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미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가 39년만에 최고치를 찍은 가운데 대표적인 경제학자인 손성원 미국 로욜라메리마운트대 교수가 통화 긴축 전환에 따른 충격을 경고하고 나섰다.
손 교수는 10일(현지시간) 기자에게 보낸 ‘충격적인 물가’(Shell-shocking CPI) 기고에서 “물가 상황이 좋지 않을 걸 알고 있었지만 충격은 여전히 크다”며 “에너지 가격 급등세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미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가 39년만의 최고치인 6.8% 급등(작년 동기 대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미 노동부 및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제공
앞서 미 노동부는 이날 뉴욕증시 개장 직전 발표한 물가 보고서에서 11월 CPI가 전달 대비 0.8%, 작년 동기 대비 6.8% 각각 뛰었다고 발표했다. 작년 대비 상승률은 1982년 6월 이후 최고치로 기록됐다.
손 교수는 “식당 소매점 등 많은 곳에서 소비자 가격을 올리는 대신 이익을 줄인 상태”라며 “조만간 실제 소매 가격 역시 많이 뛰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 하반기와 같은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란 의미다.
그는 “지난 12개월동안 주택 가격 지수가 4.8%, 임차료 지수가 3.8% 각각 올랐다”며 “주거 비용이 물가에 끼치는 영향이 대체로 후행한다는 점에서 수개월 내 물가상승세의 더 큰 원인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 교수는 “공급병목 현상이 점차 완화할 것이란 게 정부의 기대이지만 과잉 수요 문제는 쉽게 풀리기 어렵다”며 “정부가 살포한 경기 부양 자금과 미 중앙은행(Fed)의 대규모 유동성이 수요 촉발의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일반 소매점과 달리 기업들은 가격을 올리는 데 별 저항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손 교수의 얘기다. ‘물가 상승 → 인금 인상 → 물가 재상승’의 소용돌이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물가-임금의 악순환이 일단 시작되면 끊어내기가 무척 어렵다”며 “팬데믹(대유행) 기간동안 자발적인 퇴사가 줄을 이었기 때문에 노동력 부족 현상이 금방 개선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더구나 미 노동력의 성장세는 최근 둔화해왔다. 1980년대만 해도 미국의 노동 인구가 연간 1.6%씩 증가했으나 지난 10년간 ‘제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손 교수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고(故) 밀턴 프리드먼 교수를 인용해 “인플레이션은 알콜 중독과 같다”고 비유했다.
알콜 중독자가 술을 마실 때처럼 돈을 찍어내기 시작하면 좋은 영향이 먼저 오고 나쁜 영향이 뒤늦게 찾아온다는 것이다. 반면 술을 끊거나 긴축을 시작하면 고통이 먼저 닥치고 나중에서야 치유가 된다고 했다.
손 교수는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이미 테이퍼링(채권 매입 감축) 신호를 수차례 보냈다”며 “기준금리 인상 등 긴축이 본격화하면 나쁜 영향, 즉 고통이 먼저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고통은 저소득층이 먼저 맞게 될 것이란 게 손 교수의 우려다.
손성원 미국 로욜라메리마운트대 교수.
그는 “저소득층 소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식료품과 에너지, 의약품 등의 가격이 더 많이 뛰었다”며 “물가를 잡아야 저소득층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캘리포니아의 로스엔젤레스(LA) 항구 앞엔 크리스마스용 상품을 가득 실은 배들이 여전히 하역을 기다리고 있다”며 “미국 부모들은 연말에 중국에서 만든 명절 선물 없이 아이들과 그냥 놀아줘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원유 등 에너지는 증가하는 수요를 충족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며 “화석연료와 핵에너지 공급이 줄었지만 (태양광 등) 녹색에너지가 빈 자리를 채우지 못하는 데서 발생하는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이 현실화했다”고 지적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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