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견기업 A사가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채 발행을 추진했다. 이 회사는 기술력을 갖고 있지만 대기업이 아니란 이유로 은행권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자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발행을 주관하려던 대형 증권사 B사도 A사의 회사채가 투자 매력이 높다고 보고 자체 인수를 검토했다. 그런데 만기 3개월 이상 회사채를 보유하면 증권사 건전성 기준인 순자본비율(NCR)을 떨어뜨린다는 부담 탓에 결국 인수를 포기해야 했다.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증권사가 자기자본을 투입, 적극적 투자에 나서는 투자은행(IB) 사업을 확장하면서 NCR 부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NCR은 영업에 필요한 자본에서 위험액을 뺀 뒤 업무 단위별로 필요한 자기자본을 각각 나눠 산출하고 있다. NCR이 높을수록 재무 상태가 양호하다는 의미이며 모든 증권사는 100% 이상 유지해야 한다.증권사가 투자를 확대하면 위험액도 커지므로 NCR 하락 요소로 작용한다. 문제는 위험액을 산정하는 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데 있다. 앞서 예처럼 사모사채(49인 이하 투자자를 대상으로 발행한 사모방식 회사채)도 언제든 매매할 수 있는 유가증권이지만, 대출채권처럼 전액을 영업용순자본에서 차감하는 경우다.사모사채가 만기 3개월을 넘으면 3개월이 지난 대출채권처럼 현금화하기 곤란한 자산으로 인식한다는 의미다. 반면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사모사채를 영업용순자본에서 차감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증권사가 사모사채를 적극 인수하지 못하면 '작지만 강한' 견실한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도 순탄치 않을 수 있다. 실제 신용등급 'A' 이상 사모사채 발행은 2016년 4조 9,000억원에서 2018년 8조 5,000억원으로 증가했으나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BBB'등급은 같은 기간 7,000억원에서 6,500억원으로 감소했다. 최근 일본의 무역보복에 따른 부품·소재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 필요성이 커지고 있어 증권사 사모사채 투자에 대한 NCR 개선 당위성도 얻고 있다.증권업계는 매각 제한이 없는 사모사채는 잔존만기 3개월을 넘어도 영업용순자본 차감에서 제외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은 지분 투자를 받으면 대주주 지분이 급격히 희석되기 때문에 사모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대부분"이라며 "특히 발행어음 사업이 가능한 대형 증권사의 주요 투자처가 사모사채이기 때문에 향후 투자 여력을 늘려주기 위해서라도 개선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사모투자펀드(PEF)나 신기술조합과 같은 펀드를 운용하는 무한책임사원(GP)에 대한 NCR 규정도 불합리한 사례로 꼽힌다.현행 기준은 증권사가 PEF나 운용을 담당하는 GP를 맡으면 PEF의 전체 자산과 부채를 연결재무제표로 포함하면서 위험액 전부를 반영토록 한다. 보통 GP의 경우 PEF에 약 5~10% 지분 투자를 하고 있다. PEF 지분의 5%만 투자했음에도 위험액을 PEF 전체 자산 100%를 반영해야 하는 탓에 NCR 급락을 초래한다는 불만이다.따라서 증권사가 GP로 참여한 PEF와 신기술조합의 NCR을 계산할 때 출자지분만큼만 위험액을 반영하도록 개선을 요구했다. 자본력이 큰 대형 증권사일수록 최근 NCR 하락폭이 큰 이유기도 하다. 올 1분기(3월 말) 전체 증권사 평균 NCR이 509.9%로 지난해 1분기 505.8%보다 소폭 상승했지만 5대 대형 증권사는 같은 기간 하락했다. 지난해 1분기 대비 올 1분기 NCR을 비교하면 미래에셋대우가 같은 기간 2717.8%→ 1781.6%, NH투자증권이 1712.7%→ 1290.6%, KB증권이 1594.1%→ 1165.6%, 한국투자증권이 1035.9%→ 803.5%로 각각 떨어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가 자본력이 커지면서 투자처가 예전보다 훨씬 다양해지고 규모도 확대되고 있다"며 "NCR 하락 부담 때문에 투자를 포기하거나 셀다운(재매각)에만 지나친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부작용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