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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자가 방문한 서울 중구의 한 카페는 홍채 인식 기기인 ‘오브’ 앞에 줄 선 사람들로 북적였다. 비트코인과 함께 가격이 급등한 월드코인(WLD)을 받기 위해서다. 카페 한 켠의 대기자 명단은 방문객들의 이름으로 빼곡했고 일부는 대기 순번이 길어지자 포기하고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홍채 정보를 제공하면 월드코인 10개(약 90만 원)를 지급하는 이날의 행사는 장·노년 방문객이 많았다. B(73세) 씨는 “코인을 공짜로 준다는 입소문을 들었다. 우리 연령대는 시간 여유가 있어 관심을 더 갖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들은 민감한 생체 정보를 넘기는 데 대해 별다른 우려는 없어 보였다. 월드코인은 챗GPT 창시자인 샘 올트먼이 만들며 주목받은 가상자산이지만 생체 정보에 대한 관리·감독 규정이 미비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 때문에 스페인 데이터보호국(AEPD)은 이달 초부터 최대 3개월간 자국에서 월드코인을 금지했다. 미국에서는 월드코인을 발급받거나 거래할 수 없다. 우리나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홍채 등 생체 인증 정보를 수집해 미흡하게 관리한다는 신고가 잇따라 접수됐다”며 이달 4일 조사에 착수했다.
월드코인은 아직까지 피해 사례는 없지만 법과 제도의 부재로 가상자산 투자자가 피해를 입은 사례는 이미 숱하다. 예를 들어 최근 오르빗체인(ORC)과 갤럭시아(GXA), 썸씽(SSX) 등 주요 가상자산을 노린 해킹 공격이 연달아 발생하며 국내 투자자의 피해가 컸다. 가상자산 발행사 지갑 계정에서 해킹된 ‘장물’이 대량으로 시장에 풀리면서 시세가 급락한 것이다.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자율규제 기구인 디지털자산 거래소 공동협의체(DAXA)가 해킹된 가상자산을 원화 거래소에서 일제히 상장폐지하는 방식으로 사후 수습에 나서면서 매도 타이밍을 놓친 투자자들의 피해가 가중됐다.
이러한 피해는 가상자산 발행사가 보유한 물량을 제3의 보관 업자가 예탁하도록 하는 투자자 보호 체계가 있었다면 피할 수 있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7월 시행될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해킹 방지를 위한 가상자산사업자(VASP)의 의무 규정은 있지만 가상자산 발행사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가상자산 2단계 법안에서 가상자산공개(ICO)를 법제화해 발행사가 보유한 가상자산 물량을 외부 지갑 보관 업자에 예탁하도록 하거나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등 별도의 규제를 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로서는 가상자산 발행사의 외부 예탁도, 가상자산 전용 보험도 국내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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