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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정도성)는 특정경제점죄법상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델리오 대표이사 A(51)씨에 대한 두 번째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앞서 2월 델리오 대표와 같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하루인베스트 대표 B(44)씨 등 임원진 3명에 대한 1심 재판 역시 서울남부지법에서 진행 중이다. 연쇄 출금중단 사건은 지난해 첫 출범한 검찰의 가상자산 범죄 전담 조직 가상자산범죄 합동수사단의 1호 사건이다. 그러나 올 초 부터 이어진 1심 공판에서 두 업체 경영진 모두 예치금 '폰지 사기' 혐의를 전면 부인하하며 재판은 장기전으로 치닫고 있다.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FTX의 파산 여파로 투자 손실이 발생했을 뿐 고의적으로 투자자들을 기망한 적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사기 고의성을 입증해야만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는 채권자들은 애만 태우고 있는 상황이다. 델리오 채권자 A씨는 "FTX 파산 이후 지난해 1~2월 델리오 고객센터에 문의를 했을 당시엔 델리오가 이번 사태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아 안심했는데, 출금중단 이후엔 오히려 출금중단 사태 원인을 FTX 파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채권자들은 델리오가 예치 서비스 이용약관에서 원금 보장을 약속했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델리오 채권자협회가 제보한 자료에 따르면 델리오는 가상자산 예치 이용약관에서 ‘예치된 가상자산의 분실 및 손실이 발생할 경우 회사에서 전액 보상한다’고 안내한 것으로 확인된다. 반면 델리오는 예치 상품에 대한 원금 보장을 약속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에 따르면 델리오 피해자는 2800여명으로 2500억 원 가량의 피해액이 발생했다. 하루인베스트의 경우 피해자 1만 6000여명으로부터 발생한 피해액이 1조 4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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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외 법인이 엮인 하루인베스트의 경우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홈페이지를 닫은 이후 공식적인 소통 창구는 트위터 공식 계정뿐이지만 지난 2월 “피해 보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게시글을 마지막으로 변제 계획 등 후속 공지는 찾아볼 수 없다. 국내 법인이자 모회사인 블록크래프터스와 싱가포르·버진아일랜드 등에 위치한 해외 법인 가운데 회생·파산 당사자가 누군지조차 불분명하다. 채권단 측 변호인이 지난 4월 하루인베스트 회생 신청이 기각된 이후 파산 신청을 진행하겠다고 밝혔지만 법원 명령에 따라 재판 관련 사안은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출금 중단 사태 여파는 가상자산 업계도 강타했다. 가상자산 예치 관련 규제가 강화되며 국내에선 가상자산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방식의 사업을 더이상 영위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내달 시행될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은 가상자산 사업자에 이용자로부터 위탁받은 가상자산을 동종·동량으로 실질 보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권단 디케이엘파트너스 대표 변호사는 “이용자가 예치한 가상자산은 가상자산사업자가 실질적으로 보유해야 하고 80% 가치에 해당하는 가상자산은 인터넷과 분리된 콜드월렛에 보관할 의무가 생긴다”며 “실질 보유 의무가 있는 탓에 제3자에 고객 가상자산을 이전해 예치, 운용하는 형태의 서비스는 불법이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한때 호황이었던 국내 가상자산 예치·운용 산업은 고사했다. 하루인베스트·델리오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던 국내 업체들은 모두 관련 서비스를 중단하고 사업 모델을 전환했다. 헤이비트는 만보기 리워드 애플리케이션 ‘비트버니'를 출시했다. 업루트컴퍼니는 가상자산 적립식 구매 솔루션 ‘비트세이빙’는 운영 방식을 예치금을 직접 입금받는 방식에서 원화마켓 거래소와 서비스를 API 방식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샌드뱅크는 스매시파이 서비스를 해외 이용자 대상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들은 가상자산 예치·운용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거래소로 쏠린 국내 가상자산 생태계의 불균형을 강화한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장우 업루트컴퍼니 대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규제 취지는 이해하지만, 가상자산 예치·운용업 자체를 악한 것으로 보는 부정적인 시선은 문제다. 24시간 전세계에서 거래가 이뤄지는 가상자산 시장에서 국내 거래소만 이용할 수 있는 국내 투자자들은 손실을 보기 쉬운 구조"라며 “가상자산 예치·운용이라는 큰 시장이 아예 고사한 것은 산업 진흥 면에서 아쉽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