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370원을 돌파했다. 증권가에서는 환율 급등이 과거와는 차이가 있다며 업종별 영향을 점검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8.8원 오른 1371.4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환율은 1365.0원에 개장한 뒤 장중 1361.7원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반등해 1371.9원까지 치솟았다.
지난 2일 기록한 장중 연고점(1363.0원)을 다시 넘어서면서 1거래일 만에 연고점을 갈아치웠다. 지난달 31일부터 4거래일 연속 연고점 경신이다. 원/달러 환율이 1370원을 넘어선 것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4월 1일(1392.0원) 이후 13년 5개월 만에 처음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의 도시 봉쇄, 유럽의 천연가스 공급 차질 등이 달러 강세를 부추기면서 원화 가치는 약세를 지속 중이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는 110선을 돌파했다. 달러인덱스가 110포인트를 넘어선 것은 2002년 6월19일(110.190) 이후 20년 3개월 만이다.
증권가에서는 원/달러 환율 급등이 과거와는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환율이 급등했을 때는 안정성의 문제가 작용했지만 지금은 수익성의 문제라는 의견이다. 과거 원/달러 환율이 높았던 시기는 1997~1998년 외환위기와 2007~2009년 금융위기로 2번 모두 시스템 리스크과 연관돼 있었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과거의 원/달러 환율 상승 사례 때는 외환보유고 부족 문제, 대외채무 비율 등이 주요 문제였다는 점에서 국가 채무의 안정성(건전성)의 문제가 핵심이었다"며 "하지만 지금의 원/달러 환율은 '시스템 리스크'라고 보긴 어려우며 탈세계화로 인해 '수익성이 훼손'(수출 부진)되는 문제가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과거 사례와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는 CDS 프리미엄(신용부도스와프)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대외채무 비율이 높은 것과는 달리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대외채무 비율은 상승 리스크가 매우 제한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하 연구원은 "이러한 차이에서 한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데 첫째는 환율 상승의 근본적 원인이 시스템 리스크가 아닌 수익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책의 힘으로 단기간에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며 "이는 원/달러 환율이 단기간에 낮아지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율 리스크를 주시하며 주식시장도 보수적으로 대응해야겠으나 시스템 리스크가 아니라면 일부 업종에서는 원화 약세의 수혜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며 "이러한 관점에서 원화 약세 시 업종별 영향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서 발간한 자료 '원화환율 변동이 우리 경제 및 제조업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을 참고하면 최근 미중 갈등, 중국 대만 갈등 등 정치적 리스크를 고려해 반도체 (IT) 분야는 다소 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하 연구원은 "수출 비중과 수입 중간재 비중 간의 차이와 영업이익률 변동 여부를 통해 업종별 단기 영향을 가늠해보면 제조업 평균을 상회하는 업종으로 ▲기계 및 장비 ▲컴퓨터, 전자 및 광학기기와 전기장비 (IT) ▲운송장비 ▲화학제품 ▲전기장비 등이 있다"며 "수출단가 조정여력과 영업이익률 변동 여부를 통해 업종별 장기 영향을 가늠해보면 제조업 평균을 상회하는 업종으로 화학제품이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