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국회에서 열린 세제 관련 당정협의에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 부총리, 조정식 정책위 의장, 이 원내대표.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맥주와 탁주(막걸리)에 대한 세금 부과 방식이 내년부터 종량세로 바뀐다. 가격에 비례해 세금을 매기던 과세 방식(종가세)이 52년 만에 용량에 비례해 매기는 것으로 변경된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5일 당정협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주류 과세체계 개편방안을 확정했다. 종량세 전환으로 맥주는 내년부터 L당 830.3원의 주세가 붙는다. 주세 교육세(주세액의 30%) 부가가치세 등 세 부담이 국산 캔맥주는 23.6% 감소한다. 반면 국산 병맥주, 페트병맥주는 각각 1.8%, 3.1% 오른다.
생맥주는 세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는 걸 막기 위해 내년부터 2년간 L당 664.2원을 적용한다. 그럼에도 생맥주에 붙는 세금은 25.4% 인상된다. 탁주에는 L당 41.7원의 주세가 붙는다. 정부는 물가에 연동해 매년 L당 과세 금액을 조정하기로 했다. 증류주 과실주 등 다른 주종은 종가세를 유지한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반영한 세법 개정안을 오는 9월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내년부터 시행된다.
정부가 맥주에 붙는 세금 부과 방식을 종가세(가격에 비례해 과세)에서 종량세(양에 비례해 과세)로 바꾸기로 함에 따라 국산 캔맥주 세금은 내려가고 대다수 수입 캔맥주는 올라갈 전망이다. 국산이라도 캔맥주를 제외한 병맥주, 생맥주, 페트병맥주는 세금이 인상된다. 다만 판매량이 가장 많은 국산 캔맥주가 큰 폭으로 인하되는 덕분에 전체 맥주에 붙는 세금은 지금보다 1.9% 줄어든다. 기획재정부는 “국내 업체들이 캔맥주 세금이 줄었다고 가격을 내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맥주와 병맥주 세금이 늘었다고 가격을 올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시장에서는 “세금이 25% 이상 늘어나는 생맥주에 대해선 머지않은 시기에 가격을 올릴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3년 뒤 생맥주 세금 55% 늘어
기재부와 더불어민주당이 5일 당정협의에서 확정한 주류 과세체계 개편방안을 보면 맥주에는 내년부터 L당 830.3원의 주세가 붙는다. 지금은 출고가격의 72%를 주세로 낸다. 기재부 관계자는 “최근 2년간 출고량과 주세액을 고려해 세수에 변동이 없는 범위 내에서 L당 얼마를 매길지 정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대형 맥주업체 3사(오비 하이트진로 롯데)가 생산한 캔맥주에 붙는 세금(주세+교육세+부가가치세)은 L당 1758원에서 1343원으로 23.6% 줄어든다. 병맥주는 1277원에서 1.8% 오른 1300원으로, 페트병 맥주는 1260원에서 3.1% 오른 1299원으로 인상된다.
생맥주는 L당 주세 830.3원을 적용하면 전체 세 부담이 815원에서 1260원으로 54.6% 증가한다. 출고가격이 낮은 생맥주는 종가세 체계에선 세 부담이 적었지만 가격과 상관없이 용량만 따지는 종량세 체계에선 세금이 큰 폭으로 늘어난다. 정부는 생맥주 가격의 급격한 인상을 막기 위해 내년부터 2년간 한시적으로 L당 주세 664.2원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전체 세부담(1022원)은 현재보다 25.4% 늘어나는 데 그친다.
정부는 2022년이 되면 생맥주의 L당 세금을 원상복구해 다른 맥주와 동일하게 하겠다고 했다. “(세금이 오르는) 3년 뒤에는 생맥주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김병규 기재부 세제실장은 ‘생맥주 세금 인하 혜택이 2년 뒤에 연장될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에 “없다”고 잘라말했다. 김 실장은 “2년이면 충분히 업계가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라며 “국내 맥주업계가 캔맥주에서 이득을 보는 만큼 (생맥주 세 부담 상승을) 상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산 맥주 역차별 해소
정부가 맥주 과세 체계를 바꾼 건 “국산 맥주가 역차별당하고 있다”는 국내 업체들의 민원이 계기가 됐다. 맥주 주세는 72%로 국산과 외국산이 똑같지만 과세표준(세금부과의 기준이 되는 가격)이 다르다. 국산 맥주의 과세표준은 ‘제조원가+판매관리비+이윤’이고, 수입 맥주는 ‘수입신고가(관세 포함)’다. 국산 맥주는 판매관리비와 이윤에 대해서도 세금을 내지만, 수입 맥주는 안 내는 구조다.
수입 맥주 업체는 상대적으로 적은 세금에 힘입어 편의점에서 ‘4캔 1만원’ 묶음 상품을 판매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이 덕분에 2013년 4.4%였던 점유율을 지난해 18.0%로 5년 만에 4배 이상 늘렸다.
내년부터 종량세로 바뀌면 일부 고가 맥주를 제외한 대다수 수입 맥주에 붙는 세금이 오른다. 업계에선 상대적으로 싸게 국내에 들여오는 하이네켄(네덜란드) 칭따오(중국) 싱하(태국) 창(태국) 등은 세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추정한다. 반면 수입가가 높은 아사히 기린 삿포로 등 일본 맥주와 기네스(아일랜드) 호가든(벨기에) 등은 세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알려졌다.
국산 수제맥주 업체의 세 부담도 줄어든다. 한국수제맥주협회 관계자는 “현재 주요 수제맥주의 평균 세 부담은 L당 1800원 수준”이라며 “종량세로 바뀌면 세금이 약 67% 경감될 것”이라고 했다.
이태훈/김보라 기자 beje@hankyung.com
정부, 맥주·막걸리 종량세로 개편한다…소주는 종가세 유지
종량세 개편 맥주 가격 어떻게 되나…국산 캔맥주 100∼15...
"생산량 늘려라"…종량세 시대 준비하는 맥주업계
홍남기 "맥주·탁주 우선 종량세 전환…車개소세 인하 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