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전 시민들이 28일 ‘인재공원’에서 기업인들의 업적을 기리는 나무기둥을 둘러보고 있다. /노경목 특파원
중국 경제성장의 상징인 선전시. 올해 개혁·개방 40년을 맞아 홍콩의 경제 규모를 추월해 주목받았다. 연초 선전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2조2438억위안(약 380조원)으로 홍콩(2조6626억홍콩달러·약 364조원)을 앞질렀다.
선전시는 그 같은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잊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지역경제 발전에 공헌한 인물 56명을 기리는 ‘인재공원’(총면적 77만㎡)을 개장해 운영하고 있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56명의 인재 중 14명이 기업인이거나 기업 소속 연구자라는 점이다.
◆“별빛처럼 빛나는…”
28일 인재공원을 찾아보니 해변에 조그마한 만(灣) 모양으로 조성돼 있다. 좁은 해협 너머 홍콩이 선명하게 보였다. 개혁·개방 전까지 많은 중국 젊은이가 홍콩의 야경을 동경하며 헤엄쳐 건넜고, 그러다 빠져 죽기도 했던 곳이다.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한 노인의 커다란 황금빛 얼굴상이 시야에 들어왔다. 엷은 미소를 지으며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2016년 별세(99세)한 위안겅 전 자오상그룹 회장의 얼굴상이다.
그는 개혁·개방의 구체적 모습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1979년 선전 남쪽지역 서커우의 개발을 맡아 ‘선전의 기적’을 일궜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자산 1억위안을 밑돌던 자오상그룹은 선전 개발을 주도한 데 힘입어 그가 회사를 떠나던 1992년 200배 이상 성장했다.
이 그룹은 중국 최초로 직원 공채를 실시하고 “시간은 곧 돈이고, 효율은 곧 생명”이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기업을 중심으로 한 폭발적인 경제성장의 모범 사례를 제시했다. 위 전 회장은 은퇴 후에도 여생을 선전의 바닷가 아파트에서 보내면서 조각상처럼 바다 너머를 바라봤다고 한다.
위 전 회장 얼굴상의 눈길이 미치는 끝에는 만의 양쪽을 연결하는 다리가 놓여 있다. 이름은 ‘인재성광교(人材星光橋)’. 말 그대로 지금도 선전 발전을 이끌고 있는 별빛과 같은 인재들을 기리는 다리다. 다리에는 검은색 나무기둥에 은색 금속으로 그들의 얼굴과 이름, 직위를 새겼다. 위 전 회장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55명의 인재가 이름을 올렸는데 기업인과 기업 소속 연구자가 13명이다.
직원만 180만 명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보험사 핑안을 설립한 마밍쩌, 중국 최대 부동산개발업체 완커그룹의 창업자로 ‘스타 경영자’로도 불리는 왕스, 중국 최대 비철금속업체로 최근 반도체산업 진출을 선언한 정웨이국제그룹의 왕원인 창업자까지 면면이 다양하다.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런정페이 회장과 게임 개발사 텐센트의 마화텅 창업자 등은 본인이 끝까지 고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기자동차와 드론 제조 분야에서 각각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BYD와 DJI 창업자는 아직 나이가 젊어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다. 위 전 회장의 뒤를 따르고 있는 선전 기업인들의 위용이다.
◆한국인도 선전 인재?
공원에서 인재 유치를 통한 창업과 경제성장에 대한 선전의 의지를 가장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은 한국 출신 인재다. 한창수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가 인재성광교의 55인 중 한 명에 포함돼 있다.
다만 나무기둥에 기록된 그의 직책은 한양대 교수가 아니라 선전의 로봇기업 중커더루이 창업자다. 한국에서도 웨어러블 로봇 개발의 1인자로 불리는 그는 2015년부터 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선전의 해외 고급인재 유치정책에 따라 지난해에는 영구거주용 주택까지 지원받았다.
한양대와 선전 시정부가 공동으로 지분을 갖고 있는 중커더루이의 핵심 연구 인력은 한 교수와 같은 한국인들이다. 한 교수는 지난 7월 지역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선전을 창업지로 삼은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한국이나 일본보다 몇 배 큰 중국 시장을 노릴 수 있고, 선전에는 기업가정신이 충만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56명의 인재 중 외국인은 한 교수를 포함해 모두 12명이다. 선전과 홍콩에서 활동하며 노벨상을 받은 학자들이 대부분이지만 사물인터넷(IoT) 제품 개발업체 궈화광뎬의 네덜란드인과 스위스인 수석과학자 2명도 이름을 올렸다.
기업 소속 기술자 중에는 중국 최대 원자력발전소 건설업체 CGN의 연구소장과 부소장이 나란히 포함됐다. 정부의 탈(脫)원전정책 여파로 기술인력이 이탈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중국이 얼마나 원전 기술을 중요시하는지 보여준다.
휴일을 맞아 가족과 함께 공원을 찾은 회사원 장타이쉰 씨는 “중국 기업인이든 외국인이든 경제 발전에 기여한 이들을 평가하고 기린다는 유연성이 있었기에 오늘의 선전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로 작은 치부를 들춰 내부 싸움을 하다 어려움을 겪은 역사는 개혁·개방 이전으로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한국 대기업 주재원은 “한국은 해방된 지 70여 년이 지났으나 공공장소에 기업인 이름을 새기고 기리는 것은 여전히 금기시되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는 “선전 인재공원은 작아 보이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장소”라며 “기업을 대하는 정서부터 중국에 뒤지는 듯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선전=노경목 특파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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