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국기. 사진=연합뉴스
한국 내 이란 동결 자금 이체가 마무리되면서 이번 조치가 이란의 석유 수출 정상화와 국제유가 안정으로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모여지고 있다. 이란은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등의 보유량이 많은 에너지 부국이다. 한국과도 주요 파트너였으나 지금까지는 동결 자금 문제가 4년 3개월여 동안 양국 관계 걸림돌로 작용했다.
앞서 이란은 2018년 핵합의(JCPOA)를 탈퇴했다. 이에 2019년 5월 트럼프 당시 미국 행정부가 대(對)이란 제재를 시작했다. 제재에 국내 정유사가 지불할 대금 수조원이 부득이하게 국내 은행에 발이 묶인 바 있다.
16일 이란 관영 IRNA 통신에 따르면 이란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 12일(이하 현지시간) 한국에 동결된 이란 자금 전액인 약 70억달러(약 9조3240억원)가 전액 해제 됐다고 밝혔다. 해당 자금은 1차로 스위스 은행에서 원화를 유로화로 환전한다. 2차로 5~6주 후 카타르 내 이란 은행 6곳으로 이체될 예정이다.
이번 대금 전달로 에너지 부국 이란과 관계 회복이 기대된다. 이란의 2021년 기준 석유 매장량은 세계 3위다. 세계 전체 매장량의 12%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천연가스는 더 풍부하다. 이란은 세계 천연가스 확인매장량의 약 17%를 보유 중이다. 러시아에 이어 2위 규모다. 최근 세계 에너지 가격이 다시 상승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이란에서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 등을 수입할 수 있다면 국내 에너지 가격 안정화에 큰 도움이 예상된다.
국제유가 상승 대항마, 이란산 원유
8월 들어 국제유가는 일제히 상승세다. 두바이유는 90달러를 목전에 두고 있고, 브렌트유‧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배럴당 83~86달러를 유지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9월까지 일일 생산량을 100만배럴 감축하기로 했다. 러시아도 내달까지 일일 수출 물량을 30만배럴 줄일 것이라고 밝힌 영향이다. 세계 경기침체 우려에도 생산 물량 감축, 글로벌 재고 하락, 계절수요 등 다양한 이유가 국제유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란산 원유는 생산량 측면에서 국제유가 하방 압력 요인이다. 증권가에 따르면 이란의 원유 생산여력은 일일 400만배럴로 실제 생산량은 300만배럴로 예상된다. 현재 수출량은 일일 100만배럴 이상으로 2017~2019년 최대 수출량이 240만배럴임을 감안하면 이란의 추가적인 원유 수출 여력은 100만~140만배럴로 추산된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감산분인 100만배럴과 유사한 규모다. 이란산 원유 국제무대 복귀 자체가 국제유가 상방 압력 요인 상쇄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가격 부담도 적다. 이란산 원유 및 초경질유(컨덴세이트)는 세계 원유 중 가장 질이 좋지만 가격은 저렴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컨덴세이트는 일반원유보다 석유화학 기초 원료인 납사를 최대 80%가량 더 생산 가능하다. 국내 석유화학사 입장에서도 원가경쟁력을 높이고, 국내 납사 가격 안정화를 이끄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세수 확보 측면에서도 이익이다. 정부는 코로나19 이후 서민 부담 우려에 경유 등 유류세 인하 연장(휘발유 25%‧경유 37%)을 지속 중이나 세수가 줄어 문제가 제기됐다. 상반기 국세수입이 전년동기 대비 39조7000억원 덜 걷혔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국제유가가 안정세를 찾으면 정부가 8월말로 유류세 인하를 종료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저렴한 이란산 원유 도입이 확정된다면 정부도 걱정 없이 유류세 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국내 정유사들의 원유구매 선택지도 넓어진다. 우리나라는 두바이유 중심으로 석유를 수입하고 있다. 이를 다각화 하면 가격협상력이 생겨 가격경쟁력 개선 효과가 기대된다. 실제 2017년 이란 경제 제재 이전 국내에서 이란산 원유도입 비율이 12~13%에 달했다.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한국은 이란 컨덴세이트 최대수입국이었으나 미국의 제재로 현재 컨덴세이트를 카타르‧호주‧러시아 등으로부터 수입 중”이라며 “이란산 컨덴세이트 수입이 재개될 경우 정유업체는 판매가격 안정화, 원가경쟁력 부각을 자연스럽게 국내 납사 가격안정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사진=하나증권
국제 LNG 가격 하락 유인책
천연가스 가격도 최근 폭등 추세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 천연가스 선물거래 가격이 지난 9일(현지시간) MMBtu(백만BTU)당 2.96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이는 3개월래 최고수준이다. 9달러대였던 1년 전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지만 겨울이 다가오는 만큼 가격 안정을 장담하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호주 공급차질도 문제다. 최근 호주 LNG 플랜트 노동자들이 임금인상과 직업안정성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에 LNG 가격이 폭등했다. 더 큰 문제는 호주산 LNG가 거의 한국‧일본‧중국 등 아시아 국가로 공급된다는 데 있다. 유럽은 가격 인상에서 끝나지만 국내 시장은 실제 공급부족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란 LNG 공급 확대는 무조건 국내 경제에 이익이다. 한국가스공사의 단기계약 물량 자체를 줄이고, 낮은 가격에 단기물량의 가격협상력을 높일 수 있어서다. 현행 국내 LNG 도입은 한국가스공사가 약 80%, 직도입 민간발전사가 약 20%를 담당한다. 이때 가격이 높아지면 민간발전사는 의무 구매물량을 제외한 LNG를 한국가스공사에서 구입한다.
민간발전사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국내 LNG 가격은 국가 규제로 일정수준 이상의 연료비가 발생하면 적자가 불가피해서다. 한국가스공사는 도시가스의 원활한 공급이라는 수급 책임이 있어 비싸다고 구매 물량을 줄일 수 없다. 민간 손실 보전을 위해 오히려 가격이 비쌀 때 단기 물량을 늘릴 수밖에 없는 난점이 있다. 그러나 이란산 LNG로 국제 가격이 하락하면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할 수 있다.
한편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4월 ‘2022년 무역수지 주요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지난해 사상최대 무역 적자가 에너지 등 수입단가 상승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석탄‧석유‧가스 3대에너지 합계로는 2021년도 대비 2022년도에 수입량이 67.5%(785억달러) 증가했다. 이 중 석유가 전년 대비 33.5%(390억불) 증가해 가장 증가율이 컸다. 두번째가 22.3%인 가스로 259억달러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란의 원유 수출 정상화 시점 아직은 미정
문제는 미국의 대 이란 제재가 아직 곳곳에 남아 있고 이에따라 이란의 석유 수출 정상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데 있다.
물론 이번에 한국 내 이란 동결 자금이 모두 해제된 것은 미국이 이런 제재를 하나 둘씩 풀겠다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관련 제재가 모두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원유 수출 정상화는 여기서 또 다른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란이 미국의 제재 이전 수준으로 원유 수출을 정상화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국제유가는 당연히 하방 압력을 받을 것이고 이에따라 국내 에너지 가격도 상승 압력이 줄어들 것이다.
조장은 대한석유협회 대외협력실 팀장은 "이란산 원유는 나프타 함량이 많은 고품질 제품으로 활용도가 높지만 이란의 정치적 리스크 때문에 타 유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며 "지금으로서는 언제 다시 국내에 들여올 수 있을지 시점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란의 원유 수출이 미국의 제재 이전으로 정상화된다면 국내 도입가격 뿐 아니라 국제유가 전반이 하방압력을 받게 될 것이지만 이번 한국의 이란 자금 동결 해제만으로 이란산 석유가 국내에 조만간 도입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