 경우에 연준이 조건부로 금리를 더 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열어뒀지만 당분간 섣불리 움직이지 않겠다는 시그널로 해석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발끈한 것이다. 그는 파월 의장을 "배짱도, 센스도, 비전도 없다"라며 깎아내렸다.
▲결자해지 연준, 결국 양적완화 재개로 나아가나
시장에선 파월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언어폭력'에 맞서 나름의 기개를 보여주는 것 아니냐며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연준이 금리 인하를 거부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의 금리 인상을 비난했을 때 연준이 뚝심 있게 밀고 나갔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에서 파월 의장은 연준의 대차대조표 축소가 "자동운항 모드"로 지속될 것이며, 변화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매파로 평가된 이번 기자회견에서 파월 의장은 "예상보다 빨리 연준이 대차대조표 확대를 재개하는 게 필요할 수 있다"라고 발언했다. 시계를 조금 넓혀 보면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연준의 통화정책이 수렴하고 있다는 판단할 수밖에 없다.
유로퍼시픽캐피탈(Euro Pacific Capital Inc)의 최고경영자(CEO)이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한 것으로 유명한 투자자 피터 쉬프(Peter Schiff)는 자신의 팟캐스트 방송에서 연준의 표면적인 강경 스탠스를 평가절하한다.
연준이 금리를 너무 많이 내리면 시장에선 '연준이 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경제가 나쁜 거냐'며 패닉을 일으키고 금리를 너무 적게 내리면 자산의 셀오프가 나타난다고 그는 지적한다. 연준은 그저 시장이 기대하는 것, 원하는 것을 그대로 할 뿐이고 이번 FOMC 회의 역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연준의 레포 시장 개입의 의미가 절대 작지 않다고 지적한다. 연준이 단기자금 시장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도 한다.
레포 금리는 현재 미국 투자자들의 최대 관심사다. 미국 레포 금리는 지난 17일(현지시각) 10%까지 치솟았고 연준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시장 개입에 나서야 했다.
레포 시장의 자금 경색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확산의 도화선이 됐다는 것을 기억하는 시장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레포 금리가 10%까지 오를 때까지 연준이 무엇을 한 것인가'라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연준의 레포 시장 개입은 한 주 내내 이어졌다. 20일(현지시각)에는 유동성 공급 규모를 750억달러로 늘렸고 이와 별도로 최소 300억달러 규모의 14일물 대출 프로그램을 가동한다고 밝혔다.
피터 쉬프는 그것을 뭐라고 지칭하든 실질적으로 이는 양적완화 정책의 복귀와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수의 시장 분석가 판단도 그와 다르지 않다. 이번 사태는 연준의 대차대조표 축소와 이에 따른 은행권의 지준 감소가 불러온 구조적 혼란이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준 양적완화 수준의 유동성 공급 또는 양적완화 자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연준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영향으로 은행권이 연준에 예치한 지준 규모는 2조9000억달러에서 지난 8월 1조4000억달러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여전히 1조4000억달러면 많은 것 아니냐는 반론도 나온다. 지난 주말 존 윌리엄스 뉴욕 연준 의장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 은행의 도덕적 해이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 금융기관의 달라진 포트폴리오를 감안하면 1조4000억달러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준의 초과지준의 경우 스트레스 테스트를 할 때 헤어컷 적용을 받지 않는 고유동성 자산이라 금융기관의 수요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의 자금 수요는 큰데 연준이 공급을 계속 줄여오다가 이번에 터졌다는 분석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실상의 상시 유동성 공급이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네 번째 양적완화가 불가피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달러 불패 신화 이어질까..'대안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원대로, 시장의 분석대로 미국이 양적완화 정책을 재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시 한번 주식과 채권의 랠리가 펼쳐질까? 트럼프 대통령과 파월 의장은 환하게 웃으며 화해하게 될까?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달러의 가치에 대한 의문부호는 이전보다 커질 것이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여력이 이전보다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양적완화 정책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달러의 가치는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동안 '달러 불패' 신화를 만들었던 전제는 그대로다. 달러가 아니면 대안이 없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시장이 불안해지면 불안해질수록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 텐데, 달러만큼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자산은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가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외국인들이 가진 미국 국채의 가치를 떨어트리지 않으리라는 투자자들의 믿음이 살아 있다면 달러에 대한 수요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파월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맞서는 모습은 어느 정도 달러의 지배력을 연장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암호화폐, 대안 될까..리브라 등 새로운 시도 주목
하지만 최근 들어 달러의 대안을 찾으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이 뜨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비트코인 역시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다. 다만 비트코인의 경우 하루에 20%씩 등락하는 자산이 과연 달러나 금을 대체할 수 있느냐의 문제, 초당 거래 처리 속도가 7건에 불과해 실제 현실에서 제대로 사용될 수 있겠느냐의 문제가 걸린다.
2020년 하반기에 출시될 리브라는 비트코인의 약점을 메울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리브라는 27억명이 사용하는 페이스북 플랫폼에서 이용자들이 물건을 구매하거나 돈을 보낼 수 있는 암호화폐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수수료 부담 없이 송금과 결제가 가능하고 광범위한 사용자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는 만큼 리브라는 현재 화폐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 만큼의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중국도 현재의 달러 패권 체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위안화를 통한 달러화 대체가 당장은 어려워 보이는 상황에서 중국도 올해 11월 11일 자체 암호화폐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포브스지에 따르면 중국인민은행은 초기 단계에서 알리바바와 텐센트, 유니온페이, 그리고 중국 국영은행 네 곳 등 최소 7개 기관을 통해 암호화폐를 유통시킬 계획이다.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하의 중국은 암호화폐 개발과 발전을 위해 최적화된 사회 구조를 갖추고 있어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안화와 유로화가 보여준 취약성은 오히려 안전자산으로서 달러의 지위를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했다.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 핵 합의 탈퇴에 아무리 많은 국가가 반대해도 달러 결제 시스템에서의 배제 위협에 결국 기업들이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수면 위로 떠 오른 미국의 양적완화 재개 가능성 속에 달러의 미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달러의 앞날에 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는 것만 같지는 않다.
(편집 유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