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과 ARM의 협업이 파운드리 업계 2위인 삼성전자에 단기적으로 위협적이지 않다는 전문가 의견이 나왔다. 최근 인텔과 ARM이 협업에 나서면서 파운드리 역량 강화를 위한 인텔의 적극적인 행보가 삼성전자에게 위협적일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코노믹리뷰가 취재한 전문가들은 “당장은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에 무게를 실었다.
삼성전자 (KS:005930) 따라잡기에 진심인 인텔
지난 13일(현지시간) 인텔 (NASDAQ:INTC) 파운드리 서비스(IFS)는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ARM과 협업해 18옹스트롬(1.8나노미터) 공정으로 차세대 모바일 시스템온칩(SoC)을 생산한다고 밝혔다. 추가로 인텔은 향후 ARM과 협력 접점을 모바일 반도체부터 시작해 자동차·데이터센터·항공우주산업용 반도체까지 확장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번 협업에 대해 팻 겔싱어 인텔 CEO는 “컴퓨팅 성능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설계 기업들이 제품으로 구현할 수 있는 첨단 반도체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다”라면서 “이번 협업으로 우리는 시장의 기회를 확대하고 업계 최고 수준 개방형 공정을 사용하고자 하는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독자적 반도체 설계를 추구해 온 인텔의 행보와는 대조적이라는 점에서 이번 협업은 파운드리 역량 강화에 대한 인텔의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이었다.
팻 겔싱어 인텔 CEO. 사진= 인텔
2021년 파운드리 재진출을 선언한 인텔은 글로벌 파운드리 업계 2위 기업인 삼성전자를 따라잡는 것을 사업의 1차 목표로 강조하고 있다. 인텔은 미국 애리조나주, 오하이오주에 각각 200억달러(약 26조원) 그리고 10년간 유럽에 800억유로(약 110조원)를 투자해 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에 대해 랜디르 타쿠르(Randhir Thakur)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 사장은 지난해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우리 목표는 2030년까지 세계 2위 파운드리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라면서 “파운드리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 파운드리는 위협적인가
주력 제품인 CPU를 포함해 다양한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 인텔과 모바일 반도체 설계 분야 독보적 선두인 ARM의 협업은 삼성전자에는 분명 ‘신경쓰이는’ 경쟁 상대의 등장이다. 그러나 다수 전문가들은 파운드리 영역에서 인텔이 단기간에 삼성전자의 역량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고 전망하고 있다.
우선 현재 글로벌 파운드리 업계에서 인텔의 존재감은 거의 없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조사한 2022년 4분기 기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에서 TSMC는 58.5%, 삼성전자는 15.8%, UMC와 글로벌 파운드리는 각각 6.3%, 6.2%를 차지했다. 인텔의 점유율은 아직 집계가 가능한 수준에도 이르지 못했다.
현재 인텔의 새로운 파운드리 인프라는 건립 중이거나 건립될 예정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는 인프라 구축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며, 인프라를 구축했다 하더라도 세계 대형 고객사의 첨단 반도체 생산 발주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의 요건을 갖추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무엇보다 인텔 파운드리 공정이 생산한 차세대 반도체가 상업적으로 가치가 있는 수율(생산 공정에서의 정상 제품 비중)을 단기간에 맞출 수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지난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개최된 2022 삼성 파운드리 포럼. 사진= 삼성전자
무엇보다 이 기간 동안 삼성전자가 새로운 도전자의 성장을 보고만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파운드리 업계 1위인 대만 TSMC와 격차를 줄이기 위해 삼성전자는 매년 수십 조원을 투자하고 있다. 아울러 삼성전자는 최근 정부 주도의 국가첨단산업벨트 조성계획에 따라 향후 20년 동안 300조원을 시스템반도체 시설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일련의 계획에는 시설의 확장과 함께 전문 기술인력 육성 등 장기적 관점에서 반도체 산업 근간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강성철 선임연구위원은 “파운드리에서 삼성전자를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표방하는 인텔이 ARM과 연합한 것은 분명 큰 의미가 있는 변화이며 삼성전자도 두 기업의 협력이 도출하는 여러 가지 성과를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파운드리 업력에서 인텔과 삼성전자의 현격한 격차는 삼성전자에서 대규모 투자가 지속되는 한 단기간에 역전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강조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인텔이 목표로 하는 삼성전자의 세계 2위 파운드리 점유율은 ‘규모의 경제(기업이 제품 생산량을 늘림에 따라 단위당 생산 비용이 하락하는 현상)’ 측면에서도 엄청난 격차가 있기 때문에 이를 단기간에 따라잡는 것은 어렵다”면서 “파운드리 경쟁력이 수율에서 결정되는 만큼, 삼성전자가 지속적인 투자와 더불어 파운드리 수율을 안정 궤도에 올려두는 것에 집중해 도전자의 성장에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