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회장직에 오르는 정의선 수석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회장에 올랐다. 그간 회장 취임을 고사해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속 현대차의 변화와 혁신을 진두지휘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은 이날 오전 임시 이사회를 열고 정 수석부회장을 신임 그룹 회장으로 선임했다. 정몽구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이에 따라 정 신임 회장은 2018년 9월 그룹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 지 2년 1개월 만에, 올해 3월 현대차 이사회 의장에 오른지 7개월 만에 그룹의 수장이 됐다.
정 신임 회장은 그간 회장 취임을 고사해왔다. 그의 고집은 '수석부회장'이라는 직함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2018년 그룹을 총괄하는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3세 경영'의 본격화를 점치는 시각이 많았지만,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의 경영권이 공고하다며 이러한 시각을 강력히 부인해왔다. 나머지 부회장보다 한 계단 높지만 어디까지나 회장을 보좌하는 부회장일 뿐이라는 입장이었다.
이후로도 정 수석부회장은 미래 모빌리티에 초점을 맞춘 신산업에 초점을 맞춘 경영 활동을 지속했지만, 수석'부회장'이라는 직함을 고수했다. 고령인 정몽구 회장을 대신해 외부 행사에 얼굴을 내비추면서도 회장 승진에 대해서는 거리를 뒀다. 지난 2월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을 당시에도 현대차그룹은 정 신임 회장(당시 수석부회장)이 의장직을 물려받지는 않을 것이라며 사외이사가 맡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 신임 회장은 결국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됐지만, 본인의 의지보다 코로나19 사태란 예상치 못한 상황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발 부품 공급이 끊기고 공장이 마비되는 등 불확실성이 커지며 책임경영의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우버와 UAM 분야 협력 계약을 체결한 정의선 수석부회장. 사진=현대차그룹
이번 회장 취임은 '패러다임 시프트'를 겪고 있는 현대차의 상황을 감안해 정몽구 회장이 최근 가족 모임에서 후임을 당부하며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 7월 대장게실염 수술을 받은 뒤 세 달째 입원 중이다. 통상적으로 수술 후 회복까지 2주가 소요되는 질병이지만, 노환으로 치료가 길어지고 있는 셈이다. 내년이면 84세가 되는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를 활발하게 이끌 적임은 그간 그룹을 이끌어온 정 신임 회장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대외적으로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차·수소차로의 전환과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 △모빌리티 환승 거점(HUB)으로 대표되는 미래 모빌리티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상황이다. 이를 위한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 건립도 추진하기로 했다.
미래 모빌리티 대응을 위해서는 부품이나 소프트웨어 등의 개발에 특화된 그룹사의 역량도 결집해야 한다. 실제 HMGICS의 경우 현대차와 기아차는 물론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현대오토에버, 현대위아, 현대로템, 현대트랜시스 등 현대차그룹 그룹사들이 대거 참여한다. 이들의 역량을 결집시키려면 책임경영이 가능한 카리스마적 리더가 필수적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타운홀 미팅을 마친 후 임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내부 구성원들의 두터운 신임도 요인이 됐다는 평가다. 현대차는 최근 연구·개발직 중심의 젊은 직원들과 생산직 중심의 장년 직원들 사이 갈등이 심화되며 젊은 직원들의 이탈이 이어진 상황이다.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정 신임 회장에 대한 신임이 두터운 만큼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줄 것으로 점쳐진다. 정 신임 회장은 타운홀 미팅을 통해 임직원들과 만나고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격의없는 소통 행보를 이어갔다.
현대차 노사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에서 임금 동결과 함께 성과급 150%와 정년퇴직자를 계약직으로 고용하는 시니어 촉탁 변경안에 합의했다. 이에 대해 젊은 직원들은 정년을 맞은 생산직 직원들의 고용 연장을 위해 자신들의 성과급이 희생됐다고 주장한다.
지난해에는 한 헤드헌팅 업체가 현대차 연구·개발직 직원들에게 스카웃 제안을 보내 수십여 명이 국내 대형 통신사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이들 대부분은 현대차의 미래 먹거리인 자율주행과 차량·사물통신(V2X) 등을 연구하던 인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 연구개발직 직원들은 뛰어난 스펙을 갖춘 인재들"이라며 "외부 협업도 자체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젊고 능력있는 이들이 등을 돌리면 현대차의 미래는 사실상 없다. 성난 젊은 직원들을 다독이며 이끌어야 하는데,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정 신임 회장 뿐"이라고 평가했다.
정 신임 부회장은 이날 온라인으로 회장 취임식을 열고 그룹 임직원을 대상으로 비전에 대해 직접 설명할 계획이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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